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을 피했다면, 마지막 과제는 '어떻게 먹을 것인가'다. 그런데 그 답의 상당 부분은 뜻밖에도 '먹지 않는 시간'에 들어 있다. 무엇을 얼마나 먹느냐 못지않게, 언제 먹고 언제 멈추느냐가 몸의 살림살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로하면 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당 근로 시간을 정해 두고 주말에 쉰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몸속 장기들에 쉴 틈을 주고 있을까. 음식을 소화하는 간과 췌장, 그리고 먹은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꿔 주는 세포 속 '발전소' 미토콘드리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한다. 이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러 연구자가 권하는 것이 하루 12시간의 공복이다.
◇ 오토파지, 몸속 대청소의 시간
12시간의 공복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에게 단독으로 돌아갔는데, 그 업적이 바로 '오토파지'(autophagy) 연구였다.
오토파지는 그리스어로 '스스로'(auto)와 '먹는다'(phagein)를 합친 말로, '제 몸을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세포가 안에 쌓인 낡은 단백질과 망가진 부품을 스스로 분해해 치우고 재활용하는 작용을 가리킨다. 노벨위원회는 이 현상이 반세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 본질적 중요성은 1990년대 오스미 교수의 효모 연구로 비로소 밝혀졌다고 평가했다.
오토파지는 몸에 영양이 부족할 때, 곧 공복 상태에서 활발해진다. 12시간의 공복은 이 청소 작업이 제대로 돌아갈 시간을 벌어 준다. 집안 대청소를 하듯 세포 속 노폐물을 치우는 셈이다.
이렇게 몸이 제대로 쉬면 간에 저장해 둔 포도당(글리코겐)과 지방을 꺼내 에너지로 쓰고, 청소를 거치며 염증이 가라앉고, 혈당 조절 능력이 좋아지며 미토콘드리아 기능도 튼튼해진다.
면역력이 오르고 몸에 이로운 장내 세균이 늘며, 배부름을 느끼는 뇌의 포만 기능도 제자리를 찾는다. 굶는 12시간이 몸에는 꿀맛 같은 휴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막연한 권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임상 연구들이 그 효과를 숫자로 보여 준다. 당뇨 전 단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한 시험에서는 이른 시간대에 먹는 시간제한 식사를 6주간 실천하자, 체중이 전혀 줄지 않았는데도 인슐린 감수성(인슐린이 혈당을 낮추는 효율)과 혈압, 산화 스트레스가 개선됐다.
이때 수축기 혈압은 평균 11㎜Hg, 이완기 혈압은 10㎜Hg가량 떨어졌다. 대사증후군 환자들이 하루 10시간 안에만 먹도록 한 다른 시험에서도 체중과 혈압, 몸에 해로운 콜레스테롤이 함께 낮아졌다. 비만 성인이 하루 8시간 안에 먹은 연구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평균 7㎜Hg 내려갔다.
다만 시간제한 식사의 이점 상당 부분이 결국 하루 총섭취량이 줄어든 데서 온다는 분석도 있어, 굶는 시간 자체를 만능으로 여길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여러 연구는 먹는 시간을 앞당기고 좁히는 것만으로도 대사 건강에 이롭다는 데 대체로 뜻을 같이한다.
◇ 낮에는 먹고 밤에는 쉬어라
우리 몸은 해와 달의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이를 생체리듬, 곧 몸속 시계라 부른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도 이 몸속 시계의 비밀을 밝힌 미국 과학자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초파리에서 '주기 유전자'(period)를 찾아내,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이 밤에 세포 안에 쌓였다가 낮에 분해되며 24시간 주기를 그린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오토파지에 이어 이듬해 생체시계 연구가 잇달아 최고 영예를 안은 셈이다.
혈압과 소화 작용, 약물에 대한 반응, 유전자의 활동, 장내 세균의 구성, 체온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까지 이 시계에 맞춰 시간대별로 달라진다. 특히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은 췌장에서 나오는데, 밤이 되면 그 분비가 크게 줄어든다. 밤늦게 먹으면 혈당이 잘 처리되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 밤참은 몸의 시계를 거스르는 습관이다. 낮에 먹고 밤에 굶는 식사, 곧 생체리듬에 맞춘 식사가 몸을 편하게 한다. 일찍이 동양 전통 의학이 장기마다 기운이 왕성한 때가 다르다고 본 것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을 먹느냐만큼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도 중요하다. 식탁에서는 일과 돈,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되도록 삼가는 편이 좋다. 스트레스와 다툼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잠시 내려놓자. 음식에 집중해 천천히 오래 씹고 맛을 음미하면 과식을 피할 수 있다. 뇌가 배부름을 알아채는 데는 20분 안팎이 걸리니, 서둘러 먹으면 그새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된다.
여럿이 둘러앉아 왁자하게 먹는 밥은 그 자체로 건강에 이롭다. 세계의 장수 지역을 뜻하는 '블루존'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연구위원 댄 뷰트너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일본 오키나와, 코스타리카 니코야, 그리스 이카리아, 미국 로마린다를 세계 5대 장수 마을로 꼽았다.
이곳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가족과 이웃이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밥을 먹는 풍경이었다.
즐거운 식사는 소화를 돕고 마음을 채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함께 둘러앉는 밥상이다. 잘 먹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