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춘천 서면 '박사마을'…여덟 집마다 한 집꼴 배출

부모 헌신·향학열·명당설 속 분야별 202명…부자·형제 등 부지기수
도심 잇는 서면대교 건설에 '선양' 기대감…캐릭터 등 콘텐츠 개발 한창

 중국에 '사기' 열전(列傳)이 있다면 한국에는 춘천 서면 열전이 있다. 그만큼 인물이 많이 나왔다.

 200명이 넘는 박사를 배출한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작은 고장 '박사마을'은 자체가 작은 역사책이다.

 서면은 합수머리이다. 하늘에서 조감하면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 서쪽으로 모여 흐르는 이 마을은 그 굽이만큼이나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이야기로 넘친다.

춘천 서면 박사마을 선양탑

 마을 앞 의암호 한가운데 섬, 중도는 우리나라 대표 선사유적지이고 마을을 엄호하는 삼악산은 고대 맥국과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너른 벌을 품은 방동리는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묘역이 있고, 인근 금산리에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한백록 장군 묘역이 있다.

최고의 명당으로 불리는 서면 신숭겸 묘역

 조선시대 상촌(象村) 신흠이 이 마을에 유배와 남긴 시조뿐 아니라 김시습, 이항복, 정약용 등 수많은 문사가 마을 앞에 펼쳐진 백로주, 고산, 봉황대 명승을 문장으로 남겼다. 삼악산은 이인직의 신소설 '귀의 성' 무대이기도 하다.

 고려말 대학자인 야은(冶隱) 길재 선생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뤘고 도포서원을 통해 수많은 문·무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현암리 일대는 조선 후기, 안동 김씨 학통으로 유명한 농암(農巖) 김창협, 삼연(三淵) 김창흡 형제가 세월을 피해 이곳에 은거했다.

 유생들을 가르친 당시 분위기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강 따라 늘어선 춘천 서면

 ◇ 춘천의 관문 강나루 마을…'서면에서는 학벌 자랑하지 말라'

 서면은 역사 이래 춘천의 관문이다.

 물길은 덕두원리 신연강 협곡(현재 의암댐 자리)을 통해, 육로길은 옛 산길 석파령을 통해야만 춘천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석파령의 석파(席破)는 자리를 쪼갠다는 것으로 얼마나 길이 좁았으면 신·구 사또가 이곳에서 만나 업무를 인수인계할 때 돗자리를 잘라 앉은 데서 유래했다.

 앞으로는 북한강, 소양강 두 강이 흘렀다.

 일제 강점기 현재 의암댐 앞 협곡에 춘천에서는 처음으로 신식 다리가 놓였지만, 시내까지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걸렸다.

 대신 강변으로 늘어선 오미, 눈늪, 신연나루에서 배를 탔다.

서면에 있는 옛 오미나루터

 2000년 신매리와 신사우동을 연결하는 신매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서면은 '육지 속 섬'이었다. 짐과 사람이 뒤섞인 그 쪽배를 통해 '박사마을'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서면에서는 학벌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전해진다.

 1천600가구에 3천600여명 안팎에 불과한 작은 동네에서 나온 박사만 198명. 명예박사까지 포함하면 202명에 이른다.

 대략 여덟 집에 한 집꼴로 박사가 나온 셈이다. 부자, 형제 박사도 부지기수이다.

 학계, 정치, 경제, 법조, 교육, 언론, 문화예술, 의료, 금융, 종교계 등 모든 분야에서 걸출한 인재가 즐비하다.

 올해 2월 198번째 박사는 서울대(공학박사)에서 나왔다.

 그동안 학위는 국내 135명,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63명이다.

 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받침, 자녀들의 뜨거운 향학열이 이룬 성과다.

 향토 학자들은 예부터 서원이 있어 학문에 열중한 유생이 많았던 역사적 배경이나 해가 빨리 뜨는 탓에 부지런함이 몸에 뱄다는 지리적 영향이 이런 향학열을 만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박사마을 신화가 알려지면서 한때 마을의 정기를 이어받아 후손을 보고자 일부 신혼부부들이 서면을 여행지로 선정해 다녀가기도 했다.

춘천 서면도서관에 있는 박사자료실

 서면도서관에는 이 마을 박사학위 취득자를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1963년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딴 송병덕씨가 서면 출신 박사 1호다.

 전 국무총리이자 전 유엔총회 의장인 한승수씨는 이 마을 3호 박사다. 서면은 한씨가 2001년 유엔총회 의장에 취임한 9월 12일에 '서면 면민축제'를 열고 있다.

 또 박흥수 전 EBS 사장, 박용수 전 강원대총장, 한장수 전 강원도교육감, 고(故) 정광수 전 산림청장 등 5급 이상 공직자 100여명, 초중등 교장급 이상 교육자가 130여명을 넘는다.

