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는 일물전체(一物全體)의 음식이라고 한다. 순대에는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토불이의 원칙도 있다.
그리고 순대는 돼지 창자와 고기, 피, 내장, 뼈 등을 통째로 활용해 일물전체의 원칙을 실천하는 음식이다.
순대는 전통적 식생활이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음식 재료의 모든 부분을 존중하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이라는 말이 있다. 동양 철학과 서양의 자연식 개념이 결합한 식생활 철학이다. 건강과 장수의 방법을 자연과의 조화에서 찾는다.
이 용어는 음식과 건강 관계를 강조한 그리스 철학자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처음 썼다. 이것을 동양철학의 사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 일본 식문화 연구가이자 사상가인 사쿠라자와 유키카즈(櫻澤如一) 선생이다. 매크로바이오틱은 그가 고안해 낸 식사법으로 일본 전통 장수 식단을 기본으로 한다. '나와 가까운 곳에서 제철에 자란 재료'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신토불이 사상과도 유사하다.
다른 생명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방식으로 키운 재료를 써 비건 음식이나 사찰 음식과도 일맥상통한 개념이다. 그 뿌리는 고대 동서양의 전통과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노자의 저서인 도덕경을 인용해 자연과의 조화인 음양 사상을 기본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동식물은 음양으로 구성이 돼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채소의 뿌리가 음이라면 줄기는 양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나누면 오행으로 귀속이 된다. 사람의 몸도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인체의 모든 질병은 이러한 조화가 깨어짐으로 발생한다고 했다. 사쿠라자와 유키카즈는 자신의 병을 음양이 균형 잡힌 식생활로 치유하고 이 철학을 바탕으로 매크로바이오틱 이론을 정립했다. 그 후 그의 제자인 미치오 쿠시(Michio Kushi)가 마크로비오틱을 서양으로 전파하며 국제적인 시선을 끌게 됐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서 자연식과 채식 중심의 건강 운동을 이끌며 마크로비오틱 식생활을 웰빙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해서 마크로비오틱은 단순한 식생활을 넘어 환경운동과 명상, 요가 등과 결합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됐다.
◇ 돼지 잡는 날의 추억
필자가 어릴 적에 마을에서 돼지를 잡는 날은 큰 행사였다. 돼지도 지금과는 다른 새까만 토종돼지였다.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서로 나누고 나머지 내장과 머리, 피 등은 늘 어머니가 담당했다.
내장을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피와 내장, 머리 고기, 야채 등을 넣고 순대를 만드셨다. 구수한 순대 삶는 냄새를 뒤로 하고 돼지 오줌보를 가지고 입으로 바람을 넣고 묶어서 친구들과 공을 차던 기억이 난다.
손자병법에 '병력과 자원의 관계'라는 내용이 있다. 손자는 병력을 동원할 때는 균형 잡힌 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필요한 만큼의 병력만 동원하고, 과도하게 많은 병력 동원은 국가 경제와 자원에 부담을 준다는 내용이다.
병력과 자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성공적인 전쟁 수행이라는 핵심을 강조했다.
순대가 그렇다. 최적화된 단순 메뉴지만 길거리 음식으로도 사랑을 받고 식당 안에서도 식재료 관리와 조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순대국밥 식당은 2∼3가지의 적절한 메뉴 수를 유지하고 집중하므로 효율적이다.
하나의 음식은 통째로 먹는다는 '일물전체'의 원칙은 식재료의 모든 부분을 버리지 않고 섭취함으로써 그 고유의 음양 에너지와 영양을 모두 얻는다는 의미다.
순대는 돼지 창자를 사용해 평소 잘 먹지 않던 모든 부위까지 활용한다. 또한 순대와 함께 내장, 머리 고기 등 돼지의 다른 부위를 곁들여 먹는 문화도 돼지 한 마리를 남김없이 활용하는 일물전체의 철학이다.
특히 창자 안에 채우는 재료가 다양하며 뼈로 오랜 시간 우려내 끓인 탕까지 먹는 형태는 하나의 재료를 온전히 활용하려는 마크로비오틱 정신이 들어있다.
