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휴대전화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냥 내쫓지 않는 데 찾아 다니는 거지 별수 있나."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김제만(73)씨는 거의 매일같이 이곳 공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고 했다.
코로나19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 확인제)에 관해 묻자 김씨는 "불편함은 말해 뭐하겠느냐"며 "그런 거 하라고 하면 노인네들이 어떻게 다니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스마트폰이 없는 김씨는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접종 증명서 발급이 어렵고 복잡해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식당에 가서 일단 앉고 주인이 방역패스가 없다고 나가라 그러면 나오고, '그냥 드시라'고 하면 먹는다"고 말했다.
최근 마트·백화점과 12∼18세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방역패스 시행을 중단시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잇따른 가운데,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은 방역패스 사용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방역패스 제도를 적용하는 대상이나 지역 등을 놓고 혼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년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이 이 제도 자체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두고도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공원 옆 거리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이모(79)씨는 "예전엔 가끔 커피도 마시러 갔는데 지금은 가면 뭘 찍으라, 전화를 걸라, 시키는 게 많아 어지러워서 안 가게 된다"며 "추워도 밖에 있는 게 가장 속이 편하다"고 내뱉었다.
스마트폰이 있는 노인들도 시시때때로 접종 이력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QR코드 시스템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조무일(80)씨는 "저번에 식당에 갔더니 QR코드를 안 찍으면 못 들어간다고 해 종업원에게 아예 휴대전화를 주고 알아서 좀 해달라고 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설명을 들어도 돌아서면 까먹는다"고 푸념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주로 찾는 종로3가 일대 소규모 식당에서는 사실상 방역패스는 무용지물이었다.
대다수는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안심콜을 사용했고, 여전히 수기명부를 작성하는 곳도 있었다. 수기명부조차 없는 점포도 여럿 눈에 띄었다.
식당 입구에 수기명부를 마련해 놓은 한 자영업자는 "구청에 안심콜을 신청하려고 문의했더니 우리 가게는 무허가 점포라 안된다고 하더라"며 "어쩔 수 없이 수기명부를 쓰라고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오시다 보니 사실 그마저도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낙원상가 지하에 있는 점포들도 정부의 방역지침이 유명무실한 건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낙원시장 내 식당 10여곳을 발품을 팔아 살폈지만, QR코드를 확인하는 곳은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유율은 국민 평균은 91.4% 수준이었으나, 70대 이상 노년층을 기준으로 할 경우 38.3%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처럼 QR코드 중심의 방역패스가 가진 한계가 대두되자 디지털 소외계층도 보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역패스 확인 방식을 도입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고양시정연구은 '코로나19 방역패스 시스템 진단을 통한 안심콜 방역패스의 활성화 방안 제언' 보고서에서 "QR 체크인 기반의 방역패스 방식은 노인·장애인·어린이 등 정보 취약·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QR 체크인 방식의 보완 수단 및 대안으로 기존 안심콜에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역패스 기능을 결합한 '안심콜 방역 패스'를 제시했다.
안심콜 방역패스는 방문자가 전화를 걸면 접종 여부를 알려주는 문자가 휴대전화로 전송돼 이를 업주에게 보내주는 방식으로 고양시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연구진은 "안심콜 방역패스는 정보 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집단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방역패스 표준화 모델로 안심콜 방역패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