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입원율 독감의 16배…"RSV, 국가예방접종 서둘러야"

산후조리원 등서 집단감염 끊이지 않아…"RSV 감염 영아 27%가 중환자실 치료"

 본격적인 가을철에 접어드는 10월은 영유아 건강 관리에 특히 주의가 필요한 시기다.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단순 감기를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할 감염병으로 꼽히는 게 바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espiratory Syncytial Virus, 이하 RSV)다.

 이름은 낯설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에게 RSV는 매년 같은 시기 반복되는 '겨울철 악몽'과도 같다.

 RSV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호흡기 바이러스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유행하는데, 만 2세 이하 영유아의 95% 이상이 최소 한 번 이상 감염을 경험한다. 특히 만 1세 미만 영아에서는 입원 치료의 주요 원인이 된다.

 방역 당국은 현재 RSV를 코로나19,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RSV가 무서운 건 단순한 콧물·기침에서 끝나지 않고 세기관지염과 폐렴 같은 중증 하기도 감염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 아이가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인공호흡기 치료까지 필요할 수 있다. 미숙아나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기라면 위험은 더 커진다.

 실제로 RSV로 인한 입원율은 인플루엔자의 약 16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학술지 BMC 감염병에 실린 논문(2020년)에 따르면, 건강했던 영아가 RSV로 입원한 사례 중 27%는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했다.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영준 교수(대한소아감염학회 연구이사)는 "RSV는 단순 감기가 아니라 영유아 사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며 "이 중에서도 영아만 보면, RSV 감염에 따른 사망 위험이 인플루엔자보다 약 1.2∼2.5배 높을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RSV 감염으로 인한 치명적인 상황을 막으려면 영유아 중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영아를 대상으로 선제적인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는 게 학회의 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RS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방 항체를 접종하는 것이다.

 예방 항체 주사는 쉽게 말해 바이러스와 싸울 무기(항체)를 몸속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백신 접종과 비슷하지만, 엄밀히는 약화한 바이러스 성분을 주사해 몸이 스스로 면역체계를 작동시켜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백신과는 다른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미숙아나 선천성 심장질환 등 일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허가돼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팔리비주맙'과 모든 영아에게 접종할 수 있는 '니르세비맙' 두 가지 제품의 예방접종이 가능하다.

[대한소아감염학회 제공]

 이중 니르세비맙은 총 5회를 투여하는 팔리비주맙과 달리 한 번의 근육주사만으로 약 5개월간 효과가 지속되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국제학술지 랜싯(Lancet)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니르세비맙을 접종한 영아의 경우 폐렴이나 기관지염 등의 발생률이 약 70% 줄고, 입원율은 약 8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미국·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사우디아라비아·스페인·스웨덴·스위스·호주 등 24개국 의학 학술단체에서는 모든 영아를 대상으로 니르세비맙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소아감염학회가 지난 5월 모든 영아에게 니르세비맙 접종을 공식 권고했다.

 문제는 RSV 예방접종이 국가 예방접종에 들어가지 않아 60여만원에 달하는 접종 비용을 고스란히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이미 RSV를 국가적 차원의 관리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미국은 2023년부터 연방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층 영아에게 무료 접종토록 하고 있으며, 일반 영아도 민간 보험을 통해 접종비를 지원받도록 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정부가 신생아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도입한 이후 정부가 접종비 전액 또는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최 교수는 "생후 첫 RSV 시즌에 모든 영아에게 예방 항체를 투여하면 RSV로 인한 영유아 입원 부담은 물론 병원 내 감염과 국가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가예방접종에 RSV를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질병관리청 손영래 의료안전예방국장은 "니르세비맙이 지난해 허가된 만큼 RSV에 대한 국가적인 질병 부담 수준과 정부 재정 투입 후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아직 없어 이 작업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면서 "향후 분석 결과를 본 뒤 국가 예방접종 또는 건강보험체계로 편입할지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RSV는 더 이상 '겨울철 흔한 감기 바이러스'로 치부할 수 없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영아의 입원율과 사망 위험이 독감보다 더 크다는 게 확인됐고, 이미 해외 주요국은 이를 근거로 국가 차원에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더욱이 RSV 예방은 저출산 사회구조에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건강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병원 내 감염 확산과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도 맞닿아 있다.

정부가 국가 예방접종 편입에 속도를 내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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