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자료사진 [합천군 제공]](http://www.hmj2k.com/data/photos/20251042/art_17607396600522_d0a621.jpg?iqs=0.6640043172967254)
수많은 일반인 참가자가 땀 흘리는 국내 한 마라톤대회 현장.
5km 지점을 막 통과하던 40대 참가자의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대회 운영본부의 모니터에 '위험' 경고가 번쩍였다.
그가 착용한 웨어러블 기기가 전송한 심박과 체온 데이터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는 이미 웨어러블과 드론을 기반으로 한 AI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으며, 이러한 고도화된 안전 관리가 머지않아 모든 마라톤 대회의 기본 요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의 레이스…AI 도움 필요해
마라톤은 참가자에게 극한의 체력 소모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열사병, 탈수, 심지어 돌연사와 같은 응급 상황이 매년 끊이지 않는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그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의료 전문가들은 체온이 40도를 넘어설 경우 뇌와 심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수천 명이 동시에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서 주최 측이 모든 참가자를 '밀착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마라톤 대회가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AI와 첨단 장비의 협업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드론의 활약이다. 드론은 하늘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참가자들의 체표 온도를 넓게 측정한다.
특정 임계치를 넘는 발열 징후가 감지되면 AI가 자동으로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이다.
드론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급 상황 발생 시에는 자동제세동기(AED)를 현장으로 신속하게 공수하는 임무를 맡거나, 실시간 현장 영상을 운영본부에 전송하여 의료진의 신속한 판단을 돕는 '공중 조력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동시에 참가자들이 착용한 스마트 기기들은 심박, 호흡, 체온 등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AI는 이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의료팀 출동을 지시한다.
실제로 수천 명의 일반인이 참여한 2025년 춘천연합마라톤 대회에서는 AI와 드론이 결합한 관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와 춘천시육상연맹이 공동 주최한 이 대회에 도입된 드론 관제 시스템은 단순 촬영을 넘어 입체적인 안전망 역할을 했다.
대회에 앞서 디지털 트윈 기술로 코스의 위험 구간을 예측하고 드론 투입 지점을 미리 설정해 두었다.
드론의 열화상 카메라는 상공에서 참가자들의 체온을 면밀히 측정했고, AI 시스템은 체온 35℃ 이상 징후를 즉각 감지해 의료팀에 경고를 보내 열사병 등 응급 상황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다.
글로벌 IT기업 TCS는 2025년 시드니 마라톤에서 '디지털 트윈 하트'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참가자 개인의 심박 및 혈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의 심장 모델을 구축하고, 고온이나 급경사 등 다양한 외부 환경에서 심혈관 이상 발생 가능성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예측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현재'의 수치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돌발 상황을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래형 생명 안전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 안전망의 심장…AI의 '비정상 패턴 감지' 알고리즘
이러한 첨단 안전 시스템의 핵심 동력은 AI의 '이상(Abnormal) 탐지' 기술이다.
수많은 마라톤 참가자의 평소 생체 패턴과 미세하게 달라진 비정상적인 신호를 빠르게 걸러내 경고를 발송하는 방식이다.
최근 연구들은 웨어러블 데이터에 주변 환경 데이터까지 융합하여 심박 불규칙, 호흡 이상, 체온 상승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을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참가자의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맥박 변동이 심해지면 AI는 즉각적으로 해당 참가자에게 "속도를 줄이고 수분을 섭취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동시에 위치 정보가 의료팀에게 전파되어 구조 인력이 즉시 투입된다.
드론과 CCTV 영상까지 연동될 경우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대상자를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는 정밀함을 갖추게 된다.
물론 센서 오류, 통신 지연, 그리고 개인별 체질의 미묘한 차이로 인한 '오경보'나 '경보 누락' 가능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AI는 단순히 경기 중 안전 보조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 전후 데이터를 분석해 참가자의 훈련 계획이나 회복 관리에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할 수 있다.
주최 측 또한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다 정밀하고 효율적인 대회 운영을 설계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참가자 맞춤형 훈련 및 영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스포츠 헬스케어 전반에 걸쳐 혁신을 가져올 잠재력을 안고 있다.
◇ 기술 도입의 그림자…보안, 비용 그리고 윤리
AI 기반의 안전 시스템이 마라톤 현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걸림돌 또한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데이터 보안이다.
참가자의 심박, 체온, 호흡 등 민감한 생체 정보는 엄연한 개인 건강 정보다.
이 데이터가 유출될 경우 단순한 사생활 침해를 넘어 보험 가입, 고용 등 사회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기술적 신뢰성 확보 또한 중요하다.
AI의 오경보는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고, 반대로 이상 신호를 놓치는 '경보 누락'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적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밀한 알고리즘 검증과 더불어 다양한 인종, 체질, 그리고 변화무쌍한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데이터 학습이 필수적이다.
막대한 비용 부담도 현실적인 문제다.
수천 명에게 센서와 통신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이를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투입된다.
주최 측이 이 비용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참가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참가자의 윤리적 동의가 필요하다.
참가자는 자신의 생체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 분석, 활용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경기가 끝난 뒤 데이터의 저장 및 삭제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아가 AI의 경고 메시지가 경기 중 참가자의 자율적인 판단이나 기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마라톤 현장에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AI가 마라토너의 주치의'라는 말은 이제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드론, 웨어러블, 이상 탐지 기술이 융합하며 AI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잘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마라톤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이자 때로는 생명을 건 싸움이다.
이제 그 곁에는 AI가 함께 달리고 있다. "AI가 함께 있어 안심되는 마라톤"이 일상적인 풍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