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한달] 의사일 떠맡은 간호사들…"중증환자들이 되레 다행이라 하네요"③

"병동 축소·폐쇄로 중증·희귀질환자 치료마저 미뤄져"
"중증환자들, 강제퇴원은 안 당할 것 같다고 다행이라고 얘기"
강제 무급휴가 내몰리기도…"휴가 안 가면 다른 부서 옮겨야", "다음달 월급 나올지 걱정"
전공의 일 떠맡고 "의료사고 나면 보호받을 수 있을까" 불안 호소

 "환자가 당장 쓰러지지 않도록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외래를 잡아줬을 뿐인데, 감사하다고 하네요.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서울대병원 간호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방역 전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했던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대란'에서도 최선을 다해 환자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환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반강제로 퇴원해야 하는 현실에 간호사들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다.

 병원의 수익 악화는 간호사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려 일부 간호사들은 무급휴직을 강요받으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현장에 남은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업무 일부까지 떠맡아야 해 '혹시 의료사고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 환자 생각에 마음 아파…"병세 나빠 내쫓길 일 없겠단 말까지 나와"

 서울대병원 간호사인 A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며 환자 걱정부터 털어놨다.

 전공의 비율이 전체 의사의 46.2%나 되는 서울대병원은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대표적인 의료기관이다.

 특히 서울대병원 입원환자 상당수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나 약 처방을 받기 어려운 중증·희귀질환자라 환자들의 고통이 더욱 크다.

 A씨는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치료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고, 입원 거부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입원환자 수를 늘려서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의 '정상' 운영은 요원해 보인다.

 최근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1천억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 서울대병원은 입원환자를 줄이고 일부 병동을 축소·폐쇄하는 등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A씨는 "서울대병원은 평소에도 중증·희귀질환자 진료가 지연된다. 과마다 다르지만, 항암 등 주사 치료를 위해 한 달 후 입원하기로 한 환자가 두 달 뒤에나 입원하는 곳이 이곳"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병동을 축소·폐쇄하는 바람에 환자들의 입원이 더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입원 환자가 줄어들면서 중증 환자들 사이에서는 '병세가 나빠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강제퇴원 당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중증이라 퇴원할 수 없는 장기환자 보호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환자 상태가 안 좋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도 한다"며 "상태가 나빠 병원에서 쫓겨날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입·퇴원하는 환자들로 분주하던 병실이 비어있는 것을 볼 때면, 간절히 입원을 기다리고 있을 환자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 무급휴가 권유에 '생계 걱정'…"다음 달 월급은 나올까"

 환자 수가 줄어들면서 간호사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의료공백으로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자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전국의 대형병원들은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떠날 것을 권하고 있다.

 A씨는 "분명히 동의받고 무급휴가를 보내겠다고 해놓고, 인력축소를 위해 일방적으로 무급휴가를 넣은 근무표를 공지한 경우가 있었다"며 "병동 간호사와 노동조합이 항의하고 나서야 휴가 강요가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병동을 축소·폐쇄할 예정이니 무급휴가를 가지 않으면 전혀 관련이 없는 부서로 파견 근무를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 병동 간호사가 충분한 교육 없이 응급실로 보내지는가 하면, 신규 간호사의 교육이 다른 부서에서 이뤄진 경우도 있었다"며 "낯선 근무 환경이 두려워 무급휴가를 택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병원을 떠난 의사들이 언제 복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2주를 넘어 2∼3달씩 월급을 못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괜찮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며 우려를 표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B씨도 환자와 직원을 내쫓는 병원의 태도에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B씨는 "지난달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교수들이 웬만한 환자들에게 강제로 퇴원 절차를 밟게 했다"면서 "간호사들은 수술, 검사, 입원 연기를 안내하기 위해 수백건씩 전화를 돌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입이 마르도록 했는데, 그 절차가 끝나자 무급휴가를 가라고 한다"며 허탈한 듯 말했다.

 그는 "과로에 지친 간호사들은 간만에 쉴 수 있는 무급휴가가 반갑기도 하지만,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음 달 급여는 나올까?'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에 '의료사고 불안감' 호소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업무를 간호사가 떠안게 되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시범사업에 따르면 전문간호사는 응급상황에서 동맥혈 채취나 조직·뇌척수액 검체 채취를 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과 진료기록,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시범사업에 따른 간호사의 의료행위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간호사들은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의료법상 간호사가 할 수 없는 일을 일시적으로 합법화해줬다고는 하지만, 사고는 언제나 생길 수 있다"며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내가 진짜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늘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의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환자 치료의 기본이 되는 동의서를 간호사가 대신 받는데, 환자가 담당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는 점에 큰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A씨는 "서울대병원에서는 일부 간호사들이 시범사업팀에 소속돼 단순 드레싱과 CT, MRI 검사 동의서를 받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처방을 투약하는 것이 간호사의 문제가 되는 한국에서 간호사들이 보호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 남아있는 의사들도 환자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며 환자를 제한해 받고 있다"며 "남아있는 의사도,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의대 정원 확대로 주치의들을 화나게 한 정부 그 누구도 환자의 건강과 병원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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