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 바이러스(HIV)에 감염되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에이즈는 그렇게 치명적인 병이 아니다. 특히 항HIV 제제를 3개 이상 한 번에 투여하는 HAART 요법이 등장하면서 HIV 감염자의 생명 예후(life expectancy)는 거의 비감염자와 비슷할 정도로 개선됐다. 하지만 HIV 양성은 음성과 큰 차이가 있다. 감염자는 먼저 항 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하루라도 이를 소홀히 하면 잠복했던 HIV가 다시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한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에이즈에 투여하는 항 레트로바이러스 제제는 체내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복제와 증식을 차단하면서도 감염까지 막지는 못한다. 면역세포 안에 깊숙이 숨어 동면하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재활성화와 감염을 원천 봉쇄하는 치료 경로가 밝혀졌다. 인간의 면역세포는 특정 HIV 단백질의 초기 활성화를 감지하는 경보 체계를 갖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의 산 량(Liang Shan) 조교수 연구팀은 4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HIV는 CD4+ T세포(도움 T세포)에 감염
뇌와 척수에 존재하는 성상교세포(astrocyte)는 표면에서 뻗어 나온 많은 돌기 때문에 별처럼 보인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래 성상교세포는 신경세포(뉴런)에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신경세포의 이온 농도 조절 및 노폐물 제거, 손상된 신경 조직의 복구 또는 파괴 등 대체로 이로운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 이뤄지면서 성상교세포가 뇌 신경의 퇴행과 염증, 신경 질환 등을 촉발한다는 게 밝혀졌다. 예컨대 성상교세포가 독소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과산화수소는 신경세포 파괴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장(腸)에 상주하는 미생물의 신호를 받아 염증 억제 작용을 하는 성상교세포 무리가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미국 '브리검 앤드 위민스 호스피털'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실렸다. 보스턴에 소재한 이 병원은 하버드 의대의 주요 수련병원 가운데 하나다. 3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이 발견에 관심이 쏠리는 건, 뇌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성상교세포와 장 세균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염 경로를 제시했기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와 소화관이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신경이 곤두서면 위장에 통증이 생기고, 속이 비면 짜증이 나는 식이다. 이처럼 장과 뇌를 연결하는 '장뇌 축'(gut-brain axis)을 통해 장의 미생물이 숙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계속 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이 정신 건강과 신경 질환 등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연구하는 과학자도 급증세를 보인다. 그런데 '장뇌 축'의 위력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생쥐 암컷이 새끼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행동을 하는 데 특정 대장균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미국 소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자넬 에어스 교수는 "장의 미생물이 어미 생쥐의 건강한 행동을 유도하고,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라면서 "우리가 알기론 동물 모델에서 이런 사실이 입증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장 미생물 총(叢)의 유익균 및 유해균 구성은 우울증, 불안증, 자폐증 등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처럼 개
불면증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잤다고 생각한 시간이 실제 잔 시간보다 짧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Wien) 의과대학 신경과 수면장애 클리닉의 카린 트림멜 교수 연구팀이 수면 클리닉 환자 303명(여성 49%)의 수면다원검사 기록(PSG: polysomnogram)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의 과학 뉴스 사이트 유레크얼러트(EurekAlert)가 29일 보도했다. 수면다원검사는 수면 실험실에서 수면 중 뇌파, 혈중 산소량, 호흡, 심박수, 눈과 팔의 움직임 등을 추적, 전체적인 수면의 질을 평가하는 검사다. 수면장애 환자는 자신이 잤다고 느끼는 시간이 수면 실험실에서 나타난 객관적인 수면 시간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차이는 수면장애 중에서도 불면증 환자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불면증 환자는 우선 잠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인 입면 잠복기(sleep latency)가 실제보다 너무 길다고 느꼈다. 반면 잠을 잤다고 느끼는 시간은 실제 수면 시간보다 훨씬 짧았다. 이유 중 하나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내는 배경 스트레스 (background stress)가 과잉 각성(hypera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중 대다수는 경증 또는 중등도 증상에 그쳐 시간이 지나면 입원 치료 없이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한 중증 환자는 심한 호흡 곤란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 치료는 사실상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의료체계의 제한적인 대응 역량 등을 고려하면 감염자의 중증 진행을 최대한 막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코로나19 환자에 따라 위중도가 크게 다른 이유를 아직 정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팀이 위중도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봤다. 과학자들은 M-MDSCs(단핵 골수 유래 억제 세포)라는 면역 세포의 연관성을 확인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중증 환자는 이 면역세포의 혈중 수치가 매우 높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 스테미르나 테라퓨틱스(Stemirna Therapeutics) 등의 과학자들과 함께 수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25일(현지 시각) 미국 임상 연구학회가 발행하는 '임상 연구 저널'(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온라인판에 논문
