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공개 의무화에도 '깜깜이' 동물병원 수두룩

"반려인 알권리 보장·진료비 절감 효과" vs "일괄 고시 비현실적"

 모든 동물병원이 주요 진료 항목에 대한 예상 진료비를 게시하도록 의무화한 지 약 3주가 지났으나 실생활에서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5일부터 개정 시행된 수의사법에 따르면 동물병원은 진찰, 입원, 예방접종 등 주요 11가지 항목에 대해 진료 비용을 게시해야 한다.

 동물병원은 접수창구나 진료실 등에 책자·벽보 형태로, 또는 동물병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격을 고지해 반려인들이 사전에 가격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의사법은 동물병원 진료비가 병원별로 천차만별인 데다 사소한 진찰에도 진료비가 비싸다는 여론을 반영해 개정됐다. 정부는 개정 수의사법 시행으로 반려인들의 알 권리를 증진하고 진료비 원가를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진료비를 고지하지 않는 동물병원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일차적으로 시정명령을 받고 이후에는 최대 9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해당 법은 지난해 수의사가 2명 이상인 동물병원에 먼저 적용됐고, 이후 계도기간을 거쳐 전체 동물병원으로 확대됐다.

 충분한 계도기간을 거쳤음에도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고, 대다수 반려인도 이런 법이 시행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장모(30) 씨는 "며칠 전 동물병원을 방문했는데 딱히 가격표를 보지 못했다"며 "여느 때처럼 여러 개의 진료를 받은 뒤 내라는 대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용산구에 있는 한 동물병원은 기자 문의에 "아직 원장님이 가격을 정리해주지 않아 가격표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물병원은 법 시행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아직은 고지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만 보였다.

 종로구에 있는 한 동물병원은 가격을 묻자 "동물을 데려와 진료받아야 알 수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또 다른 곳은 임의로 만들어둔 가격표를 보여줬으나 "아직 수정할 곳이 많고 표에 적힌 가격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가격을 게시한 한 동물병원은 '대한수의사회 권고 양식'에 따른 초진 진찰료, 재진 진찰료, 입원비, 개 종합 백신 접종비, 고양이 종합 백신 접종비 등 11개 항목에 대한 가격을 표로 정리해 고시했다.

 정부는 제도가 정착되면 동물병원 진료비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동물 의료는 사람에 대한 의료와 달리 보험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고 정부가 수가를 정하지 않아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다"며 "동물 양육자들이 사전에 정보를 알고 가면 알권리를 보장할 수 있고 진료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의사들은 치료법이나 약이 달라 병원별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고, 수의사 역량에 따라 진료비에 차이가 있어 가격을 일괄적으로 고시하기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동물 의료 수가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사업자가 대부분인 동물병원의 진료비가 동일하면 담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예방접종처럼 진료비용을 게시해야 하는 항목 외 진료는 현실적으로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법으로 진료비용 게시를 정하면 일선 동물병원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담합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동물이 사람처럼 말을 하면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수 없기에 초진·재진의 개념이 다를 수 있고, 동물의 품종이나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물병원 진료항목 표준화 연구 용역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의무화가 선행돼 혼란이 일어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향미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사람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며 초진을 받을 수 있지만, 반려동물의 경우 상태를 알기 어려우니 전반적인 검사를 받고 재진하게 된다"며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용어 정리와 동물 품종에 따른 질병 표준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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