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환영회다, 개강총회다 해서 단체 손님이 몰려도 예전처럼 술이 나가질 않아요. 가게에 10개 테이블이 있으면 그중 7개 테이블이 콜라만 마셔요."
신촌 대학가에서 5년째 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0일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부어라 마셔라' 음주 문화가 대학 생활의 낭만처럼 여겨졌던 시절은 갔다. 캠퍼스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며 대면 행사가 활발해진 3월이지만, 주점 테이블 위에 술병이 쌓이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 "8명이 와도 겨우 한두병 먹는 수준"
1997년부터 고려대가 자리한 안암동에서 '이가네 곱창'을 운영해 온 이재홍 씨는 "예전에는 1인당 최소 한 병 반씩은 마셨는데, 요즘은 평균으로 따지면 한두 잔 정도 마시는 수준"이라며 "술이 아예 안 나가는 날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술 매출은 예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고, 곱창 매출도 40%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새벽 4시까지 하던 영업도 밤 11시로 줄였다"고 말했다.
신촌 대학가에서 27년째 주점 '연대포'를 운영하고 있는 장홍복 씨는 "8명이 와도 한두 병 겨우 먹고 가는 수준"이라며 "신입생들이 들어왔는데도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 영업시간을 새벽 4~5시까지에서 밤 11시~자정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NH농협은행이 농협카드 고객과 NH멤버스 회원 등 1천200만여 명의 소비 데이터 2억6천만 건을 분석한 결과, 주점 카드 결제 건수는 최근 1년 동안 2023년 대비 76.6%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주점 업종 가맹점 수 역시 3년 전보다 1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안암동에서 주점 '한잔의 추억'을 운영해온 이모 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이 거리 일대 바들이 자정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가장 붐볐는데, 그때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며 "술을 마시는 문화도 그때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은 20대 학생들보다는 주로 다른 가게에서 일하다가 퇴근한 종업원들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서울 지역 호프집·간이주점 점포 수는 2023년 1만6천512개에서 2024년 1만5천312개, 2025년 1만4천200개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부터 안암동에서 주점 '희야'를 운영해 온 김현태 씨는 "코로나 전에는 새벽 4시에도 자리가 꽉 찼고,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했지만 지금은 자정만 넘으면 손님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인근에서 포장마차 형태의 술집을 운영하는 공모 씨도 "예전에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마시면 다음 날 후회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최근에는 도수가 낮은 술이 더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고깃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암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요즘 학생들은 4명이 와서 고기는 배부르게 먹어도 술은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거나 아예 탄산음료만 마시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며 "예전에는 과 단위로 수십 명씩 예약하면 술을 궤짝째로 마셨는데, 이제는 단체 손님이 와도 자정이면 다들 집에 간다"고 말했다.
신촌 대학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 씨 역시 "예전에는 새벽 2시까지 북적였는데, 요즘은 밤 10시만 되면 손님이 뚝 끊긴다"며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안주도 더 먹는데, 학생들이 술을 안 마시니까 고기 매출도 함께 줄어들어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 "과음 후 숙취로 하루 날리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
대학생들은 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세대 24학번 김모(22) 씨는 "술을 진탕 마시고 다음 날 숙취로 하루를 날리는 게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며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구식 문화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술을 못 마시면 콜라를 마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라, 도수 낮은 하이볼 한 잔을 시켜놓고 대화하는 걸 더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24학번 최모(23) 씨는 "선배들로부터 막걸리를 사발에 담아 돌려 마시는 '사발식'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며 "고연전 같은 큰 행사 뒤풀이도 술을 많이 마시기보다는 기차놀이 같은 이벤트를 즐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25학번 임모(21) 씨 역시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지만, 많이 마셔야 한다는 분위기 자체가 없어서 제로 콜라나 무알코올 하이볼을 주로 마신다"며 "친구들과는 술집보다 카페나 코인노래방, 보드게임카페를 더 자주 간다"고 밝혔다.
또 이화여대 21학번 이모(24) 씨는 "코로나 이후 엠티(MT)나 신입생환영회 같은 술 중심 행사가 많이 줄어들면서 술을 안 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일상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 김모(29) 씨도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는 밤새 술을 마시는 게 당연했는데, 작년에 대학에 입학한 동생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술을 거의 안 마신다고 하더라"며 "술집에 가보면 무알코올 맥주나 하이볼 메뉴가 눈에 띄게 많던데, 곧 무알코올 소주도 나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 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만 19세 포함)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64.8g으로, 1년 전 95.5g에서 30% 이상 급감했다. 이는 60대의 하루 평균 섭취량인 66.8g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버'(Sober)와 호기심이 많다는 뜻의 '큐리어스'(Curious)를 합친 말로, 건강한 삶을 위해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거나 멀리하는 태도를 뜻한다.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헬시 플레저'도 코로나19 이후 각광 받는다.
이에 주점들도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한다.
안암동에서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최근에는 사진 찍기 예쁜 하이볼이나 도수 없는 무알코올 칵테일 주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제는 단순히 술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술 없이도 올 수 있는 안주 맛집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희야'의 주인 김현태 씨는 "주점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변화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생태계 변화'라는 표현이 더 맞는다"며 "예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화에 대응하고자 2년 전부터 무알코올 음료를 메뉴에 추가했다"며 "다만 그럼에도 매출은 코로나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5일 "요즘 20대는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라 음주처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을 굳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회식이나 집단 문화에 예전만큼 가치를 두지 않는 것도 음주 감소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대학가 주점도 예전처럼 양과 가격으로 승부하는 방식만으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무알코올 음료나 웰빙과 관련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메뉴와 마케팅 전략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