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스트레스 태아에 전달...젖니에 생생한 흔적 남긴다"

  • 등록 2021.11.17 21: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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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기간 우울증 겪은 여성의 자녀, 젖니 생장선 더 넓어
나이테와 비슷한 젖니 생장선, 아동 정신 건강 지표로 개발
미국 하버드 의대 등 연구진, 미국 의사협회 저널에 논문

 여성이 임신 기간 심리ㆍ사회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태아는 물론 출산한 아기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태아가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이런 스트레스는 성인이 됐을 때까지 건강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태아가 모체(母體) 내에서 경험하는 이런 '역경(early-life adversity)'의 흔적이 유치(乳齒), 즉 젖니의 생장선(growth lines)에 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젖니의 생장선 너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나중에 우울증 등 정신 건강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아동을 미리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로 기대한다.

 이 연구는 미국 하버드 의대의 최대 교육병원인 매사추세츠 제너럴 호스피털(MGH) 과학자들이 수행했다.

 관련 논문은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의사협회 저널인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실렸다.

 이 발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울증ㆍ불안증 등의 위험 요인을 가진 아동에게 예방 치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런 목적에 쓸 만큼 효과적인 진단 도구가 개발돼 있지 않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MGH 소아 신경발달 유전학 유닛(unit)의 에린 던(Erin C. Dunn) 박사는 태아가 어떤 시점에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리고 태아기 스트레스가 아동 발달 과정에서 특별히 해롭게 작용하는 때가 언제인지 등을 연구해 왔다.

 던 박사는 인류학 분야의 치아 연구 성과를 접하고 이번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인간의 치아가 '다양한 인생 경험의 항구적 기록'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예컨대 영양 부족이나 질병으로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치아의 법랑질(에나멜질) 형성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치아 내부에 선명한 생장선을 만든다.

 '스트레스 선(stress lines)'이라고도 하는 이 치아 생장선은, 수목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보여주는 나이테와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

 나이테를 보면 형성 시기의 기후 조건을 짐작할 수 있듯이, 젖니의 생장선을 보면 태아가 자궁 안에서(출생 직후 포함) 어떤 환경에 처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던 박사는 첫 번째 생장선인 '신생아 선(neonatal line)'의 너비가 하나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모가 임신 기간과 출산 직후에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는지 여부가 신생아 선에 나타날 거로 짐작했다.

 던 박사팀은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영국의 '에이번 부모ㆍ자녀 종단 연구(ALSPAC)'로부터 만 5∼7세 아동 70명의 뾰족한 앞니를 지원받았다. 부모가 저절로 빠진 자녀의 젖니를 연구용으로 기증한 것이었다.

 이들 어린이의 엄마는 아동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4가지 요인에 관한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여기엔 출산 전 스트레스, 심리학적 병력(病歷), 경제적 궁핍도, 사회적 지원 수준 등에 관한 질문이 포함됐다.

 젖니의 현미경 측정 결과와 설문 조사 결과를 비교 분석했더니, 몇 가지 명확한 패턴이 드러났다.

 임신 32주 차에 우울증 또는 불안증을 겪었거나,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을 평생 심하게 앓았던 여성의 자녀에게 위험 징후가 나타났다.

 이런 여성의 자녀는 젖니의 신생아 선 폭이 그렇지 않은 여성의 자녀보다 넓은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임신 직후부터 사회적 지원을 많이 받은 여성의 자녀는 신생아 선의 폭이 대체로 좁았다.

보통 신생아 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요인, 다시 말해 임신 중 철분 보충, 잉태 연령(gestational ageㆍ임신부터 출산까지 걸린 시간), 산모의 비만 여부 등을 고려해도 이런 결과는 손상되지 않았다.

 
뇌 기능과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장 미생물

 과학자들은 젖니의 신생아 선이 어떤 요인으로 생기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아기를 가진 여성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생기면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cortisol) 분비가 늘어나 치아의 법랑질 생성 세포를 교란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임부(妊婦)의 전신 염증 반응도 여기에 개입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앞으로 신생아 선 등 젖니의 성장 흔적을 아동의 정신 건강 지표로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어린이가 태아기(수정 2개월 후부터 출산까지 기간)와 출생 직후, 엄마의 스트레스에 간접적으로 노출됐는지 가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버드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인 던 박사는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그런 어린이를 치료적 개입과 연계해 정신 건강 질환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이 지표를 실제로 쓰려면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던 박사팀이 개발한 진단법이 실제로 효과적이라는 걸 더 큰 규모의 연구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 다.

관리자 기자 K19880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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