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전공의가 사라진 상황에서 전문의 수마저 줄어드니 남은 의료진이 모든 걸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운 상황입니다."
31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문의는 이 병원 응급 의료현장이 한계 상황에 봉착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추석 연휴 기간을 앞두고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도내 핵심적인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에서도 관련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 "중증 환자 계속 들어오는데 의사는 부족"…전원 사례도 잇따라
당초 14명의 전문의가 근무했으나 반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 속에서 이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됐다.
남은 11명 가운데 4명 또한 격무를 호소하며 사직서를 냈으나, 병원 측의 설득 끝에 이들 모두 사직을 보류하고 일단 업무를 이어가기로 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의정 갈등 장기화로 남은 의료진의 업무 피로가 누적돼온 만큼 이 병원 응급 의료현장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아주대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A 교수는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문의 혼자 채우다 보니 동시간대에 여러 환자가 들어올 경우 업무 분담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한다"며 "당직 근무 또한 늘어난 탓에 피로도가 상당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아주대병원 응급실의 경우 경기 남부지역의 중환자 치료 거점으로 꼽히는 만큼 의료 공백이 발생할 시 파장이 더욱 크다.
이 병원 응급실에는 일평균 110∼120명의 환자가 들어오고, 이 중 60∼70명은 성인인데 이는 '전국 최다' 수준이다.
응급 환자의 중증도 또한 전국에서 1∼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의정 갈등 이후 이 병원 응급실로 들어오는 환자 수가 전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최근까지도 환자를 다 수용하지 못해 전원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남부지역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특히 지난달부터 아주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시민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듯하다"며 "이곳 응급실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며 시민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이미 이 병원 소아응급실의 경우 일부 전문의가 근무를 중단하면서 수요일과 토요일엔 초중증 환자만 받는 '축소 진료'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A 교수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촌각을 다투는 중증 환자들이 많이 들어와 치료 난도가 상당히 높은 경우도 많다"며 "충분한 의료진이 확보돼야 각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데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고, 이런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기약도 없으니 의사들이 속속 사의를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 추석 앞두고 깊어진 고민…병원 "최대한 파행 없도록 할 것"
이런 가운데 추석 연휴 시작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일선 응급실 의료진들은 고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으로, 평소 평일의 1.9배 수준이었다.
추석 연휴에는 사고로 인한 응급실 방문도 늘어나 화상이 3배, 관통상이 2.4배, 교통사고가 1.5배까지 증가했다.
환자가 급증해도 대부분은 경증이라는 게 정부와 의료계의 설명이지만, 이전보다 응급실 의사 수가 줄어든 만큼 현장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최근 전문의 등 내부 구성원들과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매주 수요일 하루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는 방안 또한 언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 내부에서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며, 현재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며 "응급실을 지금처럼 정상 운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아주대병원이 응급실 전문의들의 잇단 사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점을 고려해 10억원을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병원 측이 응급실 정상화를 위한 인건비 등을 충당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긴급지원은 '경기도 응급의료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으로, 10억원은 재난관리기금으로 충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