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는 7월 이후 하반기 시행 목표로 약가 제도 개편이라는 강도 높은 처방을 내놓으면서도 제약업계가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촘촘한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복제약 가격을 현실화하되 산업계가 고사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이른바 연착륙 전략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약가 제도 개편을 통해 약 1조원 안팎의 재정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1+3 규제 맞춰 13번째 품목부터 인하 적용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복제약의 가격을 차례대로 깎는 계단식 약가 인하의 기준점 변경이다. 복지부는 애초 논의됐던 11번째 품목이 아닌 13번째 품목부터 인하를 적용하기로 정했다. 이는 현재 21번째 품목부터 적용하던 것을 앞당겨 복제약의 난립을 막으려는 조치다.
정부가 인하 기준을 13번째로 설정한 이유는 기존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 시험) 규제와 궤를 같이하기 위해서다. 복지부는 최초로 약을 신청한 기업과 이후 그 자료를 공유해 시험을 진행하는 1+3원칙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즉 하나의 원본 자료로 최대 4개의 품목이 그룹화되는 현행 생동성 시험 구조를 정책에 반영해 제도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현장의 혼란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 혁신형 제약기업 인하분 50% 감면 파격 특례
제약업계의 경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연착륙 전략도 구체화했다. 정부는 단순히 약값을 깎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약 개발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에 적극적인 혁신형 제약기업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특례 제도를 도입한다.
예를 들어 특정 약제의 가격을 20%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한 번에 적용하지 않고 총 6년에 걸쳐 나눠 인하한다.
여기에 혁신형 기업에 대해서는 인하 폭의 절반인 50%만 우선 적용하는 특례를 더해 실제 약값이 완전히 낮아지기까지 총 10년이라는 충분한 유예 기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인하 과정을 살펴보면 첫해에는 전체 인하분의 아주 일부인 1.7%만 낮추고 2년 차에 3.4% 식으로 4년 차까지 인하 폭을 최소화한다. 이후 특례 기간이 종료되는 5년 차부터 조금씩 인하율을 높여 최종적으로 10년이 되는 시점에 목표한 인하율에 도달하도록 설계했다.
이는 제약사들이 갑작스러운 매출 급감으로 인해 인력을 감축하거나 경영 위기에 빠지는 일을 방지하고 수익 구조를 개선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복안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정부가 신약 개발 역량과 해외 진출 실력이 우수하다고 공식 인증한 '국가 대표 제약사'이다. 2012년부터 우리 제약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이 기업들이 오직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지원한다. 국가 R&D 과제 선정 시 가점을 주어 우선권을 부여하고, 연구비와 인건비에 대한 법인세 공제로 세금 부담을 덜어준다. 또한, 신약 개발과 수출에 필요한 자금을 낮은 이자로 장기간 대출해 주는 등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정부는 복제약 위주의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도 병행한다. 제네릭 신규 등재 시 약가를 우대해주는 기간을 요건 충족 시 최대 4년까지 대폭 확대하며 특히 해당 의약품이 국내에서 직접 생산되는 경우에는 우대 기간을 3년 더 연장해 국내 제조 기반 강화를 독려한다. 이는 약가 인하라는 채찍과 함께 R&D 지원이라는 당근을 동시에 제시해 산업의 선진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선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세밀한 배려도 포함됐다. 약값이 조정될 때마다 약국이나 병원에서 발생하는 반품 및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가 조정 시기를 매년 4월과 10월로 정례화하고 시행 전에는 반드시 충분한 준비 기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한 필수의약품이나 국가적으로 공급 관리가 필요한 약제에 대해서는 사용량이 늘어나도 약값을 깎지 않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 제외 혜택을 줌으로써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 신약 등재 100일로 단축…환자 접근성 대폭 강화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희귀질환 치료제 등의 경우 급여 적정성 평가와 협상을 간소화해 등재 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대폭 단축할 계획이다. 일단 약을 먼저 쓸 수 있게 해주고 나중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실사용 자료를 활용해 꼼꼼하게 다시 평가하는 사후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번 개편안이 단순히 재정 절감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산업계 및 전문가와 함께 정교한 사후 평가 모델을 마련하고 전문위원회를 통해 투명하게 논의를 이어감으로써 제도의 수용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이번 약가 제도 개편은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공공의 이익과 제약산업의 생존이라는 산업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10년이라는 긴 호흡의 단계적 인하 정책과 1+3 규제를 반영한 합리적 기준 설정이 제약업계의 연착륙을 돕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