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동연구진이 지금까지 제작된 것 중 가장 광범위하고 세밀한 인간 뇌세포 지도를 완성했다.
이 연구에서 인간 뇌는 알려진 것보다 약 10배 많은 3천300여개 유형의 세포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뇌세포 차이도 일부 규명됐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13일 '뇌 이니셔티브 세포 센서스 네트워크'(BICCN) 연구팀이 이날 '사이언스'(Science)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등 3개 저널에 인간 뇌세포 지도 연구 논문 21편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BICCN은 혁신적인 신경 기술을 통해 인간과 쥐, 비인간 영장류 뇌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형의 세포를 분석하고 포괄적인 뇌세포 지도를 제작해 연구자와 대중에게 제공하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2017년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뇌가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약 10배 많은 3천313개 유형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각 세포 유형이 사용하는 전체 유전자 세트를 확인하고 뇌의 영역별 분포 지도로 제작했다.
또 침팬지, 고릴라, 붉은털원숭이, 마모셋 원숭이 등 다른 영장류와 인간 뇌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사해 인간을 진화론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몇 가지 요인도 밝혀냈다.
AAAS는 이 뇌세포 지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 등을 밝혀내는 도구라며 세포 수준에서 인간 뇌를 이해하면 어떤 세포 유형이 특정 돌연변이의 영향을 받아 신경질환을 일으키는지,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뇌세포 수준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뇌는 1천억 개 이상의 뉴런과 그보다 많은 비뉴런 세포로 구성되며, 모든 세포는 다양한 기능을 관장하는 수백개의 뇌 구조 속에 복잡하게 조직화돼 있다.
이 연구의 핵심 내용은 유전자 발현과 유전자 조절 구조를 포함한 인간 뇌세포 지도 초안이 담긴 세 편의 논문(Kimberly Siletti et al., Yang Li et al., and Wei Tian et al.)에 실렸다.
시애틀 앨런 뇌과학 연구소 넬슨 요한슨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전증과 종양 수술을 받은 성인 75명의 뇌세포 유형 변이를 조사해 뇌세포가 개인마다 무엇이 다른지 밝혀냈다.
하버드대 파올로 알로타 교수는 논평(Perspective)에서 "건강한 사람이나 질병이 있는 사람 모두 유전적 변이와 환경 반응 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전형적 인간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연구에서는 뇌세포의 다양성이 학습·의사결정·감각 지각·기억·언어 등 고등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신피질 대신 진화적으로 오래된 뇌 부위인 중뇌와 후뇌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가장 흔한 치매 유형인 알츠하이머병과 조현병, 양극성 장애, 주요 우울증 등 다양한 신경정신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스위치와 뇌세포 유형도 분석됐다.
뇌의 면역 세포인 미세아교세포와 알츠하이머병 간 연관성이 확인됐고, 특정 유형의 뇌 신경세포와 조현병 사이의 연관성도 드러났다.
공동연구자인 앨런 뇌과학연구소 에드 레인 박사는 "다양한 유형의 세포는 뚜렷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질병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뇌세포 지도가 아직 치료법이나 치료제가 없는 대부분 뇌 질환의 세포적 기초를 이해하고 차세대 치료제 표적을 찾는 데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진화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고릴라 뇌에서 언어 이해력 등 고등인지 기능과 관련된 측두엽 피질과 인간 뇌를 비교해 인간 고유의 특징을 찾아냈다.
인간과 이들 영장류의 뇌세포 조직은 비슷하지만, 인간 뇌에서는 신경 연결에 관여하는 많은 유전자를 포함한 특정 유전자들이 다른 두 영장류와 다르게 기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레인 박사는 "두 영장류와 달리 인간 뇌의 특정 세포 유형에서 나타나는 이런 분자 변형이 뇌세 포 연결 방식 또는 연결의 가소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것이 인간의 뇌를 독특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뇌 연구에서 여전히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공동연구자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 빙 렌 교수는 "이 결과는 인간 뇌의 복잡성 설명에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뇌 구조와 기능의 다양성, 가변성, 기능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티아 마로소 사이언스 수석 편집자는 "이제 전 세계 연구자들이 이 성과를 이용해 인간 뇌에 대한 근본적인 과학적 의문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세포 수준의 인간 뇌 연구 시대가 우리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 출처 : Science, Mattia Maroso, 'A quest into the human brain', https://doi.org/10.1126/science.adl0913 등 사이언스 및 관련 저널 논문 2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