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strong>본인 제공]](http://www.hmj2k.com/data/photos/20250416/art_17446300983468_c4af97.jpg)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코르티솔이 있다.
코르티솔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호르몬이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화학적으로 스테로이드 링의 구조를 가진 호르몬 전체를 통칭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코르티솔뿐 아니라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젠, 프로게스테론 등도 속한다.
코르티솔을 포함한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우리 몸에 다양하게 작용한다.
대표적인 작용으로 혈압 상승, 혈당 증가, 체중 증가, 수면 장애 유발, 그리고 면역 기능 억제가 있다.
많은 의사는 대부분 면역 기능을 억제하는 데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사용한다.
그 예로 피부에 두드러기가 날 때 처방받는 약품 중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함유된 연고가 많은데, 그걸 바름으로써 면역 기능이 억제돼 가려움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는 약물을 먹어도 마찬가지다.
빼빼 마른 사람도 체중이 증가해서 얼굴이 둥그스름해지고, 혈압과 혈당이 높아진다.
이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생리 작용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혈압 환자에게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게다가 면역 기능이 억제돼 감염 위험도 아주 커진다.
이처럼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나오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코르티솔이 계속 분비된다.
마치 전쟁이 터지거나 난민이 된 것과 같은 비상 상태에 계속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몸이 매일 계엄령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져서 심장병, 뇌졸중, 치매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우울증이 악화하고 폐경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남성의 경우 리비도가 감소하거나 발기부전 같은 성과 관계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 스트레스 질환은 왜 치료하기 힘든가?
스트레스와 질병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스트레스가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된다고 모두 감기에 걸리는 것이 아니듯 병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은 정확한 원인을 따지기가 어렵다. 일상에서 받는 여러 자극 가운데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스트레스였는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동일한 자극이라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스트레스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물이 고인 길가를 걷다가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물벼락을 맞아 옷을 버렸다고 하면 분명 스트레스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이와 물총 싸움을 하다가 불시의 공격을 당했다면 어떨까? 이것도 같은 스트레스라고 볼 수 있을까?
또 만에 하나 무엇이 스트레스가 되는지 알았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감염성 질환은 항생제를 투여해 균을 죽임으로써 치료가 어느 정도 가능하고, 생활습관병도 질병의 원인이 되는 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성 질환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거의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꼽는 상황들을 살펴보면 숨통을 조여오는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서, 학교와 직장에서의 끝없는 경쟁, 내 맘 같지 않은 가족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어쩌면 현대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당장 오늘부터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살고자 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스트레스성 질환이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살펴볼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스트레스와 지위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여기지만, 최근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스트레스는 권한의 크기가 커지면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아마도 권한이 클수록 자유도가 높아지니까 그럴 수 있다.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확실해질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직업과 스트레스, 수명의 관계도 계속 연구돼 왔다.
예전에는 매일 같이 적당한 정도의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우편배달부가 가장 장수하는 직업으로 언급됐는데, 지금은 그 양상이 다르다고 한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은 1963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의 11개 직업군별 평균 수명을 조사해 비교·분석했다.
연구팀이 마지막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종교인과 정치인이 특히 오래 산다고 한다.
이들이 가지는 권위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종교인은 신체적으로 규칙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수양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인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환경에 살고, 스트레스에 대한 감수성도 적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듯하다.
반면 수명이 짧은 직업으로는 체육인과 연예인을 들 수 있다. 직업 체육인의 경우, 젊었을 때 강도 높은 운동을 지속해서 하다가 은퇴한 뒤 운동을 그만두면서 살이 찌고 심장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운동량이 급격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편 연예인의 수명이 짧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체중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예술적인 기질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하기도 하고, 대중의 관심에 일희일비하는 직업인 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수 있다.
◇ 스트레스 다스리기
현대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무한 경쟁 시대를 살다 보니 생존 자체가 스트레스가 돼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만 음식을 잘 조절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잠을 잘 자면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정신적·신체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거나 자신감을 잃고 끝없는 걱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두통이나 수면 장애 같은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급작스럽게 음식을 폭식하거나 흡연량이 늘어날 수도 있다.
좀 더 심각하게는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증가하거나 고지혈증 발병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건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