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불안 잡는 '제3의 퇴직연금'…CDC 기금형 주목

개인 독박 DC형 한계 극복…'기금'이라는 큰 배로 투자 실패와 장수 위험 분산
전문가운영과 집단적 연대로 100세 시대 노후방패 만든다…연금 선진국 대세로

 평균 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열리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한 퇴직연금 시장은 고민이 깊다. 회사가 연금을 보장해 주자니 기업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개인이 알아서 굴리자니 투자 실패나 너무 오래 살게 될 '장수 위험'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최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의 장점만 결합한 이른바 '제3의 연금', 집합적 확정기여형(CDC) 퇴직연금이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 "내 도시락 대신 공동 식당으로"…기금형 구조가 핵심

 10일 국민연금연구원 유호선 연구위원이 '연금포럼 2025 겨울호' 발표한 '집합적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관한 이론적 논의' 보고서에 따르면 CDC의 핵심은 '기금형'이라는 그릇에 담긴 '집합적' 운영에 있다.

 반면 CDC는 회사와 독립된 별도의 법인인 '기금'을 세워 운영하는 '기금형' 구조를 전제로 한다. 마치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대형 식당'을 차리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가입자의 돈을 커다란 '하나의 주머니(집합적 기금)'에 모으고, 이를 전문가들이 대신 굴려준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과 위험을 가입자들이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개인이 홀로 거친 금융시장의 파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기금이라는 커다란 배에 올라타 함께 항해하는 셈이다.

 ◇ 전문가가 대신 굴리고 '장수 위험'은 함께 나눈다

 CDC형의 가장 큰 매력은 '위험의 분산'과 '수익의 안정화'에 있다. 개인이 DC형으로 연금을 굴릴 때는 복잡한 금융 지식이 부족해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시장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기 쉽다.

 하지만 CDC형은 전문 투자팀(CIO)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산 투자를 한다. 특히 시장이 좋을 때 수익의 일부를 적립해두었다가, 시장이 나쁠 때 이를 풀어 연금액을 보전해주는 '평탄화(Smoothing)' 기법을 사용한다.

 덕분에 은퇴 시점에 갑자기 시장이 얼어붙더라도 개인처럼 큰 손실을 보고 노후 자금이 반토막 나는 비극을 방지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수 위험'에 대한 대처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개인은 은퇴 자금을 얼마나 아껴 써야 할지 늘 불안하지만, 수만 명이 모인 집단은 통계적으로 평균 기대 수명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CDC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입자가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종신연금' 기능을 강화했다.

 '운 나쁜 은퇴자'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노후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 세대 간 형평성 등 과제 있지만…'연금 선진국'들의 필수 선택

 물론 CDC형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회사가 연금액을 확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기에 투자 성과에 따라 받는 금액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다.

 또한, 젊은 세대의 기여로 노인 세대를 지원하는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세대 간 형평성'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덴마크와 영국 등에서는 개인별 계좌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운용은 집합적으로 하는 '개인별 집합형(CIDC)'으로 제도를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유호선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인구 고령화로 인해 기업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근로자의 노후 보장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며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 성공적인 연금 체계를 갖춘 국가들처럼 우리나라도 기존 계약형 DB와 DC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금형 CDC' 모델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평생을 일구어온 퇴직금이 개인의 '운'이나 '실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체계적인 관리와 집단의 연대를 통해 '확실한 노후의 방패'가 되도록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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