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조건 : 경청과 이해의 기술

김은성 박사의 스피치 & 커뮤니케이션

 1418년 8월 12일, 세종대왕이 즉위 후 한 첫 말은 "의논하자"였다.

 신하들은 쉽사리 그 말을 믿지 못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왕권을 강화한 선왕 태종 때처럼 섣불리 의견을 내놨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종은 '전략적 침묵'을 택했다.

 재위 4년이 될 때까지 신하의 말부터 경청했고, 일단 수긍한 후에야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설령 신하의 의견이 틀리거나 내 뜻과 달라도 "그 뜻이 좋다.

 네 말이 아름답다"라고 격려하며 기분 좋게 계속 충언하도록 이끌었다.

 ◇ 경청하라… 핵심은 집중·반응·인정

 따라서 의식적으로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딴생각을 하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시계를 흘끔거리면 집중할 수 없다.

 2단계는 몸으로 듣기로, 키워드는 '반응'이다.

 진지한 표정과 적절한 반응으로 상대가 더 많이 얘기하도록 북돋는 것이다.

 또 상대의 말을 내 언어로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토크쇼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대표적 예다.

 수시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다음에 어떻게 됐죠?" "맞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등 적극적 추임새를 넣어 진솔한 얘기를 끄집어낸다.

 3단계는 마음으로 듣기로, 키워드는 '인정'이다.

 모든 사람, 모든 일에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모든 사람,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상대가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맥락까지 이해해야 경청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주장이 나오게 된 앞뒤 사정을 파악하며 듣는 게 경청이다.

 말의 뉘앙스를 놓치지 않아야 경청이다.

 때로는 인내하며 무조건 끝까지 귀 기울여야 비로소 경청이다.

 ◇ 상대를 분석하라… 주도·사교·안정·신중

 분석(分析)이란 전략적 이해를 뜻한다.

 상대를 정확히 분석하려면 성격 유형별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에 따르면 사람은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환경 속에서 자신의 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신중형(Conscientiousness) 네 유형으로 나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주도형(D)은 성공하기 위해 어떤 장애든 극복하는 저돌적 성격이다.

 하지만 일이든 사람이든 직접 통제하려 들고, 따라서 소통도 일방적으로 흐르기 쉬워 인간관계가 꼬이는 경우가 많다.

 갈등 상황에 놓이면 내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가 납득하지 않으면 화를 내며, 독재자로 군림하려 들기도 한다.

 주도형에게는 먼저 인정과 배려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면 주도권을 잃었다고 여겨 마음을 닫아버리므로, 참을성을 갖고 경청하며 인정부터 하고 따뜻한 어조로 문제점을 설명해야 한다.

 독불장군의 마음을 열려면 적극적 지적보다는, 관계형성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끄집어내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사교형(I)은 상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나 설득함으로써 환경을 변화시킨다.

 사람을 좋아하는 특성상 관계 맺기를 즐기고 관계 지속을 바란다.

 의사소통에도 열정적이어서 다른 유형에 비해 대화가 수월한 편이다.

 관계를 지속하며 더 많이 얘기하는 게 좋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정형(S)은 협력을 잘한다.

 권한과 책임이 명확한 상태에서 조화롭게 일하기를 좋아한다.

 다만,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에 갑작스러운 제안이나 변화는 꺼린다.

 따라서 그가 익숙한 장소, 환경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게 효과적이다.

 믿을 것은 자료뿐이라고 생각하는 신중형(C)은 일의 정확성과 원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좋아하므로 정확한 사실과 근거를 활용해 설득해야 한다.

 사적인 질문이나 얘기로 다가가기보다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대화로 마음을 사로잡고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들 수 있으므로 다양한 논리와 근거를 준비해야 한다.

 ◇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열어라

 상대를 이해했더라도 무조건 공감이 이뤄지진 않는다. 내 입장, 내 고집을 버려 나를 조금 비워둬야 한다.

 그래야 상대 의견이 들어올 틈이 생긴다. 또 자기를 열어 보이고 먼저 상대를 찾아가야 한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모이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얘기를 적절히, 상대보다 먼저 할 줄 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알트만과 테일러(Altman & Taylor)는 자기를 여는 데 단계가 있다며 상호성의 법칙을 강조했다.

 즉, 내가 열면 상대도 연다. 내가 힘들었던 과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면 상대도 어려웠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게 된다.

 상대가 마음을 열었다면 감정이입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무조건적인 수용이다.

 상대의 상황과 입장을 그려보며 몰입해야 한다. 이때 내 생활공간보다는 상대의 상황과 유사한 곳에서 감정이입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렇게 감정이입을 했다면 내 말과 행동에는 진심이 담기기에 마련이다.

 상대 역시 진심을 느껴 더 마음을 열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공감은 더욱 커진다. 이는 낮은 단계의 계산적 공감에서 높은 단계의 조건 없는 공감으로 발전한다는 의미다.

 계산적 공감이란 '내가 양보하면 상대도 양보하겠지' '양보를 통해 주변에서 내 평가가 높아지겠지' 등 얕은 공감이다.

 여태 살펴봤듯이 공감력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상대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경청과 관찰, 분석 등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의견을 받아들여 나를 조정해가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물론 상대도 변한다.

 서로 좋은 영향을 끼치며 긍정적으로 바뀌어간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함이 퍼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고 소통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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