장염 비브리오(Vibrio parahaemolyticus)는 여름철에 식중독을 많이 일으키는 병원성 세균이다.
오염된 생 어패류나 조리한 쇠고기, 야채, 샐러드 등을 통해 감염하면 설사를 동반한 위통, 두통,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난다.
인체의 세포 안에서 증식한 세균이 다른 세포로 퍼져 나가는 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처음에 증식 공간으로 이용한 세포를 벗어나려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효소를 생성하지 못하는 비브리오는 잔뜩 증식한 상태로 세포 안에 갇혀 세포와 함께 죽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UTSW)의 킴 오스 분자생물학 교수팀은 18일(현지시간) 과학 저널 '이라이프(eLif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비브리오가 처음 세포에 들어갈 땐 T3SS2라는 일반적인 세균 감염 패턴을 따른다.
이때 세균은 바늘 비슷한 구조를 만들어 인체 세포에 화학물질을 주입하기도 한다.
세포가 자신들을 받아들이게 속이고,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면역 반응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포 안에서 증식한 비브리오가 밖으로 빠져나갈 땐 사정이 달랐다.
T3SS2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세균이 쓰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세포 탈출' 메커니즘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팀은 비브리오의 유전체를 뒤졌다.
여기서 찾아낸 게 바로 VPA0226라는 리파아제(지방분해효소)다. 이 단백질은 세포막의 주요 성분인 지방 분자를 분해할 수 있다.
그런데 VPA0226의 작용 경로를 따라가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미토콘드리아가 나타났다.
VPA0226는 세포막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우회적으로 세포막 콜레스테롤의 구조를 바꿨다.
7∼8시간이 지나자 한두 개에서 500여 개로 증식한 비브리오가 약해진 세포막을 뚫고 나가 다른 세포에 감염했다.
이 지방분해효소를 생성하지 못하는 비브리오도 세포에 침입하고 증식하는 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비브리오가 세포를 빠져나가지 못하면 세포가 괴사하면서 비브리오도 함께 죽었다.
이처럼 T3SS2 의존 경로를 통해 인체에 침투한 박테리아가 지방분해효소를 이용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간 게 보고되기는 처음이다.
최근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S) 회원으로 선출된 오스 교수는 "비브리오의 모든 걸 T3SS2가 지배한다는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었다"라면서 "비브리오는 병을 일으키는 다른 도구도 많이 가졌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