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뇌의 성상교세포(astrocytes)를 눈여겨보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별 모양의 이 신경아교세포(glial cell)가 뇌 발달과 뇌 질환 발생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례로 성상교세포가 없으면 뇌의 뉴런(신경세포)은 신호 교환에 필요한 시냅스(연접부)를 형성하지 못한다.
또 성상교세포가 병들면 멀쩡했던 주변의 뉴런도 질병 징후를 내보이기 시작한다.
신경발달 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로 인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뉴런이라 해도 건강한 성상교세포가 곁에서 도와주면 기능을 회복하곤 한다.
여기까진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사실이다.
과학자들이 몰랐던 부분은 성상교세포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였다.
미국의 소크 연구소 과학자들이 마침내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연구팀이 찾아낸 건 신경발달 장애가 진행될 때 성상교세포가 대량 생성하는 특정 단백질이다.
레트 증후군(Rett syndrome), 허약성 X 증후군(fragile X chromosome), 다운 증후군(Down syndrome) 같은 신경발달 장애에서 이 단백질은 정상적인 뉴런의 발달을 방해했다.
이 단백질이 치료제 개발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건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신경발달 장애가 생기게 조작한 생쥐의 뇌에서 이 단백질의 생성을 차단하면 곧바로 증상이 완화됐다.
소크 연구소 '분자 신경생물학 실험실'의 니콜라 앨런 부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30일(현지 시각)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운 증후군 등 선천성 신경발달 장애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전적 요인으로 생기는 이런 신경발달 장애엔 아직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
뉴런이 아니라 성상교세포가 잠정적인 표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신경학 분야의 연구는 뉴런에 쏠려 있었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앨런 교수는 "신경발달 장애가 생긴 뇌에서 모든 유형의 세포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먼저 발달 과정에 있는 생쥐의 뇌에서 성상교세포와 뉴런을 분리했다.
이들 생쥐는 각각 레트 증후군, 허약성 X 증후군, 다운 증후군 등을 일으키게 유전자를 조작한 실험 모델이었다.
성상교세포가 생성한 1천235개 유형의 단백질을 놓고 발현 수위를 분석했고, 이를 통해 평균보다 발현 도가 높거나 낮은 수백 개 유형의 단백질을 3개 장애 유형별로 확인했다.
연구 대상으로 잡은 3개 신경발달 장애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단백질은 120개 유형이었다. 이 가운데 88개는 발현 도가 높고 32개는 낮았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단백질이 연구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3개 발달 장애의 영향을 모두 받은 성상교세포가 높은 수위로 생성하는 Igfbp2라는 단백질이었다.
이 단백질은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IGF)의 발현을 차단했다.
신경발달 장애를 가진 생쥐에게 IGF를 투여하면 종종 증상이 완화한다.
과학자들은 병든 뉴런이 IGF를 충분히 생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믿었다.
그런데 신경발달 장애가 생기면 성상교세포가 Igfbp2 단백질을 대량 생성해 증상 완화를 방해한다는 뜻이다.
앨런 교수는 "뇌의 뉴런도 IGF를 많이 만들어내지만 필요한 수준엔 미치지 못했다"라면서 "성상교세포가 생성하는 Igfbp2가 훼방을 놓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상교세포가 과도히 생성하는 Igfbp2는 뉴런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레트 증후군 생쥐에서 성상교세포가 만드는 Igfbp2의 발현을 막으면 뉴런의 성장이 빨라졌다.
또 레트 증후군 생쥐에게 Igfbp2를 차단하는 항체를 주입하면 증상이 누그러졌다.
아쉽게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전망은 매우 밝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앨런 교수는 "온몸에 작용하는 IGF 치료제보다 뇌의 Igfbp2를 표적으로 삼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