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질환은 흔히 중년 이후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씨앗'은 훨씬 이른 시기, 어린 시절부터 뿌려진다는 게 의학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그 중심에 있는 지표가 바로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C)'이다.
LDL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린다. 혈액 속에서 콜레스테롤을 말초 조직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수치가 높아지면 혈관 벽에 쌓여 동맥경화를 촉진하고 결국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치명적인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LDL은 단순한 위험 인자를 넘어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적 요인'으로까지 평가된다.
문제는 이 LDL 이상이 성인이 되어서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의 LDL 수준은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며, 실제로 소아기 지질 상태가 향후 심혈관질환 발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연구들이 축적돼 있다.
가천대 약대 장하영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임상지질학저널(Journal of Clinical Lipidology)'에 발표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7∼18세 소아·청소년 2천702명을 분석한 결과 부모의 LDL 수치가 자녀의 LDL 수치와 뚜렷하게 연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 자녀의 고콜레스테롤혈증은 LDL 130㎎/dL 이상, 부모의 이상지질혈증은 총콜레스테롤 240㎎/dL 이상 또는 LDL 160㎎/dL 이상으로 각각 정의됐다.
분석 결과 부모 모두 이상지질혈증이 없는 경우 자녀의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3.1%에 그쳤지만, 부모 모두 이상지질혈증이 있는 경우에는 16.1%까지 증가했다.
부모의 LDL 수치가 높을수록 자녀의 LDL 수치도 정비례해 상승하는 경향이 확인된 셈이다.
부모를 각각 나눠 보면 어머니의 영향이 더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위험도 분석에서 아버지만 이상지질혈증이 있는 경우 자녀의 고콜레스테롤혈증 위험이 2.12배로 증가했지만, 어머니만 있는 경우에는 4.03배로 더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평가했다.
양쪽 부모 모두 문제가 있을 때의 위험도는 3.83배였다.
특히 어린 연령대일수록 이런 영향은 더욱 뚜렷했다. 7∼12세 아동에서는 어머니의 이상지질혈증이 자녀 고콜레스테롤혈증 위험을 7.07배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단순한 '유전' 이상의 복합적 메커니즘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임신 전후 어머니의 지질 상태가 태아의 대사 환경과 장기 발달, 나아가 후성유전학적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녀의 이상지질혈증 위험을 평가할 때는 단순히 아이의 식습관이나 체중만 볼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질 상태 자체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장하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부모의 LDL 상태가 자녀의 LDL과 유의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국내 대표 표본에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특히 모계 영향이 더 크다는 점은 가족력 평가나 조기 선별검사 전략에서 어머니의 지질 정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장 교수는 "이번 연구는 특정 시점의 데이터를 분석한 단면연구인 만큼 부모의 LDL이 자녀 LDL을 직접적으로 높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유전적 요인과 가족 내 생활습관,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가족 단위의 지질 관리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