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노년기 복병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아시나요

2020.07.24 09:26:53

환자 30%는 치료 필요한 '활동성'…'체중감소·발열·식은땀' 동반
표적치료 신약 개발 잇따르면서 부작용 줄고 치료 효과 좋아져

 김모(78·여)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던 증상이 없어진 데다 식욕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7년 전인 2013년 건강검진서 '만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처음 진단받았던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김씨는 당시 만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진단받은 이후 항암제 복용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빈혈이 악화하고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이어진 2차 치료에서도 호흡곤란 증상은 지속했고, 5년여에 걸친 치료에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새롭게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된 신규 항암제로 치료를 이어갔지만, 식욕이 감퇴하고 여전히 숨이 차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만성콩팥병까지 앓고 있던 터라 계속해서 항암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주치의는 이런 김씨에게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치료를 권유했다. 표적항암제 치료 5개월이 지나자 김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빈혈이 없어지고, 림프절 비대도 사라졌다.

 또한, 혈액검사 수치가 정상을 되찾으면서 전신상태가 호전됐고, 잃었던 식욕도 돌아왔다. 의료진은 "정밀검사 결과 전체 혈액세포 1만개당 암세포가 하나도 검출되지 않는, 이른바 미세잔류질환이 음성인 상태"라며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 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내년까지 표적치료제를 복용할 예정이다.

 ◇ 고령층 환자 많은 서구형 질환…국내서도 환자 증가 우려

 백혈병은 혈액에 생기는 암이다. 우리 몸의 뼈 중심 부분에 위치한 골수는 백혈구·적혈구·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를 생산하고 성숙시켜 혈액으로 방출하는 장소인데, 여기서 백혈구에 이상이 생겨 지나치게 많은 비정상 백혈구 세포가 증식할 때 이를 백혈병이라고 한다.

 백혈구 암세포가 증식하기 시작할 때 초기에 이를 막지 못하면 결국 암세포가 골수를 가득 채우고 말초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백혈병 세포가 몸 안의 주요 장기에 침범하면 장기 기능의 이상이나 소실을 가져와 경우에 따라 다른 종양을 만들기도 한다.

 사실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10만명당 발병률이 0.1명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년에 약 60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새롭게 진단돼 전국적으로 30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암 환자 중에서도 1.5%에 불과할 정도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서구의 경우 한국보다 약 35배 이상 발병률이 높고 환자들의 평균 연령도 70세 정도로 고령층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는 평균 발병 연령이 아직 6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지만, 발생 유형이 점점 서구화되는 추세다. 실제로 최근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늘면서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도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특히 림프구의 증가가 발견돼 만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 질환의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체중감소·발열·식은땀' 동반하는 활동성이면 치료 시작해야

 만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았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질환이 진행성으로 확인된 환자에 대해서만 치료를 시작한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를 보면, 전체 환자의 약 30% 정도가 질환이 진행된 '활동성'으로 진단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나머지 70%의 환자들은 3∼6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인 혈액검사로 경과만 관찰하고 있다. 치료하지 않은 경우 5년 생존율은 60∼80% 정도다.

 활동성을 판단하는 증상으로는 체중감소, 발열, 저녁에 식은땀이 나는 증상, 반복되는 감염, 전신상태 악화, 점진적인 림프절 크기의 증가, 빈혈, 혈소판 감소 등이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젊은 연령이고 심각한 질환이 동반되지 않으면 단일클론항체(표적치료) 약물을 포함하는 병용 항암면역화학요법이 표준치료에 해당한다. 성공적인 치료는 1.5㎝ 이상 크기의 림프절이 없고, 간·비장 크기가 정상화되면서, 백혈병과 관련된 증상이 없어진 게 관찰돼야 한다.

 이에 더해 혈액검사와 골수검사에서도 정상을 회복하면 완치 수준인 '완전관해'라고 판정한다.

 보통 약 90%의 환자는 항암면역화학요법에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이후 평균 약 6년에 가깝게 이런 반응이 유지된다. 다만, 백혈구 중 면역을 담당하는 호중구의 감소와 감염 등이 일부 환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요법은 고령, 특히 70세 이상의 환자나 전신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게 단점이다.

 2000년대 중반 이 요법이 개발된 후 최근까지 이를 대체할 만한 요법이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 항체약물보다 효능을 향상한 단일클론항체 약물과 경구항암제를 병용하는 요법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70세 이상의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요법을 시행하는 경우 70% 이상의 환자가 치료에 반응하고 무진행생존기간(반응을 보인 후 질환이 진행하지 않고 유지되는 기간)의 중앙값이 27개월에 달하는 등 고무적인 성적이 발표된 바 있다.

 ◇ 재발 막는 표적치료제 속속 개발…임상시험 적극 참여해야

 이처럼 1차 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높아지고, 효능 지속기간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환자가 결국 재발을 겪는 건 여전한 문제로 꼽힌다.

 만약 첫 치료 후 2년 이내에 재발했다면 처음 치료했던 방식을 그대로 시행하는 게 추천된다. 반면 2년 이후 재발이라면 다양한 항암제 병용요법을 시도하는 게 통상적이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큰 항암화학약품을 포함하지 않는 표적치료제만의 조합으로 부작용은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효능을 높이는 요법이 개발돼 향후 이 질환의 치료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대표적인 게 이브루티닙(ibrutinib), 베네토클락스(veneotoclax) 등이다.

 외국에서는 이와 함께 우리 몸속 면역세포의 힘을 증강해 백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치료 성적이 100% 만족스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현재의 표준치료인 항암면역치료를 적용하기 어려운 고령의 환자, 심각한 질환을 동반한 환자, 1차 치료 종료 후 조기에 재발한 환자 등은 속속 시도되고 있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은 발병 원인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뚜렷한 예방법은 없다. 다만, 평상시 과로를 피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체력 관리에도 신경쓰는 생활수칙이 권고된다.

엄기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 엄기성 교수는 1991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대 대학원에서 내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혈액병원 내 만성백혈병센터장을 맡고 있다. 림프종, 만성림프구성백혈병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2007년에는 포항공대와 미국 샌디에이고 스크립스연구소에서 세포면역학 분야를 주제로 연수했다. 현재 대한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대한면역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관리자 기자 K19880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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