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즐기자구 쇼핑도 하고 말이야이젠 그만 사요 가방이 한 개가 더 늘어났어요한세웅은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머리칼이 비에 젖어 달라붙은 사내가 커피숍으로 들어섰다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자 안쪽의 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바깥에서 몰려온 바람이 커피숍의 열린 문을 향해 들어오자 상큼한 비 냄새가 났다 비린 듯한 냄새였다전에 파리에 가셨을 때 걱정했었어요 실비아의 말에 한세웅이 머리를 들었다검은 눈동자가 깜박이지도 않고 그를 향하고 있었다그땐 잘 끝났지만 당신을 다시 만날 때까지 조마조마 했어요마찬가지야한세웅이 가볍게 말했다무슨 일이건 마찬가지라구 죽을 운명이면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뭐라고 대답할듯 실비아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시간과 장소를 골라 일을 할 만큼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냐 그리고 그런 일일수록 이익이 많은 법이니까지금은 그런 얘기 하기 싫어요실비아가 불쑥 말했으므로 한세웅은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이 중요해요 사업은 그 다음이고 그리고 우린 사업을 잠시 잊고 여행을 하러 온 거예요난 당신이 날 보면서 행복하기를 원해요 내가 그런 만큼그녀를 바라보던 한세웅의 머리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크게 끄덕여졌다실비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어제 시내의 백화점에서 산 검정색 드레스는 몸에 잘 맞았고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에머랄드가 박힌 금 목걸이를 목에 대고 거울을 보자 반짝이는 금이 옷 색깔과 잘 어울려 보였다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실비아는 이것이 행복한 여자의 얼굴이라고 믿었다 거울 앞에 놓인 향수병을 집어 겨드랑이와 가슴에 한 방울씩 떨어 뜨렸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이 목에도 한 방울을 발랐다벽에 걸린 시계는 여덟시 십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핸드백을 집어든 실비아는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섰던 한세웅이 눈을 크게 떴다아름답군 실비아입술을 깨물면서 실비아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한세웅의 팔을 끼고 로비를 가로질러 가던 실비아는 주변의 사내들이 자신을 힐끗 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친구 만났어요어색함을 떨쳐내듯이 한세웅을 바라보며 물었다응파리 시내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를 만난다면서 한세웅은 점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