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네이버 이미지 갈무리]](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310/art_17412630145759_01d01c.jpg)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결혼식이나 생일, 회갑과 같은 경사가 있을 때나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에 국수를 올렸다.
그중에서도 메밀가루가 가장 흔한 재료로 쓰였다. 그 뒤를 이어 밀가루와 녹두 가루도 자주 이용됐다.
특히, 메밀이 풍부하게 나는 북쪽 지방에서는 구수한 메밀국수와 시원한 냉면이 발달했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남쪽에서는 부드러운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가 사랑받았다.
메밀은 영양이 풍부하고 몸에 이로운 곡물이다. 특히 글루텐이 없어 소화가 잘되고, 건강을 지키는 여러 효능을 지니고 있다.
메밀에는 루틴(Rutin) 성분이 가득해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돕는다.
덕분에 고혈압을 예방하고, 동맥경화나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메밀은 혈당지수가 낮아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풍부한 식이섬유가 탄수화물의 흡수를 천천히 하게 해, 당뇨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메밀에 함유된 불용성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하고,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켜 다이어트에도 유익하다.
메밀은 또 풍부한 미네랄과 항산화 성분도 있어 몸속의 염증을 줄이고 노화를 늦추는 데 기여한다.
다만, 몸이 차거나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메밀을 지나치게 섭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부터 '메밀을 많이 먹으면 몸이 마른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도 그 이유다.
적절한 양을 섭취하면, 메밀은 우리 몸을 더욱 건강하게 가꾸어 주는 귀한 곡물이다.
◇ 어머니의 메밀 손칼국수
어릴 적, 어머니의 손칼국수는 우리 집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메뉴였다.
계절과 형편에 따라 메밀, 도토리, 콩을 번갈아 사용했지만, 아버지가 약주를 드신 날이면 어김없이 메밀 손칼국수가 끓어올랐다.
어머니는 광으로 가더니, 커다란 메밀 자루 속에 손을 깊숙이 넣어 한 바가지 가득 통 메밀을 퍼 올렸다.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키위에 메밀을 쏟아부으며 조심스레 흔들어 돌과 불순물을 골라냈다. 찬물에 여러 번 헹구어 조리로 건져 낸 뒤, 어머니는 내게 일렀다.
"아들아, 메밀을 불릴 때는 여름에는 네 시간, 겨울에는 여섯 시간이 적당하단다."
시간을 지켜 불린 메밀은 한 알 한 알이 통통해졌다.
어머니는 맷돌 위에 한 국자씩 올리고,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점도를 조절했다.
두 손으로 맷돌을 돌릴 때마다 메밀은 갈색 물이 돼 흘러나왔고, 커다란 양재기에 쌓여갔다.
이윽고 어머니는 메밀의 30%에 해당하는 밀가루를 섞고, 소금을 넣어 미지근한 물을 부으며 정성껏 반죽을 치댔다.
그렇게 둥그렇게 빚은 반죽을 면 보자기로 덮어 30∼40분 동안 숙성시키면, 표면이 매끈하고 윤기가 돌았다.
반죽이 충분히 익어가자, 어머니는 커다란 도마에 올려놓고 밀가루를 살살 뿌리며 준비를 마쳤다.
홍두깨를 들고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레 밀어가며 반죽을 넓혔다.
그러다 말린 반죽을 양손으로 서서히 당기면서 밀어야 한다며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면 반죽이 균일하게 펴지면서 넓어진단다."
홍두깨에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얇고 넓게 펴진 반죽은 마침내 1∼2㎜ 두께로 완성됐다.
어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접고 다시 접어 칼을 들어 0.5㎝ 간격으로 단정히 썰어냈다.
썰어진 면발은 밀가루를 가볍게 털어내며 서로 엉키지 않도록 살살 흩었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자 장작이 타들어 가며 고요한 온기가 퍼졌다.
멸치와 무를 넣고 10분 남짓 끓이자 고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멸치를 건져내고 된장을 풀어 국물에 깊은 맛을 더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면을 넣고 커다란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가며 면이 투명해질 때까지 삶았다.
마침내, 따끈한 메밀 손칼국수가 완성됐다. 어머니는 묵은 간장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밥상에 묵은김치를 다져 곁들였다.
나는 국수를 후루룩 삼키면서도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국수를 삶고 남은 반죽 조각들은 가마솥 아궁이 숯불 위에 올려졌다.
불길을 조심스레 피해 가며 돌리자 반죽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마치 작은 풍선처럼 봉긋하게 부푼 칼국수 과자는 금세 바싹하게 구워졌다.
