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열풍 속 커가는 '오남용·오처방' 딜레마

비만학회 "오남용 많지만 비만치료 순기능 커…GLP-1 급여화 검토해야"

  "한 달에 몇 킬로씩 빠져요", "인플루언서 후기 보고 처방받았어요", "비대면 처방 좀 알려주세요".

 최근 '위고비' 등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치료제를 이용한 체중 감량이 열풍처럼 번지면서 소셜미디어(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이다.

 GLP-1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원래는 인슐린 분비에 관여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약물로 개발됐지만, 식욕을 억제하고 위 운동을 늦춰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국내에서는 당뇨병치료제가 아닌 비만치료제로 허가받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GLP-1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실태와 안전성 문제를 짚기 위한 '긴급점검, GLP-1 비만치료제 오남용 실태와 안전성 우려' 심포지엄이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대한비만학회 공동 주최로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정부·의료계·언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비만치료제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와 교육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살 빠지는 주사' 오남용이 만들어낸 부작용의 그림자

 전문가들은 GLP-1 비만치료제가 '비만'이라는 명확한 질병이 있는 환자에게만 적합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사항을 보면, 위고비의 경우 초기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지만, SNS에서는 단순히 '다이어트 주사'로 포장돼 공유되고 있다.

 전문의약품 처방에 필요한 의학적 판단이나 안전성 정보 등에 대한 큰 고려 없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GLP-1 계열 치료제도 다른 모든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 의료진의 면밀한 평가 없이 쓰이기엔 위험한 약이라는 게 대한비만학회의 입장이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의료진의 적절한 처방과 관리 없이 사용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비만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대상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투여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현 상황을 짚었다.

 GLP-1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은 대개 허가 전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경미한 증상(두통, 구토, 설사, 변비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영국에서는 GLP-1 비만치료제를 투약한 후 급성 췌장염이 발생한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보건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또 국내에서는 위고비를 먹고 있는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할 경우 흡인성 폐렴이 매우 드물게 발생할 위험이 있어 환자에게 이런 위험성을 미리 알리고, 환자도 위고비 복용 여부를 사전에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진료 가이드가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서 공유됐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 비만치료 순기능 탁월…잘못된 인식이 오남용 부추겨

 대한비만학회는 GLP-1 비만치료제에 대한 오남용이 많다고 해서 이 약이 가지는 비만 치료 자체의 순기능이 저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허양임 대한비만학회 언론홍보이사는 "GLP-1 비만치료제는 적응증만 잘 지켜진다면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약물"이라며 "과도한 부작용 우려는 오히려 실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전문의약품은 효과와 부작용이 공존하기 때문에 충분한 병력 청취와 검사를 통해 적응증을 확인한 뒤 처방하고, 이후에도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림 식약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연구관도 "현재까지 (식약처에) 보고된 이상 반응은 국제 임상시험에서 나타난 수준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비만이 아닌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중요한 행사 전 급하게 감량하려고' 등의 사유로 약 처방을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또 한편에서는 오히려 일부 의사들이 적응증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용적 수단으로 약을 처방함으로써 오남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비만치료 급여화' 검토하고 올바른 사용 적극 알려야

 전문가들은 GLP-1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문제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비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비만 치료의 급여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정환 대한비만학회 정책이사는 "GLP-1 비만치료제는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지만, 비만에 대한 낮은 질병 인식과 제도 미비로 인해 오남용과 부작용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만은 이제 단순한 체형 문제가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심지어 암까지 유발할 수 있는 질환인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결과' 정도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해 비만 치료가 단순히 살빼기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만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과 지속적인 교육, 한국인 비만 기준에 맞는 적응증 연구, 비만 치료 급여화 및 모니터링 체계 강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현재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게 비만학회의 입장이다.

 식약처도 오남용과 부작용 관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김영림 연구관은 "위고비 등에 대한 온라인 불법 판매 및 광고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현장 점검을 통해 정확한 의약품 정보 제공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비만치료제는 마법의 주사가 아니어서 전문적인 진단과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되레 건강을 해치는 부작용을 남길 수 있다"면서 "약 하나만으로는 비만을 해결할 수 없고 올바른 정보, 적절한 진단, 생활습관 개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치료'가 완성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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