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건강에 가장 이상적인 음식 중 하나다.
저명한 의학 저널 중 하나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무병장수를 위한 식사는 야채를 많이 먹고 고기를 적게 섭취한다는 내용이 있다.
비빔밥이 여기 속한다. 보통 야채(80%)와 고기(20%)의 어울림이다.
마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세계에 알린 주역으로 꼽히는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6)가 작품에 녹아있는 문체를 이해하고 서양의 사상으로 융합해 어울림으로 번역을 한 것과 같다.
우리 음식 가운데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가장 먼저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비빔밥은 일상에 녹아 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하여도 도시락을 매일 가지고 다녔다.
겨울철에는 보통 3교시가 끝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렸다.
난로 옆의 친구는 선생님 눈치를 보며 도시락을 위의 것은 아래로 아래 것은 위로 바꿔줬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 도시락을 들고 아래위 좌우로 잘 섞이게 흔들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 비빔밥이 완성됐다.
겨울에는 아예 집에서 도시락을 쌀 때 맨 밑에 오색 나물을 놓고 참기름 고추장을 올린 후 그 위에 밥을 올려서 완성한다.
어떤 날 어머니가 밥 위에 계란 부침이라도 한 개 올려주시면 그날은 완벽한 비빔밥이 된다.
◇ 오장·오색·오미의 조화
손자병법 제1시계(始計)의 장(章)에 전력의 다섯 가지 조건에서 다섯번째가 '법'(法)이다.
손자가 승리를 위한 마지막 조건이 있으니 군대 조직이나 규율,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법률이 아니라 군의 편성과 운영을 가리킨다.
예로 아무리 많은 군대도 방치하면 오합지졸이 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고 했다.
음식에서도 이러한 재료의 편성과 계절에 따른 배합의 법이 필요하다. 여기서 법이란 자연의 계절에 맞게 순응하는 편성이다.
비빔밥은 우선 오색나물과 맛의 조화에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 한나라 때 성립된 한의학 원전)의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篇)에 따르면 음양의 도리는 자연계 보편적 법칙이자 모든 사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만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려면 반드시 음양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오장(五臟)이 있고 이 오장에 오색(五色)과 오미(五味)가 속해있다.
노란색은 인체의 오장 중에 비장(脾臟)에 속하며 단맛과 어울린다.
푸른색은 인체의 오장 중에 간장(肝臟)에 속하며 신맛과 어울린다.
검은색은 인체의 오장 중에 신장(腎臟)에 속하며 짠맛과 어울린다.
붉은색은 인체의 오장 중에 심장(心臟)에 속하며 쓴맛과 어울린다.
백색은 인체의 오장 중에 폐장(肺臟)에 속하며 매운맛과 어울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봄에는 푸른색 야채는 줄이고 흰색과 노란색 야채를 약간 더 먹는다. 여름에는 붉은색의 야채는 줄이고 흰색과 검은색 야채를 더 먹는다.
장마철에는 노란색 야채는 줄이고 검은색과 푸른색 야채를 늘린다.
가을에는 흰색 야채를 줄이고 푸른색과 붉은색의 야채를 늘린다.
겨울에는 검은색의 야채를 줄이고 붉은색과 노란색의 야채를 늘린다는 규율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육류의 배합에는 비장이 약한 사람은 소고기를 선택하고 간장이 약한 사람은 염소고기를 선택하며 신장이 약한 사람은 돼지고기를 선택한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양고기를 선택하고 폐장이 약한 사람은 닭고기를 선택하면 좋다는 내용이 황제내경에 있다.
◇ 비빔밥의 기원
비빔밥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고대부터 제사가 있었으니 제사 음식을 고루 섞어서 비벼 먹던 것에서 발달했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각종 문헌에는 비빔밥이 180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빔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첫 번째는 우리의 독특한 제사 풍습에서 비빔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밥, 고기, 생선, 나물 등을 상에 올려놓고 정성껏 제사를 지낸 뒤 후손들이 음식을 골고루 나눠 먹었다. 이때 밥을 비벼 먹었던 데서 비빔밥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음식을 남긴 채 새해를 맞지 않기 위해 남은 밥에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서 밤참으로 먹었던 풍습으로부터 비빔밥이 유래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들에서 밥을 먹던 풍습에서 비빔밥이 생겨났다는 유래다.
예로부터 모내기나 추수할 때 이웃끼리 서로서로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하기 위해 음식 재료를 들로 가지고 나가 한꺼번에 비벼서 나눠 먹었다는 것이다.
이규경(1788~1856)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채소 비빔밥, 잡 비빔밥, 회 비빔밥, 전어 비빔밥, 대하 비빔밥,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오이 비빔밥, 김가루 비빔밥, 고추장 비빔밥, 황두 비빔밥 등의 비빔밥이 소개돼있다.
또한 비빔밥은 지역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로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안동 헛제삿밥, 마산 비빔밥, 통영 비빔밥, 평양 비빔밥, 해주 비빔밥, 보성군 벌교의 꼬막 비빔밥, 평안도의 닭고기 비빔밥, 거제도의 멍게비빔밥, 함평의 육회비빔밥, 산나물비빔밥, 돌솥비빔밥, 알밥, 등이다.
이 중 잘 알려진 전주비빔밥은 갖가지 나물과 고기 등 20여 가지가 들어간다.
밥을 지을 때 양지머리 육수를 부어 뜸이 들 무렵 콩나물을 넣고 살짝 밥 김으로 데친 후 비빈다.
여기에 진간장, 고추장과 참기름 등을 넣고 맨 위에 육회를 얹는다. 이른 봄에는 청포묵, 초여름에는 쑥갓, 늦가을에는 고춧잎이나 깻잎 등을 넣어 계절의 맛을 즐긴다.
진주비빔밥은 나물을 여러 가지 넣는다고 하여 화반(花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제철 채소를 데치거나 볶아서 나물로 만들어 올리고 반드시 선지를 넣은 탕국을 곁들인다.
안동의 헛제삿밥에는 고기와 무를 넣고 끓인 탕과 산적, 전유어, 북어찜, 두부 부침, 돔배기산적 등과 각색 나물을 함께 낸다.
나물을 무칠 때는 실제 제상에 올리듯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넣지 않고 소금, 간장(진간장), 깨소금, 참기름만을 쓴다.
또 이 지방에서는 반드시 상어인 돔배기를 차린다.
비빔밥이 처음으로 등장한 문헌인 '시의전서'(是議全書)는 비빔밥의 조리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 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 국으로 해서 쓴다".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팰트로는 날씬한 몸매의 비결로 우리나라의 비빔밥을 꼽았다.
TV에서 그는 장수식 다이어트 중에서도 한국 비빔밥을 가장 선호한다고 공개했다.
팰트로의 전 요리사였던 리 그로스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가 한국식 흰 쌀밥에 콩나물, 작은 배추, 김치, 두부 등을 얹어 비벼 먹는 걸 즐긴다고 밝혔다.
마이클 잭슨 또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음식 중에서 비빔밥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빔밥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비빔밥은 21세기 웰빙 음식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