또한 신토불이는 자신이 사는 지역과 계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대는 예로부터 한국 각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돼지 창자와 지역에서 난 재료를 조합해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다. 순대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농경 사회에서 계절과 재료의 풍요로움을 활용한 음식으로 '내 몸과 내가 사는 땅이 하나'라는 신토불이의 철학이 들어있다.
순대를 먹는 것은 한국의 땅과 계절이 만들어낸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순대의 유래
순대를 먹는 식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우선 삼국시대에 중국과 교류하면서 전해진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혹자는 고려 말기에 몽골군이 침략하면서 피순대가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의 농경 서적 '제민요술'에 '양고기와 양장으로 만든다는 양반장자해(羊盤腸雌解)'에서 변형된 음식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만주의 여진족 음식이 전해진 것이라는 설까지 있다. 사실 이러한 순대 음식은 옛날부터 동서양 여러 나라 다양한 지역에서 먹어 온 음식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유래를 찾기는 힘들다.
조선시대 '규합총서'에도 쇠 창자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쪄먹는 '쇠 창자찜'이 나와 있고, '시의전서'에는 '도야지순대'의 조리법이라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
이때 '순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면서 '돼지 창자에 데친 숙주, 미나리, 무와 배추김치를 다지고 두부와 양념, 돼지 피를 넣어 양쪽을 동여매고 삶은 것'이라고 적혀있다.
바로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순대가 등장했다. 이 시기 순대는 주로 찜 형태였으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돈장탕'(豚腸湯) 등 순댓국이 등장하며 술안주에 좋다고 했다.
현재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순대는 피순대, 고기 순대 등이지만 당면순대가 1970년대 처음 개발되면서 잔치 음식이었던 순대는 분식의 한 종류로 대중화됐다.
◇ 순대의 지역색
지금은 전국적으로 비슷비슷한 순대를 먹지만 예전에는 지역별로 구할 수 있는 고유 재료를 각각 사용해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특색이 굉장히 강한 음식이다. 평양시, 함흥시, 용인시, 천안시, 광주광역시, 전주시, 제주특별자치도, 대구광역시, 속초시 등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순대가 하나씩은 있다.
당연히 순대를 찍어 먹는 양념장도 지역별로 다르다. 전국적으로 가장 흔한 것은 당면순대다. 당면순대는 길거리 순대, 시장 순대, 분식집 순대, 포장마차 순대 등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보통 '순대'라고 하면 바로 나오는 이것이다. 순대볶음, 순대전골 등 순대를 이용한 요리에 들어가는 순대도 대개 이 순대다.
만드는 방법은 보통 채소, 선지, 찹쌀이 들어가지만, 저가형의 경우에는 채소, 찹쌀이 빠지고 내용물의 대부분을 당면이 차지하기도 한다. 보통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
그래서 값이 절반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피순대는 돼지 창자에 기름을 바탕으로 채소와 찹쌀 및 돼지 피를 넣은 소를 채워서 만든다. 선지가 아닌 돼지 피가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색이 블랙이다. 대표적인 것이 충청남도의 피순대다. 병천 순대에서 파생된 것이다.
찰밥이나 당면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선지와 콩나물이 주를 이룬다. 당면순대와 맛이 지나치게 달라서 전혀 다른 요리로 구분한다. 꾸덕꾸덕하게 말리기도 한다.
당면순대만을 순대로 알고 먹다가 '정통' 선지순대나 고기 순대를 접하면 그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놀라게 된다.
현재 초가공 식품이 범람하고 있다. 순대는 자연 상태의 식품이며 동양 음양오행의 균형에 조화를 맞춘 음식이다. 순대는 '마크로비오틱'의 철학을 품은 식품으로 건강한 식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추운 겨울날 순댓국 한 그릇에 힘을 내어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온 뭇 가장의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음양의 조화와 '통짜 음식'(Whole food)의 철학도 들어 있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