 유독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나온 이유는 '명당'으로 꼽히는 지형적 특성과 함께 남다른 교육열의 결과다.

 ◇ 명당에 꽃피운 뜨거운 향학열…부모 헌신적 뒷바라지 한몫

 서면은 춘천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고, 그러면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전국에서 손꼽히는 풍수 명당이라는 꼬리표가 이어진다.

서면 방동리 신숭겸 묘역에서 바라본 춘천 시내

 박사마을 이전 위인 설화는 명당이 배경이다.

 시내와 가장 근접한 강 건너편 금산리에 장군봉은 나라가 위기 때마다 이곳에서 장수가 태어난다는 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인물이 나지 못하게 돌 못을 박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재 서면 가는 길은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신매대교가 가장 빠르다.

 길이 660m 다리를 건너면 감자와 채소 먹거리의 주산지인 고즈넉한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북한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 풍경은 전국 최고의 강마을로 불릴만하다.

춘천 서면

 특히 물 위에 조성된 의암호 둘레길은 이 마을의 감성 포인트다.

 서면이 박사마을이 된 건 부모들이 억척스럽게 농사지어 자식 가르치는데 헌신했기 때문이다.

 예부터 '서면으로 딸 시집을 보내려면 광주리에 호미 하나씩만 마련해서 주면 된다', '시내에서 광주리 이고 발등에 흙먼지 까맣게 앉은 이는 물어보지 않아도 서면 아낙이다'라는 말도 마을에 전해진다.

 농토가 적고 경제, 교통 오지이다 보니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고된 삶은 내 대에서 끝내기를 바랐던 부모들은 자식만큼은 이 악물고 가르쳐 강 건너 시내에서 번듯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학비를 낼 방법은 누구보다 일찍 강을 건너 농산물을 파는 것.

 새벽닭 울기 전에 광주리를 이고 보자기 짐 서너 개를 들고 나룻배를 탔다.

 그 광주리 행상이 모여든 곳이 지금의 소양로 번개시장이다. 번개처럼 팔고 다시 강을 건너 내일 팔 농산물을 준비해야 했다.

 산나물과 채소를 내다 팔기 위해 새벽마다 배를 타고 장터를 오가는 부모의 고생을 지켜본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보답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춘천 서면 신매리 일대 강변

 한범수 박사마을선양탑 관리소장은 "강 건너 시내의 삶을 동경한 부모의 교육열에 자식들의 향학열이 더해져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는 설이 많지만, 모두의 피나는 노력과 자식을 뒷바라지한 부모들의 희생적 교육열을 우선해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캐릭터 제작 등 박사마을 선양도 '박사급'…서면대교 건설 기대감

 1999년 서면이 박사마을로 전국에 알려지자 같은 해 10월 '박사마을 선양탑'을 건립했다.

 마을에서 후대에 본보기를 삼고자 십시일반 성금을 모은 것이다.

 금산초교와 강원애니고교 주변 도로는 '박사로'라는 도로명이 붙여졌으며 이 도로변에 세워진 선양탑에는 학위를 취득한 순서대로 성명과 연도, 학위수여 대학 등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높이 4m에 달하는 탑 위에 박사모 모양을 조각해 놓았고, 주변 작은 정자에 이를 알리는 책자가 비치돼 있다.

 선양탑에는 '자식들만은 보다 살기 좋은 곳,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힘겨워도 더 많이 가르치고 또 배워야 했기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춘천 서면 박사마을 선양탑

 1997년 재단법인으로 결성된 서면 출신 박사 모임인 백운회(白雲會)는 매년 고향 인재의 미래 설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백운회는 코로나19로 2020년부터 3년간 학위 취득자 축하 행사를 열지 못하다가오는 22일 마을 총회에서 새롭게 박사가 된 후배들에게 축하 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한다.

 이날 패를 받는 신입회원은 34명이다.

춘천 박사마을 기념 표지판

 송병훈 백운회장은 "서면에 시내와 바로 이어지는 다리가 들어서면 주민 수가 더 늘어나 박사는 현재보다 더 많아지고 우리 마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유명한 박사 고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시도 박사마을 선양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시내 건너편을 잇는 가칭 서면대교를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경기 가평군과의 경계인 안보리부터 화천 경계인 오월리까지 마을 도로 곳곳에 '서면 박사마을 봄날에 서면'이라는 마을 푯말을 만들어 자긍심을 전하고 있다.

서면 마을 곳곳에 내걸린 박사마을 깃발

 서면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를 소재로 박사모를 쓴 캐릭터를 만들어 연말까지 마을 입구에 대형 조형물을 세우기로 했다.

 춘천시 관계자는 "서면에는 전국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박사를 배출해 박사마을로 불리고 있다"며 "마을에 들어서면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운까지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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