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눈에도 치명타…"자각 증상 없이 망막 망가뜨려"

수축기혈압 160 넘으면 망막병증 위험 3.2배↑…"고혈압 땐 매년 안저검사 필수"

 고혈압은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린다. 초기에 증상이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장기에 합병증을 유발하고 급기야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치명적인 질환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혈압이 눈에도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바로 '고혈압성 망막병증' 얘기다.

 망막은 우리 눈에서 빛을 감지하고 뇌로 신호를 전달해 시력을 유지하는 핵심 부위다. 카메라로 치면 필름에 해당한다. 이런 망막 속 혈관이 망가져 시력 저하와 실명이 초래될 수 있는 병적인 상태를 망막병증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고혈압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 속에 당뇨병이 없는 상태에서도 망막병증 유병률이 높아지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길안과병원·연세대의대 공동 연구팀이 2008∼201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자료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국내에서 당뇨병이 없는 성인 기준으로 중증도 이상의 고혈압성 망막병증 유병률은 약 0.8%로 추산됐다.

 이는 초기 망막병증 단계인 단순 혈관 협착이나 동맥에 의한 정맥의 눌림 현상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로, 실제 유병률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특히 고혈압성 망막병증 유병률은 50세 이상 고령층에서 1.9%까지 증가했으며, 고혈압 병력이 길거나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사람일수록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연구팀은 망막병증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를 조정했을 때 수축기 혈압이 160㎜Hg를 초과하는 사람의 망막병증 발생 위험이 130mmHg 미만인 사람에 견줘 3.15배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고혈압성 망막병증이 생겨도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환자 스스로 이상을 느끼지 못한 채 병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길안과병원 유태근 진료과장은 "고혈압성 망막병증 초기에는 혈압 상승에 따른 반응으로 망막 혈관이 수축하고 굳어지며, 혈관이 가늘어지고 비정상적으로 휘어지는 등의 변화가 생긴다"면서 "이후 심한 고혈압이 지속되면 혈관 벽이 손상되고 투과성이 증가하면서 삼출물, 망막 부종 등 허혈성 병변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에는 망막 내 출혈이나 시신경 부종까지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혈압성 망막병증에 대한 적절한 대처 요령은 무엇보다 빠른 진단과 치료다.

 유 과장은 "고혈압성 망막병증은 단순한 눈 질환이 아니라 전신 혈관 손상의 지표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특히 신경조직인 망막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운 만큼 초기에 발견해 빠르게 혈압을 조절하고 필요시 안과적 치료를 병행하는 게 시력 보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혈압성 망막병증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안저 촬영(망막사진)이다. 망막은 우리 몸에서 유일하게 혈관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창'으로, 안저 촬영을 통해 망막 속 혈관 상태를 보면 혈압으로 인한 손상 여부를 조기에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간편 망막 검사나 인공지능 기반의 망막 사진 분석 기술도 상용화되는 추세다.

 질환의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혈압 조절이 필수다. 동시에 혈당(당화혈색소), 신장 기능, 콜레스테롤 등 전신 건강지표 전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최신 연구에서는 빈혈(낮은 헤모글로빈 수치)도 고혈압성 망막병증의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제시됐다.

 한길안과병원 박시훈 과장은 "정기적인 안저 촬영은 망막의 합병증 유무를 확인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온몸 건강을 확인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면서 "40세 이상이라면 1∼2년마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는 경우라면 매년 1회 이상 꼭 안저 검사를 받아야만 혹시 모를 망막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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