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한 대다수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된 가운데 현장에 남은 의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파업 대신 다른 방식의 투쟁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남은 전공의도 있지만, 차가운 여론에 일할 의욕을 잃고 떠날 준비를 하는 의사도 있다. 복지부가 파악한 전국 주요 수련병원의 이탈 전공의 수는 1만2천명가량으로 전체의 93% 정도가 병원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빅5' 병원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은 40% 안팎에 달한다. 많은 병원이 심각한 의사 인력 부족과 '의료 공백'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 "병원 완전히 비우는 건 마지막 수단이 돼야죠" 전공의 A씨는 비수도권의 한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이 병원 역시 대부분의 과에서 전공의가 모두 사직했거나, 한두 명 남아있는 상황이다. 전공의 사직 이후 지난 한 달간 느꼈던 심경을 묻자 그는 먼저 "착잡하다"고 했다. 집단사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공의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의 고민과 정부 정책의 허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한쪽도 마음 편하게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필수의료 살리기'에 동의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정책을 공부해 봤어요.
"환자가 당장 쓰러지지 않도록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외래를 잡아줬을 뿐인데, 감사하다고 하네요.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서울대병원 간호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방역 전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했던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대란'에서도 최선을 다해 환자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환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반강제로 퇴원해야 하는 현실에 간호사들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병원의 수익 악화는 간호사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려 일부 간호사들은 무급휴직을 강요받으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현장에 남은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업무 일부까지 떠맡아야 해 '혹시 의료사고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 환자 생각에 마음 아파…"병세 나빠 내쫓길 일 없겠단 말까지 나와" 서울대병원 간호사인 A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며 환자 걱정부터 털어놨다. 전공의 비율이 전체 의사의 46.2%나 되는 서울대병원은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대표적인 의료기관이다. 특히 서울대병원 입원환자 상당수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나 약 처방을 받기 어려운 중증·희귀질환자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 위에 이고 산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안해 제대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뇌동맥류를 앓고 있는 김모(53)씨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발생하기 닷새 전인 지난달 14일 대전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이 시급하다는 전문의 진단을 받았다. 김씨가 앓는 뇌동맥류는 뇌동맥 혈관 일부가 약해지고 결손이 생겨 해당 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 있는 뇌혈관질환이다. 김씨의 경우 크기가 크고, 교통동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하루빨리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은커녕 수술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수술을 집도할 마취과, 신경외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문의했지만, 김씨를 받아주는 충남지역 내 3차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계속 통원해 경과를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 질환이라 집 근처 병원에서 수술받고 싶었다"며 "전화로는 예약 응대가 어렵다고 해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했는데도 결국 수술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사돈에 팔촌까지 온갖 인맥을 동원한 끝에 경기도 용인시의 한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주간 요양보호사와 마트
"예전에는 세종 병원에서 못 받는 환자는 대전 병원으로 연락을 돌리면 이송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전북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 섭외가 어려워지니 한번 출동할 때 근무가 길어져 퇴근이 늦어지곤 합니다." 세종시의 한 구급센터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 A씨는 지난달 19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대란' 현장에서의 구급 업무를 돌아보며 이같이 밝혔다. A씨는 "평소에는 최대 5군데 정도 병원에 연락을 돌리면 받아주는 병원이 있었으나, 지난 한 달간은 2배인 10건 가까이 전화를 걸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도 응급 환자가 있었는데, 대전과 청주권에서 받아줄 병원이 없어 전주까지 가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보호자들도 이송이 지연돼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 처음 신고받을 때부터 현 상황 때문에 진료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A씨는 특히 얼마 전 아이가 낙상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두부 골절상을 입은 아이였는데 상급병원에서 못 받아준다고 해 일반 병원에 가서 검사를 진행했다"며 "이처럼 상급병원이 받아주지 못한다고 하면 같은 진료를
치매를 인류 공통의 보건 현안으로 지목하고 해법을 궁리해온 세계보건기구(WHO)가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시험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한국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협력을 제안했다. WHO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박인석 이사장)은 최근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고 한국에서 개발 중인 경구용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의 공익적 임상 3상 시험 지원모델에 대해 WHO에 소개했다. 회의에는 WHO에서 정신건강·신경질환 분야 의료 책임자인 타룬 두아 박사, 이민원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공사참사관, 류근혁 전 보건복지부 차관. KoNECT의 박인석 이사장과 하정은 사무국장 등이 참여했다. 재단 측은 2017년부터 정부 주도로 종합적인 치매 관리 체계를 구축해온 한국의 치매 국가책임제에 관해 개략적으로 설명한 뒤 최근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 3상을 정부 지원 방식으로 개시한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재단은 국내 기업인 아리바이오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는 1천250명 규모의 알츠하이머 경구용 치료제 임상 3상 시험(프로젝트명 Polaris-AD)의 국내 임상을 작년 11월부터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임상 참가자를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환자의 '중증·응급도'에 맞게 병원을 이용하게 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선택하고, 의료기관이 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무한경쟁'에 뛰어드는 현재의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발제자인 최수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혁신센터장은 "3차병원 이용 입원환자의 44%, 외래환자의 64%는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의원(1차)에서 상급종합병원(3차)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가 질병주기에 따라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횡적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질병주기'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란, 환자의 상태를 ▲ 급성기 ▲ 회복·재활기 ▲ 만성기 ▲ 돌봄기 등으로 분류해 중증·응급도에 맞는 병원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치료가 시급한 급성기 환자는 상태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 후 좀처럼 돌아오지 않으면서 국내 의료체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전문의가 되고자 수련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의 이탈만으로 심각한 '의료대란'이 벌어진 것은 그동안 전공의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국내 의료체계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이 역설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제 기능을 일깨우고 있다. 상급종합병원들은 전공의 이탈로 어쩔 수 없이 경증환자를 돌려보내고 중증환자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상급종합병원의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에게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상급종합병원을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등 국내 의료체계의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의료대란 부른 '전공의 과의존'…정부 "병원 구조 바로잡겠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그동안 대학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교수나 전문의보다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를 대거 투입하며 비용 절감을 꾀해왔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서 전공의는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 인력의 37.8%를 차지했다. 이른바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으로 대형병원이 심각한 진료 차질을 빚자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형병원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중형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본격적으로 병원을 이탈하기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빅5' 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은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응급질환자를 중심으로 환자를 받고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중등증(중증과 경증 중간 정도)·경증 환자들이 종합병원 등 중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환자가 자연스럽게 '분산'하는 현상이 포착된다. 이달 중하순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A씨는 수술 일정이 취소되자, 병원을 바꿔 다음 달 초 이대서울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A씨는 "이대서울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높지 않아서 수술 지연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은 중증질환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과 이보다 중증도가 더 낮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 및 종합병원'
정부가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에 대응해 '지역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비상진료대책을 세우자 "필요할 때만 찾고 '토사구팽'할 게 아니라 공공병원을 거점의료의 핵심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주요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대규모로 병원을 이탈하자 지방의료원 36곳 등 66곳의 전국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진료시간을 연장하고, 그에 따른 인건비 등 비용을 적극 지원하는 식이다. 이에 시민사회에선 "그간 공공병원을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정부가 부탁과 격려를 남발하는 행태는 후안무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공병원을 '대응 카드'로 쓸 수 있는 이유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과 시도의료원, 국립의료원 등이 이에 속한다. 정부는 '의료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공공병원을 이용해 사태 수습에 나서왔다.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도 정부는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최전선으로 떠밀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5%밖에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