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등 보조 인력도 없고, 수술할 사람이라곤 저뿐이었죠. 회의하고 있는 혈관외과 교수님을 재촉해 단둘이서 수술을 했어요. 달리 갈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죠."
31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만난 외상외과 박찬용 교수는 지난 9일 있었던 소아 환자 수술에 대해 '막막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환자는 자전거를 타다 화단에 넘어져 굵은 나뭇가지가 목을 관통한 상태였다. 다행히 큰 동맥과 정맥을 비껴갔지만,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는 치료가 불가했다.
어린이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으로 왔지만 수술할 인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교수는 다음날 새벽에나 수술이 가능하단 말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는 부모를 보며 '단둘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골든타임'을 지킨 소아 환자는 무사히 회복해 퇴원했다.
◇ '수술거부' 아니고 '수술불가'…"페널티보다는 현실적 지원이 필요"
"10여 곳의 병원에서 '수용거부'했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저는 '수용불가'였다고 봅니다." 박 교수는 지난 30일 일어난 용인 '뺑뺑이' 사고에서 환자를 받지 못한 병원에 권역외상센터마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에 센터를 지정만 해서 될 것이 아니라 '인력·시설·장비'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워라밸(일과 삶 균형)'이나 높은 보수를 찾아 응급센터를 빠져나가는 인력이 많은데, 행정처분 등의 위험부담을 지게 된다면 의사들은 더욱 응급의료를 기피할 것이란 얘기다.
"권역외상센터에서도 수술을 할 의사나 수술실, 병상이 부족해 우리 병원으로 전원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이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응급수술을 못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러면서 계속해서 개소가 늦어지고 있는 서울권역외상센터 역시 기존 계획보다 크게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뺑뺑이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인구수와 교통체증 등을 감안했을 때 센터 수 자체를 늘리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구급차 떠돌며 전화 거는 현실…"권역외상 컨트롤타워서 연계해야"
구급대원들이 하염없이 떠돌며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현실도 문제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지역외상 거버넌스'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별로 관내 외상센터와 수술실, 병상 현황을 파악해 신속하게 이송·전원과 치료를 연계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응급이송 컨트롤타워'로, 소방·의료기관·지자체가 협력해 응급환자를 배분하고 '모두 불가'인 상황이 없도록 규정에 따라 배정할 권한까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같은 체계를 위해선 시설·의료인력 보충과 보상은 물론, 상황에 따라 지역의회까지 거버넌스에 참여해 조례를 만드는 등도 필요하다.
박 교수는 "장기적으론 그런 컨트롤타워에서 병원 연계뿐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해서 응급의료 서비스 질 관리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응급환자 발생 시 소방청과 의료기관에서 따로 집계하는 데이터 등을 통합하는 것만 해도 중요한데 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나 주체조차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지역 중심 응급의료 정책기반을 강화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 없이 지방정부에 시행계획을 수립하라는 방침이다. 응급의료 데이터 또한 연계한다는 계획만 나왔을 뿐 법적 근거조차 모호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당사자들이 모여도 구체적인 원칙과 제도가 뒤따르지 않으면 탁상공론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