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고위험군은 도움 요청조차 못해…기다리지말고 찾아내야"

근본적 인식 개선·사회적 안전망 시급 한목소리…"고위험군 관리 급선무"
"누구나 위기에 처할 수 있어" "주류에서 벗어난 '탈락자' 포용할 수 있어야"

 지난해 자살 사망자가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면서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자살 문제 해결을 더 이상 후순위로 미뤄둘 수 없다는 목소리를 더 크게 내고 있다.

 이들은 자살이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무엇보다 소위 말하는 '주류'에서 탈락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은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일 수 있으므로 이들을 기다리지 말고 찾아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27일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지난해 국내 자살 사망자 수가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데 대해 예견돼왔던 일이라면서도 한목소리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통상 자살률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과 같은 재난 상황 직후에는 잠시 떨어졌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되레 다시 올라가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천439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큰 수치다. 특히 30∼50대 남성이 크게 늘었는데, 여기에는 2023년 12월 말 배우 이선균씨의 사망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는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재난을 겪고 나면 그 부작용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2023년 말 유명인의 자살로 인한 '베르테르 효과'도 있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대개 베르테르 효과는 3개월 정도 가는데, 당시 1∼3월에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며 "작년 잠정치에서도 남성이 더 늘어난 걸로 보아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진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신건강연구센터장 역시 "지난해 자살 사망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왔다"며 "해외에서도 재난 직후 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중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고,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회·경제적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들이 장기화하면서 자살 문제가 계속 심각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자살까지 이어지는 데에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므로 이유를 단순 추측해 해석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자살을 줄이기 위해 개인의 정신건강을 돌봐야 할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더 악화할 가능성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 자살 건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거나 보합세를 유지했는데,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면서 오히려 다시 서로 각자도생하고 파편화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한번 이렇게 되면 예전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 자살 '고위험군' 관리 시급…인식 개선·탈락자 포용하는 문화도 만들어야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자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정신건강 위기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봤다.

 백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걸 꼭 해결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부터 시작된다"며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실패와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자살로 이어지는 사회는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백 교수는 자해 시도자나 자살 유가족, 재난 피해자 등 자살 고위험군을 관리하는 게 급선무라고 꼽았다.

 그는 "자살 고위험군은 정말 위험할수록 절망에 빠져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에 자살률이 높다는 건 고위험군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고, 발견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돕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정신건강 의료서비스 접근성도 좋은 편이지만, 대신 '내가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쫓아다니지는 않는다"며 "고위험군을 찾아내 쫓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위기 상황에 개입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적 도움 역시 정신건강 개선에만 치우칠 게 아니라 범부처 합동으로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겹겹이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자살 위기에 처하는 사람의 경우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요인도 있지만,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변화나 예기치 못한 재난 등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진아 센터장은 "우리가 자살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경제적 문제 등은 정신건강 담당 부서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전방위적 문제로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정신건강 대책이 쏟아져 나오더라도 실패를 포용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고도 이들은 강조했다.

 박종익 강원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자살 위기는 결국 '주류'에서 밀려났을 때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근본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포용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서 탈락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세운다고 해도 달라질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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