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연속' 희귀·중증질환 신약 접근성 달라질까

환자단체 "환자중심원칙 지켜져야", 전문가 "선사용후 임상성과 재평가 바람직"

 희귀·중증질환 환자들에게 '신약 접근성'은 단순한 정책 용어를 넘어 치료의 기회이자, 삶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말이다.

 하지만 승인된 치료제가 있어도 보험의 문턱을 넘지 못해 환자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병이 진행되는 동안 '제도의 시계'를 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오래도록 반복돼 온 현실이다.

 최근 정부가 약가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바로 이런 '시간의 벽'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지난 9일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이건희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 새 정부 희귀·중증질환 보장 강화의 방향은?)은 이 같은 신약 접근성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정부가 제시한 약가 제도 개선안이 실제 환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짚는 자리였다.

 김현주 한국저인산효소증 환우회 대표는 "뼈와 치아, 근육, 전신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성 희귀질환으로 인해 일상은 늘 통증과 골절의 위험 위에 놓여 있다"며 "승인된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 기준, 비용 부담, 보험 부재라는 장벽 때문에 많은 환자가 치료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환자들이 병과 싸우기 전에 의료 시스템과 싸워야 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X-선상 골 증상이 명확히 확인돼야 진단이 가능하고, 만 19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급여가 인정되는 현행 기준이 실제 환자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치료 시기를 조금이라도 놓치면 평생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제도는 환자의 상태보다 '조건'을 먼저 묻고 있다는 것이다.

 폰히펠린다우증후군(VHL) 환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미경 한국VHL 환우회 총무는 "신장, 뇌, 췌장 등 다양한 장기에 반복적으로 종양을 유발하는 유전성 질환"이라며 "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들은 종양의 진행이 억제되고 삶의 질이 눈에 띄게 개선되지만,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많은 환자가 약을 앞에 두고도 복용을 포기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환자들은 반복되는 수술로 장기 일부를 절제 당하고, 후유증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라며 "환자단체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등재 기간을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구체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특히 "질병의 위중도와 치료 성과를 반영해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의 임곗값을 유연하게 적용함으로써, 비용효과성 평가 때문에 등재가 지연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며 "약가 유연 계약제 확대를 통해 신속 등재를 가능하게 하고, 사후 관리까지 포함한 전반적인 약가 체계를 혁신에 대한 보상이 작동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고 설명했다.

 허가 이후 평가와 협상을 병행하고, 임상적 유용성을 중심으로 절차를 간소화해 '100일 신속등재'를 현실화하겠다는 구상이다.[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토론에서는 제도 개선의 방향성에 대한 공감과 함께, 실행력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됐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번 약가 제도 개선 방안은 희귀·난치질환 환자들에게 보다 신속하고 공정한 치료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분명한 메시지"라면서도 "어렵게 마련된 개선안이 추진 과정에서 재정 논리나 일부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환자 중심이라는 원칙이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서혜선 경희대 약학과·규제과학과 교수는 "희귀·중증질환 치료제는 기존의 경제성 평가 틀로만 접근할 경우 환자의 시간을 빼앗을 수밖에 없다"며 "근거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먼저 사용을 허용하고, 이후 임상 성과를 토대로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ICER 임곗값 역시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질환의 위중도와 대체 치료 수단의 유무를 고려해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다.

다만 그는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존 경증 질환에 투입되던 건강보험 재정을 전환하는 문제는 결국 국민적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상희 화순전남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급여 기준과 치료 차수 제한 때문에 국제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처방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급여 확대 과정에서 보험 재원의 효율적 사용과 우선순위 설정이 불가피한 만큼 이 과정에 의료 전문가의 판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희귀·중증질환 치료에서 가장 잔인한 요소는 병 그 자체보다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약가 제도 개선안이 또 하나의 선언으로 남을지, 아니면 환자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체감할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문턱이 많기 때문이다.

 희귀·중증질환 환자들이 더 이상 제도를 기다리다 치료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정책의 속도가 환자의 시간에 맞춰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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