우리 몸 안의 세포는 보통 산소에 의존하는 인산화 경로를 통해 에너지를 만든다. 그런데 암세포는 효율성이 더 높은 이 경로 대신, 포도당을 분해하는 에너지 대사를 선호한다. 암세포가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할 때 산소로 포도당을 태우지 않고 효모균처럼 발효시킨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에너지를 신속하게 구할 수는 있지만, 대사 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 독일의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는 1921년 이 현상을 처음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 이를 '바르부르크 효과'(Warburg effect) 또는 '와버그 효과'라고 하는데 어떤 조직이 암인지 가리는 특징의 하나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암세포가 이렇게 비효율적인 대사 경로를 고집하는 이유를 놓고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결함' 등 수많은 가설이 제기됐지만 사실로 입증된 건 아직 없다. 올해로 발견 100주년을 맞은 바르부르크 효과의 베일을 벗겨낼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의 바르부르크 대사가 PI3라는 미토콘드리아 관련 효소의 활성화와 연관돼 있다는 게 요지다. 암세포가 계속해서 분열하고 성장하려면 PI3의 분자 신호가 필요하다는 게 이번에 밝혀졌다. 미국의 슬론 케터링 연구소 과학자들은 저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감염 후에 생기는 면역력이 얼마나 오래가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 라호야 면역학 연구소(LJI) 과학자들이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을 가볍게 앓은 사람보다 심하게 앓은 사람에게 더 강한 장기 면역력이 생긴다는 것이 요지다. 이는 가볍게 앓고 면역력을 획득해 중증 감염증을 예방한다는 적응 면역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접종 중인 코로나19 백신도 이런 원리에 따라 개발된 것이다. LJI의 판두란간 비자야난드 박사 연구팀은 25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엔 영국의 리버풀대와 사우샘프턴대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LJI 연구팀은 코로나19 팬더믹 초기부터 어떤 항체와 T세포가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 중요한지 조사해 왔다. 유전체학 전문가인 비자야난드 박사는 지난해 10월 CD4+ T세포가 신종 코로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상세히 관찰한 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선 단일 세포 전사체학 분석 기술로 CD8
최근 암 치료의 대세는 면역치료다. 약물로 암 환자의 면역계를 활성화해 면역세포의 공격으로 암 종양을 없애는 걸 말한다. 하지만 타고난 항암 면역력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어떤 환자는 항암 면역치료로 상당한 효과를 보는데 다른 환자는 전혀 반응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암 면역 반응의 개인차가 이렇게 큰 이유를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이 밝혀냈다. 사람마다 다른 'CD8 T세포'의 유형이, 암 종양에 존재하는 돌연변이 항원과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콜로라도대 의대의 왕징훙(Jing Hong Wang) 면역학 부교수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암 면역치료 저널'(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22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쥐 그룹에 편평세포암종(squamous cell carcinomas)을 이식했다. 암 면역학자인 왕 교수는 특히 두경부 편평세포암종의 전문가로 알려졌다. 이론적으로 이들 생쥐는 암종 이식에 똑같이 반응해야 하나, 25%는 거부 반응을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몸 안의 면역세포가 항체를 형성한다. 이런 항체는 바이러스 표면의 특이 단백질을 인지해 결합하는데 이를 항원이라고 한다. 동일한 바이러스가 재감염했을 때 인체 면역계는 바이러스 항원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반응한다. 그런데 계절 독감 같은 일부 바이러스에선, 항원이 변해 진화하는 '항원 변이'(antigenic drift)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면역계는 다시 침입한 바이러스를 알아보기 어려워 면역반응도 일으키지 못한다. 신종 코로나(SARS-CoV-2)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감기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의 '면역 회피' 진화 흔적이 발견됐다. 코로나 계 바이러스의 표면에 돌기처럼 뻗어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체 면역계의 주요 표적이다. 만약 신종 코로나도 이런 식의 진화를 한다면 항원이 변이할 때마다 백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미국 워싱턴 의대와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 과학자들은 이런 요지의 논문을 19일(현지 시각) 저널 '이라이프'(eLife)에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명칭은 표면을 덮고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 돌기가 왕관(corona)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