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에서 걷잡을 수 없이 염증이 진행되는 패혈증은 보통 염증보다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요로감염증도 치료가 까다로운 감염 질환으로 꼽힌다. 박테리아는 인체에 감염하자마자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체내 환경에 염분이 많거나 강한 산성인 경우 박테리아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직 내성이 생기지 않은 항생제가 투여되면 그것도 세균 입장에선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런 스트레스 요인이 세균의 생존에 필요한 주요 경로 가운데 어느 하나만 차단해도 세균 전체가 소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패혈증이나 요로감염증을 일으키는 세균은 어떻게 이런 스트레스 요인들을 이겨내는 걸까. 감염성 세균이 숙주 내의 환경 스트레스에 신속히 적응하는 메커니즘을 미국 유타대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이 메커니즘은 세균이 숙주 세포 내에서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걸 교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세균이 숙주 세포 내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종의 환경 적응인 셈이다. 이 발견은 끈질긴 세균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새로운 항균제나 백신 개발의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매슈 멀비 병리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영국 옥스퍼
나이가 들어서 근육이 줄고 근력이 떨어지는 걸 학계에선 노화성 '근육감소증'(sarcopenia)이라고 한다. 고령자에게 많이 생기는 근육감소증은 신체가 퇴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령자의 근 위축이 심해지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자력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유형의 근 위축은 만성 염증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근육의 만성 염증을 고령자 근 위축의 원인으로 지목한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어느 연령대에 어떤 이유로 이런 염증이 생기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생물의학 연구소(IRB 바르셀로나) 과학자들이 마침내 노화성 근 위축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기능이 손상된 미토콘드리아가 제때 폐기되지 않고 세포 내에 쌓여 만성 염증과 근육감소증이 온다는 게 핵심이다. 과학자들은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의 제거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BNIP3)도 확인했다. 이 단백질 수위가 높으면 근육의 노화가 더 바람직하게 진행되는 거로 나타났다. IRB 바르셀로나의 안토니오 소르사노 박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노화 세포'(Aging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바르셀로나대의 생물학
어떤 암은 조기에 발견해도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체 유방암의 10∼15%를 점유하는 '삼중 음성 유방암'(triple negative breast cancer)이 바로 그런 암이다. 전세계에서 삼중 음성 유방암 진단을 받는 환자는 한 해에 약 22만5천 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 유형의 유방암에 걸린 환자의 약 절반은 치료 후 암이 재발하거나 폐 등으로 전이한다. 현재로서는 절제 수술을 포함한 어떤 치료를 해도 삼중 음성 유방암의 국소 재발(local recurrences)과 전이를 막을 수 없다. 이런 환자가 다시 치료 기회를 가질 가능성은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 이처럼 좋은 예후를 기대하기 어려운 삼중 음성 유방암 환자와 가족에게 희소식이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치료 후 재발과 전이를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인 치료 약물이 개발된 것이다. 이 약물은 전임상 동물 실험에서 유방암 전이의 80%, 국소 재발의 75%를 차단하는 효능을 보였다. 벨기에 루뱅 가톨릭대(약칭 UCLouvain)의 피에르 손복스(Pierre Sonveaux) 약물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5일(현지 시간) 오픈 액세스 종양학 저널 '암(Cancers)'
인간의 체내 혈관은 그 구조와 기능에 따라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나눌 수 있다. 동맥은 산소와 영양분을 함유한 혈액을 심장으로부터 온몸 구석구석에 보내, 모세혈관과 주변 조직 사이에서 물질교환이 이뤄지게 한다. 그다음에 말초 세포 및 조직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혈관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그런데도 혈관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단순히 혈액을 운반하는 비활성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과학계의 이런 통념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알고 보니 혈관은 체내의 생리적 변화를 감지해 여러 기관의 기능을 제어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이 발견은 장차 혈관 반응을 조절해서 비만 등 대사질환을 치료하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스페인의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연구소(Josep Carreras Leukaemia Research Institute) 과학자들이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물질대사'(Nature Metabolism)에 논문으로 실렸다. 21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번 연구의 초
인간은 하루 8시간 정도 충분히 자야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여러 가지 신경 퇴행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수면의 양은 건강을 담보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면의 양보다는 수면의 질, 즉 양질의 수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짧게는 하루 4시간만 자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도 잘 지키는 '수면 엘리트'(elite sleeper)가 존재한다는 걸 과학자들은 확인했다. 이런 사람들의 효율적인 수면 능력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도 찾아냈다. 이 발견은 장차 수면 장애와 관련 신경 질환 등의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거로 기대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UCSF) 의대의 루이스 프타체크 유전학 신경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셀 프레스'(Cell Press)가 발행하는 오픈 액세스 저널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공동 수석저자인 프타체크 교수는 "누구나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는 도그마가 있는데 유전학적으로 보면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의 양이 다르다는 게 확인됐다"라면서 "사람마다 키가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신장이 완
