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건강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좋은 것을 먹고 나쁜 것은 거르되 적당한 양을 올바른 방법으로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

 그래서 장수 음식이 무엇인지 밝혀졌을까?

 뚜껑을 열어봤더니 공통점이 별로 없었다. 에스키모는 고기를 많이 먹는다. 고지방·고단백 식단이다. 그런데도 심장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한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생선을 많이 먹는다. 일본인 중에서도 특히 더 오래 산다고 알려진 오키나와 사람의 주식은 고구마다. 평생 고구마를 정말 많이 먹는다.

 이 경우는 고탄수화물 식단이다. 요즘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안 좋다고들 하는데, 어떤가? 결론적으로 '이것만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할 만한 장수 음식은 없다.

 또, 고탄수화물, 고단백, 고지방 요법 중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먹어야 할까?

 다행히도 장수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지역에서 난 신선한 식품, 특히 계절 식품을 복잡한 조리 과정 없이 그대로 먹되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정겹게 식사한다는 점이 있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결국 여기에 답이 있었다.

 지금까지 언론매체에서 다루는 건강한 식생활 정보라는 게 대개는 어떤 음식물은 열량이 어떻고 탄수화물과 지방 함유량이 어떻다는 단편적인 정보 위주였다. 더 심하게는 성분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 폴리페놀 등등 이름도 어려운 성분의 함유량이 몇 밀리그램인데 그게 혈액순환에 좋고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식이었다.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식품의 종류가 수십 가지인데 수많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일일이 체크해가면서 살 수 있을까?

 그러잖아도 세상 살아가는 데 복잡한 일이 많은데 말이다.

 음식물을 열량이나 영양소, 성분 등의 개념으로 나눠 설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생체가 필요로 하는 음식물은 훨씬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필자가 꼭 드는 예는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 만지는 상황을 표현한 옛 그림이다.

 원효대사가 '열반경종요'에서 화쟁정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예화로, 다리를 만지든 코를 만지든 몸통을 만지든 전체를 보지 않고서는 모두 코끼리의 일부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다.

맹인모상

 그들 각각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는 건강에도 이와 같은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사고의 큰 특징은 너무 세분돼있어서 전체를 조망할 수 없게 돼 있다.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I am what I eat)라는 말이 있었고, 1825년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옛사람들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전 세계 책방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식에 대한 책이 넘쳐난다.

 '음식이 약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도 수없이 많다. 결국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 약을 먹는 것보다 더 좋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건강하게 먹을까'보다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본래 다이어트(diet)라는 말은 식사 자체나 식사법, 식이요법 등을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체중 조절, 특히 살을 뺀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얼굴 작고 키 크고 늘씬한 몸매를 이상화하기 시작한 탓이다. 이렇게 된 데는 각종 매체의 영향이 대단히 크다.

 영화나 텔레비전 등에서 마른 연예인이 나와 군살 없는 몸을 이상화한 탓에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것 없이 몸매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 됐다. 수많은 여성이 40킬로그램대 몸무게를 목표로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는 걸 보면 저렇게 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게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건강한 모습이란 옛날 어른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모습, 그러니까 살이 약간 붙은 오동통한 모습에 가깝다.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다. 이 수치가 23 이상이면 과체중, 25 이상이면 비만이라고 하는데 BMI만으로 과체중 또는 비만을 판단하기에 부정확하다는 의견이 많다.

 체질량 지수를 기준으로 비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키와 몸무게만을 고려해 비만을 판단하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근육은 같은 부피의 지방보다 무겁기 때문에 지방은 적고 근육이 많은 사람과 근육은 없고 지방이 많은 사람을 비교하면 전자의 BMI가 높게 나온다.

 이런 사실은 남녀의 비만도를 BMI 지수라는 동일한 척도로 측정할 때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은 적고 근육이 많은 남성이 근육량이 적고 지방이 많은 여성에 비해 BMI가 더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BMI의 국제·국내 기준 비교

 몇해 전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이 지금껏 사용된 BMI에 따른 비만도 구분이 한국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한국인 1만6천여 명을 포함한 아시아인 114만 명에 대해 평균 9.2년(한국인 평균 조사 기간 6.5년) 동안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들은 BMI가 22.5 이상 27.5 미만일 때 사망 위험이 가장 낮았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로 그동안 대한비만학회 등이 기준으로 삼아온 비만 기준이 우리 체형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 한국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비만 해당자의 사망 위험이 과장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덩달아 적정 체중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게 됐다. (계속)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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