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병자병에서 빈대떡으로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가수 한복남이 1943년에 발표한 '빈대떡 신사'의 한 소절이다. 이 노래는 여러 후배 가수가 리메이크한 후에도 세대를 건너뛰어 최근 MBC '트로트의 민족'에서 각오빠·안성준·이예준·성진우가 레트로 스윙 곡으로 편곡해 발표하기도 한 '국민가요'다.

 내용인즉슨 유산을 탕진하고 양복 한 벌밖에 없는 '신사'가 비싼 요릿집에 가서 무전취식 후 도주를 시도하다 잡혀서 매 맞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은 '돈이 없으면 빈대떡이나 먹으면 된다'고 말한 지점이다.

 그만큼 빈대떡은 우리네 삶에서 따뜻한 위로를 줬던 음식 중 하나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빈대떡집은 앞을 지나면 잠시 멈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빈대떡의 향기는 단순히 고소한 냄새가 아니다. 인생의 고단함을 녹인다.

 어쩌면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다.

 필자는 빈대떡 냄새를 맡으면 지나간 어린 시절의 겨울날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오늘은 눈이 올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이른 새벽 녹두를 씻어서 물에 불린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어머니는 불린 녹두를 비벼서 껍질을 까고 체에 밭쳐 준비한다. 그리고 맷돌에 간다.

 오늘날의 믹서기처럼 거의 집마다 맷돌이 있었다.

 간 녹두를 건져 약간의 밀가루, 김치와 움파, 돼지고기를 다진 후 새우젓으로 간을 하여 버무려 놓는다.

 당시만 하여도 새우젓 독은 겨울철 중요한 양념 중 하나였다.

 부엌 아궁이에서 이글거리는 숯불을 화로에 담고 번철을 올려 달군다.

 달군 번철에 돼지비계를 넉넉히 올리고 기름이 녹으면 녹두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지진다.

 부엌에서 번지는 빈대떡의 고소한 향기는 다정한 이웃집을 불러들인다.

 방안에 둘러앉아 빈대떡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시던 여운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러던 빈대떡이 어느새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이 됐으며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손자병법 '모공의 장'을 빈대떡과 연결해봤다.

 손자는 자원의 활용을 최적화해 승리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녹두 빈대떡을 만드는 과정도 효율적이고 지략적인 선택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얻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특히 '효율적으로 승리하라'는 내용이 빈대떡과 일맥상통한다.

 손자는 긴 싸움이 양측에 손해를 가져오므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전쟁을 강조했다.

 녹두 빈대떡을 지질 때 너무 오래 익히면 기름이 흡수돼 느끼해진다.

 시간을 끌수록 재료의 맛과 효능이 떨어지므로 빈대떡 가장자리가 노릇노릇해졌을 때 완성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장수의 역할'이라는 내용에서 손자는 지도자가 지혜롭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녹두 빈대떡을 부치는 사람은 장수다.

 재료 배합에서 번철의 온도 조절과 익는 시간까지 모든 과정을 감각적으로 조율해야 맛있는 빈대떡이 완성된다.

 녹두는 인도와 미얀마가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2천년 이상 재배돼왔다.

 녹두는 건조에 강하고 콩이나 팥보다 생육 기간이 짧아 파종기가 늦어져도 잘 적응한다.

 한국은 녹두에 싹이 튼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하여 즐겨 먹는다.

 약선에서 녹두는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성질은 차갑다고 했다.

 단 껍질을 제거한 녹두는 성질이 평평하다.

 효능은 인체에 쌓인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 데 사용된다.

 대표적 증상은 피부가 불에 지지듯이 화끈 달아오르며 열이 나는 증상, 더위로 갈증이 일어나는 증상, 몸 안에 습기가 고여 온몸이 붓는 증상, 인체의 기와 혈액이 뭉쳐 통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각종 종기 등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쓰인다.

 또한 약선에는 녹두 가루에 포함 각종 영양소는 지질 강하 작용이 뛰어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폐와 간에 항암 작용을 하고 인체의 간과 신장을 보호하고 대소변을 원활하게 한다고 나와 있다.

 녹두 빈대떡은 황해도와 평안도 등의 지방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각각 특색있게 발전해 대중 음식이 됐다.

 특히 손님을 대접할 때 많이 만들었으며 흉년에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한국의 빈대떡 재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녹두와 메밀이다.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도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빈대떡은 맷돌로 갈아 다진 재료에 고기와 김치, 각종 채소를 넣고 기름에 지진 음식이다.

 효능도 비슷하지만, 메밀은 혈액에 쌓이는 혈전을 제거하며 혈압을 조절하고 다이어트에 더 도움이 된다.