K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많은 유형의 암에서 발견된다. 특히 췌장관 세포 암(PDA), 직장·결장암,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폐 선암종 등에 흔한 이 돌연변이는 암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전체 암 사망의 약 4분의 1이, KRAS가 속한 RAS 계열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KRAS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 증식 등을 자극하는 세포 신호 경로가 활성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KRAS 유전자가 활성화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 억제제, 즉 MEK 효소 억제제를 쓰면 이 신호 경로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약은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정상 세포와 조직에도 강한 독성을 보인다. 암세포의 신호 경로를 억제하는 데 필요한 용량을 맘대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MEK 억제제의 이런 용량 제한적 독성(dose-limiting toxicities)은 눈, 피부, 위 등에 심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이 난제가 마침내 풀릴 것으로 보인다. RAS 계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긴 암세포에서 다량의 '2가 철'(ferrous iron)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암세포가 일종의 '철분 중독'(ferroa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초기엔 가구나 사무기기 같은 물체의 표면을 잘 소독해야 하는 거로 알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체 표면을 통해 접촉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데믹 초기에 나온 일부 연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물체의 표면에서 길면 수 주까지 살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독용 물티슈가 한때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사람들은 물체의 표면을 닦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2020년 말이 돼서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주 감염 경로가 공기 중의 미세한 콧물 방울(nasal droplet)이나 침방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표면 소독에 대한 관심은 많이 식었다. 하지만 지금도 코로나 방역 가이드라인엔 꼼꼼한 비누 손 씻기가 포함돼 있다. 물론 손 씻기를 잘하는 건 개인위생의 기본이고 각종 전염병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표면 접촉으로 전염되기 어려운 이유가 뒤늦게 밝혀졌다. 뜻밖에도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코 점액이나 타액에 들어 있는 특정 단백질이었다. 미국 유타대의 제시카 크레이머 생물의학 조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화학학회가 발행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입하면 이를 알아챈 수많은 면역세포가 재빨리 나서서 이들 병원체를 파괴한다. 대표적인 게 백혈구의 한 유형인 T세포다. 이런 T세포는 침입자를 식별하는 능력을 갖췄다. 백혈구의 '혈구(血球)'는 주로 혈액에 존재하는 '혈액 세포'(blood cell)란 뜻이다. 그런데 T세포에 관한 한 '혈구'라는 명칭이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떨 때 T세포는 피부 등의 조직에 몇 년간 머물면서 주변 환경에 이상적으로 적응한다는 사실이 새로이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조혈모세포(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은 환자의 혈액과 피부 조직 샘플을 검사해 이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또 피부 조직에 상주하는 T세포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도 상세히 알아냈다. 이 발견은 줄기세포 치료나 기관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거부 반응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로 보인다. 독일 '라이프니츠 천연물 감염 생물학 연구소'의 크리스티나 칠린슈키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28일 저널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사실 이 발견은 과학계의 오랜 믿음과 배치된다. 지금까지 T세포는 감염에 맞서 싸울
생명체가 성장하면 늙은 세포는 '노화 현상'을 겪기 마련이다. 노화한 세포는 영구히 분열을 중단한 상태에서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화 세포가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노화 세포는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전(前) 염증성 인자를 분비한다. 그런데 비만한 사람은, 지방 조직에 나타나는 대식세포(macrophage)가 더 빨리 노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노화한 대식세포는 사람에 따라 지방 조직 섬유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이는 곧 비만이 지방 세포의 면역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대식세포가 노화할 수 있다는 건 과학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미국 보스턴의대(BUSM)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생물 의학 분야의 오픈 액세스 저널인 '라이프 사이언스 얼라이언스'(Life Science Allia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탐식세포라고도 하는 대식세포는 동물의 거의 모든 체내 조직에 분포하는 아메바 모양의 큰 면역세포다. 이물질, 세균, 바이러스, 노폐세포 등을 포식한 뒤 소화하는 작용을 하며, 여기서 생기는 면역 정보를 림프구에 전달한다. 물론 대식세포가 지방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