한입 깨물면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어머니의 칼국수와 함께, 바삭한 추억도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사그라지지 않는다.
◇ 손자병법으로 본 국수 만들기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형(地形)의 장'에서는 전쟁에서 지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손자는 지형에 따라 병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리더십, 조직 운영, 비즈니스 전략 등에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국수 재료(밀, 메밀, 도토리, 옥수수)로 응용해봤다.
손자는 통행이 쉬운 지형이 이로운 지형이라 했다. 아군과 적군이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선점하는 쪽이 유리하다.
현재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가장 흔하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조리법도 다양하며 간단하고 탄력도 좋아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전략이 없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선점이 중요하다.
험난한 지형은 공격과 방어 모두 어려운 곳이다. 적이 먼저 점령했다면, 움직이지 않고 지켜야 한다.
메밀 손칼국수는 메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해야 하고, 밀가루보다 글루텐이 없어 반죽과 면발을 만들기가 까다롭다.
숙련된 기술이 있다면 깊은 풍미와 영양을 살릴 수 있는 훌륭한 국수가 된다.
교착 상태의 지형은 양군 모두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기동성이 중요하다.
도토리 손칼국수에 비교하면 도토리는 타닌(Tannin) 성분이 있어 혈당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소화기관을 건강하게 유지한다.
그러므로 기동성이 중요한 지역에서는 빠른 혈당 조절과 소화가 필수적이다.
도토리 손칼국수처럼 몸을 가볍게 유지하면서 유연한 움직임이 필요한 전략에 유리하다.
손자는 또, 좁은 길목을 주목했다. 적보다 먼저 차지하면 방어해야 하고, 늦으면 피해야 한다고 했다.
올챙이국수는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고 메밀가루나 옥수숫가루만 끓여 반죽 없이 틀에 눌러 뽑아내는 방식이다.
올챙이국수는 소화가 쉬우며, 에너지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좁은 길목을 먼저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듯, 소화가 빠른 올챙이국수는 신속한 병력 이동과 빠른 전투 준비에 적합하다.
고립된 지형은 후퇴도 어렵고 보급도 힘든 곳이다.
지키기도 어렵고 싸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쫄면은 태생 자체가 고립 상태였다.
인천의 '광신제면'이라는 기업이 실수로 면을 두껍게 뽑았다가 상용화된 국수기 때문이다.
쫄면은 일반 국수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탄력 있는 식감 덕분에 오래 씹을 수 있어 포만감이 크다.
고립된 상황에서는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
쫄면처럼 질긴 내구력을 유지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손자는 죽음의 지형을 언급했다.
이 지형은 사방이 막혀 있어 퇴로가 없는 곳이다.
반드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고 했다.
국수를 너무 오래 삶으면 탄력이 사라지고, 맛과 식감이 떨어진다.
전장에서 전투가 지연되면 군대의 사기도 떨어지고, 생존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과 같다.
물에 퍼진 국수처럼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신속하고 강력한 결정이 필요하다.
전쟁에서 지형에 따라 전략을 조정해야 하듯, 국수도 몸 상태와 환경에 맞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수의 종류와 효능을 이해하면, 우리의 식습관과 전술적 사고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쌀로 만든 음식을 '떡'(餠)이라 하고,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만든 것을 '면'(麵·국수)이라 불렀다.
특히, 삶은 면을 찬물에 헹궈 건져 올린 모습에서 유래해 '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 국수(noodle)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며, 만드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해 빵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 때의 절차와 음식을 기록한 '진찬의궤'와 '진연의궤'를 살펴보면, 국수장국이 20여 차례나 등장하는데, 여기 나온 면의 주재료는 주로 메밀이었다.
국수는 메밀과 밀만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녹두, 고구마, 옥수수, 마, 칡, 도토리, 밤 등 다양한 곡물과 녹말로도 만들 수 있으며, 때로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섞어 더욱 쫄깃한 식감을 내기도 했다.
특히, 고구마나 감자 전분으로 만든 국수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당면의 원형이 됐다.
이렇게 국수는 시대를 넘어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변주되며, 우리의 식탁에 꾸준히 자리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보면 세계 각국에서 'K-Noodle'이라는 테마로 다양한 퓨전 요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일본, 동남아, 이탈리아 등에도 국수의 종류는 많지만, K-푸드가 세계를 강타하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나라 국수야말로 다시 한번 K-푸드 열풍에 기여할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