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신경이 온통 윗집에…"이웃이 잠재적인 적"

2021.12.24 08:43:38

한번 소음 인지하면 계속 들려…심하면 스트레스성 질환도
'코로나 재택'으로 갈등 더 커져…"아파트 떠나는 게 답인가?"

 "심장에 이상이 올 것 같아요.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쿵쿵거릴 때 충격이 몸으로 전해지거든요. 육체적 폭력에 가깝다니까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2013년부터 살았다는 회사원 이모(44)씨는 1년 가까이 윗집의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단순히 '시끄럽다'고 느끼는 수준을 넘어 집에서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 계속되다 보니 이웃에게 적대감까지 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경찰의 현장 부실대응 논란을 일으킨 인천 빌라 흉기난동 사건도 발단은 층간소음이었다. 아래층에 살던 주민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윗집 거주자의 층간소음에 시달렸고, 급기야 경찰에 신고하는 등 갈등이 커진 끝에 칼부림까지 당하는 '이중 피해자'가 됐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접수한 층간소음 관련 전화상담 통계는 2012년 8천795건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바깥출입이 줄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4만2천250건을 기록했다. 올 9월까지도 이미 전년도의 82.3%에 달하는 3만4천759건의 상담이 발생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 보편적 거주 형태로 자리잡은 반면 이웃과 소통은 뜸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층간소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웃 간 분쟁의 주된 요인으로 떠올랐다. 장기간 소음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이웃과 갈등을 겪다 트라우마까지 호소하는 것도 모자라 집을 옮기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 "층간소음에 주거공간 무의미…떠나고 싶다"

 회사원 이씨에게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겨울부터다. 5년 전 한 부부가 윗집을 매입해 입주했는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더니 집 안에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이씨가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문제가 커졌다. 아이가 발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 정도는 참아주려 했지만, 바닥에 내리꽂는 듯 '쿵'하는 소리를 내는 일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자 나중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기 일쑤였다.

 한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이전까지는 별로 의식하지도 않던 위층의 모든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른바 '귀 트임'의 시작이었다. 집에서 나는 시곗바늘 소리를 의식하지 않다가 어떤 계기로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내내 들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저는 원래 소리에 둔감한 사람이었고 위층 소리에도 신경을 안 썼어요. 재택근무 과정에서 계속 집에 있다 보니 귀가 트여버린 거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으면서 이후에는 신경이 온통 천장에 가 있어요. 그때부터는 다른 소리는 안 들려도 위층에서 나는 물소리, 아이 소리는 다 들려요."

 문제의 이웃을 직접 대면해 항의하다가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일단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사무소에서도 "직접 가는 것보다 우리가 대신 얘기하는 게 낫다"고 했다. 이후 잠시 나아지는 듯했으나 소음은 여전했다. 밤까지 소음이 계속되자 잠을 편히 이루기 어려워 직장생활에까지 지장을 받았다.

 이씨는 층간소음 때문에 주말에는 아예 집을 비운다. 서울 근교에 호텔을 잡아 놓고 토요일에 나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온다. 주말에라도 소음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제 집은 주거공간으로서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어요. 겨우 잠만 자는 수준이고. 여름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창문을 열어 놓고 윗집에 대고 고함을 지른 적도 있어요.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돼 가는 것 같아 스스로도 실망스럽죠. 아파트를 떠나는 것만이 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신체 건강까지 좀먹는 소음 스트레스…탈모도 경험

 장기간에 걸친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당사자의 신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들은 소음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두통, 심혈관계 질환, 탈모 등 다양한 스트레스성 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현구 송원대 교수와 이선화 광신대 교수는 층간소음 당사자들을 심층 면접한 논문 '층간소음 피해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인 층간소음에 대해 심리적으로 경계하고 대항하려는 심신의 변화 과정을 경험하게 되며 소음으로부터 위협당하거나 도전받을 때 신체를 보호하고자 신체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한 면접자는 층간소음이 계속될 때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르면 정이나 망치로 치듯이 머리를 진짜 때리는 것처럼 지끈지끈 아프다", "갑자기 피가 빨리 돌고 몸에서는 열이 나는 게 느껴진다"며 소음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 변화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면접자는 자정 이후까지 위층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구토하는 소리 등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이상 반응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참다못해 항의하러 이웃을 찾아갔지만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면 분노와 좌절감만 커진다.

 면접자들이 밝힌 이웃들의 반응 중에는 "내 집에서 내가 왜 슬리퍼를 신어야 하냐", "우리는 금요일이 지나면 마음껏 즐겨야 한다", "내 집에서 내가 뛰는데 왜 그러냐", "싫으면 이사 가라"는 등 가해자가 되레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항의 이후 위층에서 '보복성 소음'을 더 냈다는 사례도 있다.

 이런 갈등이 계속되면 욕설과 몸싸움 등 과격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극단적으로는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웃과 굳이 얼굴을 붉히기는 싫어 이사를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회사원 이씨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전원주택을 마련할 수 있을지 틈틈이 알아보고 있다"며 "층간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이웃이라는 존재가 '잠재적인 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관리자 기자 K19880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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