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strong>본인 제공]](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417/art_17453123909949_9ffd9c.jpg)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스트레스 다스리기에 관해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추가로 더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개인의 스트레스와 '사회적 건강'의 위기가 심각해 총체적 개선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는 사회로 가고 있어 그 과정에서 고립된 개인의 스트레스가 심화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과 SNS의 과도한 사용은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는 SNS에서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접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며 자존감 하락과 스트레스, 우울증을 경험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필자는 SNS가 만들어낸 '가짜 현실'(false reality)이 개인의 현실 인식과 판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 스트레스 경감과 마음 챙김의 중요성
물론 외부적인 사회 환경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대처하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스스로 노력하면 스트레스를 덜 느끼거나 내성을 키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무지하게 바빠 죽겠다'는 말 대신에 하루에 단 15∼20분이라도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걷거나,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명상을 하는 등의 활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SNS를 하는 것은 오히려 효과를 반감시키므로 피해야 한다.
필자 역시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스트레스 경감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하루에 1시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보거나, 식탁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명상이나 스트레스 경감 호흡법(예: 3-4-5 호흡법, 4-11-12 호흡법)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깊고 느린 호흡은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인데, 이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미주 신경이 깊은 호흡을 했을 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정서적 건강 관리와 사회적 연결의 힘
스트레스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상태에서도 비롯될 수 있으므로 신체 관리 또한 중요하다.
충분한 물과 비타민 섭취, 규칙적인 수면, 가벼운 운동은 신체적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친구와 대화하는 등의 가벼운 활동도 스트레스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친밀한 인간관계'가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중요하다.
포옹이나 입맞춤과 같은 신체적 접촉은 건강에 좋으며, 의도적으로 웃는 것은 심장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기보다는 적절히 표출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 관리에 필요하다.
더불어,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도록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장수 연구에서도 일생을 함께할 친구를 사귀고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된다.
나'에서 '우리'로, 사회적 건강의 중요성 인식도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닌,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웰빙 상태로 정의한다.
이는 그동안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만 치중했던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와 환경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를 생각하는 과정이며,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우리'가 없는 '나'만을 우선으로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일부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황금만능주의 사회로 변질해가고 있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신체적 어른'은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일삼으며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이기도 한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극단적인 사고에 쉽게 빠지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 뇌와 심장의 조화로운 발달 및 사회적 처방의 필요성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뇌의 연합영역이 발달하고, 뇌와 심장 사이의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뇌의 연합영역은 인간의 지능, 추론, 계획, 학습, 언어, 상상 등 고등 정신 활동을 담당하고 뇌와 심장의 연결은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는 뇌뿐만 아니라 '심장의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심장에는 기억과 감정을 인지하는 작은 뇌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예로부터 심장은 감정의 근원으로 여겨져 왔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 시스템의 변화 또한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 정책은 소극적인 질병 치료에만 집중돼 있다.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부족하다.
필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ption)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에서의 여가 활동 지원(스포츠, 원예, 노래교실, 봉사활동, 시민대학 등)을 통해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고, 개인의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증진하는 방안이다.
여기에 교육, 보건, 복지에 대한 국가적 투자 확대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
필자는 정부의 최우선 정책이 경제 성장이 아닌 교육, 보건, 복지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GDP 대비 낮은 수준인 국가 보건의료 예산을 증액하고, 획일적인 의료 전달 체계를 개선하며, 건강보험 제도를 다양화하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낮은 의료 수가로 인한 과잉 진료, 짧은 진료 시간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서양 현대 의학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 의학의 융합을 통해 환자 중심의 통합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사례처럼,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 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원효대사의 '화쟁(和諍)' 사상처럼, 다양한 가치관과 지식을 조화롭게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유전자를 뛰어넘어 후천적 노력으로 건강한 미래 건설
최근 유전체 연구가 발전하고 있지만, 유전자가 실제로 발현되는 데에는 후천적인 생활 습관과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몸속 단백질의 종류와 양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고 유전적인 한계를 넘어 건강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결국, 대한민국 사회의 건강 위기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시스템 개선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우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 함양도 필수다.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