 옛 문헌에 '메밀을 자주 먹으면 살이 빠지니 조심하라'고 했다.

 녹두는 '본초강목'을 저술한 이시진(李時珍)이 어린 시절에 후추를 즐겨 먹어 안질을 자주 앓았는데 후추에 녹두를 함께 섞어 먹음으로 두 번 다시 안질을 앓지 않았다고 한다.

 빈대떡이라는 명칭은 '병자병'(餠子餠)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빈자떡'이 되고 다시 빈대떡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설이 있다.

 문헌상 최초로 '음식디미방'에 '빈쟈법'으로 기록된 이래 '규합총서'에는 '병자'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야 '빈대떡'으로 나타나 있다.

 '조선상식'에서는 빈자떡의 어원이 중국 음의 '빙정'(餠飣)에서 온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한글로 중국어의 속음을 번역한 최세진의 '박통사언해'에도 중국식 발음이 변해 빈대떡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으론 옛날 녹두가 귀한 시절에 손님 대접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내놨던 손님 접대용 음식이란 뜻의 '빈대'(賓待) 떡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빈대떡은 원래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 제기(祭器) 밑받침용으로 썼다.

 그때는 크기도 작았다고 한다.

 여러 문헌에 수록된 빈대떡 만드는 방법을 보면 '규곤시의방'에서 나온 내용이 눈길을 끈다.

 내용인즉슨 '거피'(去皮, 껍질을 제거)한 녹두를 가루 내 되직하게 반죽한 후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 놓는다.

 다시 그 위에 거피 후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그 위를 다시 녹두 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나와 있다.

 '규합총서'의 내용도 재미있다.

 "녹두를 되게 간다. 번철에 기름이 잠길 만큼 붓고 녹두즙을 수저로 떠 놓는다. 그 위에, 밤고물에 꿀 버무린 것을 놓고 녹두즙을 위에 덮고 수저로 고르게 눌러 가며 소를 꽃전 모양으로 만들고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으로 박아 지진다"고 했다.

 이 시절 빈대떡은 지금과 달리 화전처럼 생긴 전병에 가까웠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도 이와 유사하다.

 "녹두를 거피해 찹쌀과 함께 물에 담갔다가 맷돌에 갈아서 달걀을 깨뜨려 휘저어 섞고 전병과 같이 부친다"고 나와 있다.

 기름을 많이 넣고 달걀을 많이 넣을수록 서벅서벅해 맛이 좋은 조리법이다.

 주의할 점은 맷돌에 갈 때나 번철에 부칠 때 놋그릇에 닿으면 녹두가 삭을 수 있어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에 담아야 한다.

 또한 녹두를 가는 즉시 한편으로는 부치며 한편으로는 갈아야 삭지 않으며 작은 쪽박으로 펴 가며 부쳐야 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다른 재료로 빈대떡을 만드는 법도 자세히 나와 있어 매우 이채롭다.

 다른 떡 속에 넣는 것은 여러 가지니 파와 미나리와 배추 흰 줄거리를 약간 데치고 쇠고기, 닭고기, 제육을 잘게 썰어 양념해 볶아 썰어 넣는다.

 그런 다음 해삼과 전복을 불려 저며 넣고 실고추와 실백, 날밤, 대추 채를 친 것과 달걀을 삶아 넓게 썬 것 등 무엇이든지 넣을 만한 것을 다 넣어 함께 부쳐서 초장에 먹는 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고춧가루를 넣고 부치기도 한다. 이처럼 들어가는 재료가 아주 다양하다.

 또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김치 빈대떡도 나온다.

 "녹두를 물에 하룻밤 불려서 껍질이 없도록 여러 번 씻어서 모래 없이 일어 맷돌에 되직하게 간다. 미나리를 한 치 길이씩 썰어 넣고 소금을 간 맞게 넣은 후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작은 접시만 하게 얄팍하게 부친다.

 녹두를 이처럼 갈아서 배추김치는 채를 썰고 섞어서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부친다"고 나와 있다. 

 지금 먹는 김치 빈대떡과도 매우 유사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빈대떡은 위에 나온 여타의 빈대떡처럼 달고 화려하며 향기로운 '떡'이 아니다.   전병처럼 먹는 방식이 아닌 것으로 자리 잡았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팥소 대신에 고기, 채소 등을 섞어 만드는 대중 음식이 됐다. 빈대떡 크기도 흉년이 들었을 때나 가난한 선비를 위한 적선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큼지막하게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은 애주가들의 술안주로 인기가 높다. 또한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 예방, 숙취와 해열 등에 도움이 된다 해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여기에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빈대떡에 대한 관심은 이제 글로벌로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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