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심장의 해부학적 구조를 처음 밝혀낸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는 16세기에 심장 내부 근육의 섬유주(trabeculae; 작은 섬유성 기둥)가 눈송이처럼 이어진 '프랙탈 패턴(fractal pattern)'을 섬세하게 스케치했다.
이 근섬유 망이 심장의 복잡한 기능 수행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 빈치가 이 부분에 특히 주목한 이유가 500년 만에 밝혀진 것이다.
이 연구는 유럽 분자생물학 연구소 산하 유럽 생물 정보학 연구소(EMBL-EBI), 미국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영국 MRC 런던 의과학 연구소,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닉 등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19일(현지시간) 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인간의 심장은 배아 발생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기관으로 잉태 4주 후부터 스스로 뛰기 시작한다.
발달 초기의 심장엔 복잡하게 뒤엉킨 섬유주 망이 생겨 내부 표면에 기하학적 패턴을 형성한다.
이 섬유주 망은 발달 과정에서 심장에 대한 산소 공급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성인이 됐을 때 이 섬유주 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다국적 연구진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해 2만5천 건의 심장 MRI 스캔 결과와 관련 형태학·유전학 데이터를 AI(인공지능)로 분석했다.
다빈치가 공들여 그린 섬유주의 형태 자체가 심장의 기능 수행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섬유주의 프랙탈 패턴이 변하면 심부전 발생 위험이 커졌다.
프랙탈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돼 복잡한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걸 말한다. 자연의 리아스식 해안, 동물의 혈관, 창문의 성에 등이 부분과 전체의 모양이 같은 프랙탈에 해당한다.
심실의 거친 표면은, 심장 박동 사이의 혈액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 저항을 줄여 비행거리를 늘리는 골프공의 '딤플(dimple)'과 비슷한 작용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심근 섬유주 망의 발달 패턴에는 6개 DNA 영역이 관여했다.
흥미롭게도 이 중 2개 DNA 영역은 '가지 뻗기(branching)'와 유사한 뇌 신경세포(뉴런)의 성장도 제어했다.
심장 발달에 관여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뇌 발달과 연관돼 있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500년 전에 스케치한 심장 내부 구조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다"라면서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심부전의 연구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