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나 익숙해진 공간에 대한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세포가 뇌의 해마에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뇌과학운영단 세바스쳔 로열 박사팀이 뇌 해마 속 과립세포(GC : granule cell)가 이끼세포(MC : mossy cell) 등 다양한 신경 네트워크를 통해 장소를 학습하며 장소세포로 변하는 과정을 생쥐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명했다고 밝혔다.
뇌에는 위치와 방향, 장소와 공간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뇌 안의 GPS' 역할을 하는 세포들이 있다. 미국의 존 오키프(81) 박사와 부부 과학자인 노르웨이의 마이브리트 모세르(여·57)와 에드바르 모세르(58) 박사는 이에 관한 연구로 201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오키프 박사는 1971년 쥐 실험을 통해 뇌 해마 부위에서 특정 위치에 갈 때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발견하고 '장소세포'(space cell)로 명명했다. 모세르 박사 부부는 2005년 뇌 해마 바로 옆 내후각피질에서 위치정보 처리시스템을 구성하는 또 다른 세포를 발견해 '격자세포'(grid cell)로 이름 붙였다.
이런 세포 덕분에 사람들은 낯선 곳에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점차 익숙해지면 뇌에 공간 기억이 형성되면서 주변 지표에 신경을 안 써도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이들의 연구를 시작으로 뇌의 위치추적 메커니즘이 점차 규명되고 공간 탐색과 기억에 대한 많은 연구가 발표됐지만,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이를 기억하는 장소세포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둘레 2m 정도의 트레드밀 곳곳에 물건 등을 설치해 생쥐가 걷는 동안 특정 장소에 대한 학습이 이뤄지고 공간기억이 생성되게 하면서 치아이랑을 구성하는 과립세포와 이끼세포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새 장소에 처음 놓였을 때는 격자세포가 활성화되고 과립세포에서는 사물의 위치 정보나 일정한 간격의 거리 정보를 나타내는 세포가 작동하지만, 공간에 익숙해지고 학습된 후에는 위치와 거리 정보를 나타내는 세포들은 소멸하고 특정 장소를 나타내는 장소세포가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학습에 따른 세포 활동의 점진적 변화를 신경망 모델 중 하나인 경쟁 학습 모델을 통해 재현, 이끼세포 자체는 학습 과정에서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지만, 과립세포와 상호작용으로 장소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끼세포가 과립세포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학습이 진행돼도 과립세포가 장소세포로 잘 변하지 않아 장소 기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바스쳔 로열 박사는 "이 연구는 뇌 해마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인공지능 기반의 신경공학에 기여할 뿐 아니라 기억 상실, 알츠하이머병, 인지장애 같은 해마 손상과 관련된 뇌 질환을 이해하고 치료 예방하는 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