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요인은 생활 양식(lifestyle)이나 환경 못지않게 비 감염 질환의 원인이 된다. 암은 물론이고 심혈관 질환, 염증 질환 등에 걸릴 개인별 위험이 이런 요인들에 의해 많이 달라진다. 유전역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질병 등의 '유전 가능성'(heritability)을 연구해 왔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특정 성향이 유전자를 통해 자녀에게 전해지는 정도와 범위를 탐구해온 것이다. 극적인 돌파구를 연 게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 기술이다. 이 기술이 등장한 이후 일반적 질병이나 건강 관련 성향에 관여하는 수천 종의 유전자 변이가 짧은 기간에 확인됐다. 최근의 DNA 분석기술은 인간의 유전체에서 변이가 생긴 위치를 개인별로 확인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지금까지 유전적 변이의 압도적 다수는 소수의 사람에게 드물게 생기는 것이고, 어떤 경우엔 특정 집단에 국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전병은, 작용 범위가 넓지 않은 다수의 흔한 유전자 변이가 조합해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희소한 유전자 변이는 해당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질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의 유전자 연구가 유전자의 질병 유발 효과를 상당히 많이 간과했을
나쁜 식습관이 암을 부르고 암의 진행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마침내 이 가설이 사실이라는 걸 강력히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음식물에 포함된 지방의 양과 몸 안의 산화질소(Nitric oxide) 수위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는 게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산화질소는 암의 발달, 염증 발생 등에 관여하는 신호 분자다.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베크만 첨단 과학 공학 연구소'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화학회(ACS)가 발행하는 저널 'ACS 중심 과학'(ACS Central 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따르면 연구팀은 종양 미세환경의 미묘한 변화가 분자 수준에서 암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포는 생존과 성장을 위해 일반 세포와 다른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데 이를 종양 미세환경이고 한다. 양 미세환경에 깊숙이 관여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염증이다. 구팀은 특히 칼로리가 높고 지방이 많이 함유된 고가공식(highly processed food)에 주목했다. 고가공식이
1형 당뇨병은 인슐린을 생성하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자가면역 반응으로 파괴되는 병이다. 이렇게 베타세포가 손상되면 인슐린 부족으로 혈당치가 급격히 치솟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1형 당뇨병 환자는 매일 인슐린을 투여해야 한다. 베타세포, 알파세포(글루카곤 생성 세포) 등이 모여 있는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을 이식하는 게 1형 당뇨병의 유력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세포치료는 거부 반응이 심해, 설사 효과를 본다고 해도 평생 면역억제제에 의존해야 한다. 1형 당뇨병 환자에게 랑게르한스섬을 이식할 때 거부 반응을 피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 전략이 개발됐다. 간단히 말하면 신종 생체적합 물질(biomaterial)을 랑게르한스섬과 섞어 함께 이식하는 것이다. 면역 억제 단백질이 포함된 이 물질의 작용으로 이식한 랑게르한스섬이 장기간 보존되는 것으 로 확인됐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최대 교육병원인 매사추세츠 제너럴 호스피털(MGH) 과학자들이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13일(현지 시각)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논문으로 게재됐다. 이 연구엔 미국 조지아 공대와 미주리대 과학자들도 참여했다. 연구팀은 1형
식도의 끝부분이 장기간 역류 위산에 노출되면 위 조직 같이 된다. 위산의 공격에 견디려고 식도 조직이 이렇게 변한 걸 '바렛 식도'(Barrett's esophagus)라고 한다. 위와 식도는 바로 연결되는 장기이긴 하나, 점막을 이루는 세포는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해 식도 점막은 편평상피세포로, 위 점막은 원주상피세포로 구성돼 있다. 바렛 식도가 생기면 가슴 통증 등이 따르지만 당장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바렛 식도 환자의 약 5%는 식도암의 한 유형인 '식도 선암(腺癌'(esophageal adenocarcinoma)으로 진행한다. 게다가 암이 되지 않는 나머지 95%의 바렛 식도 환자까지 식도암 공포에 떨어야 한다. 미국 연구진이 이런 문제를 푸는 해법을 찾아냈다. 바렛 식도 환자에게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기면 식도암 위험이 커지는지 상세히 밝혀낸 것이다. 종양 억제 유전자로 알려진 TP53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돌연변이가 문제였다. 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씩 받은 두 개의 TP53 카피에 모두 변이가 생기면 특히 발암 위험이 커졌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 연구 센터(Fred Hutchinson Cancer Research Center) 과학자
우리 주변에 복용 약이 흔해도 먹는 방식으론 효과를 보기 어려운 약도 적지 않다. 복용한 약이 위(胃)의 강산성 소화액을 견뎌내고 온전히 소장(小腸)까지 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약이 위에서 많이 분해되면 작용 성분이 소장의 혈관을 통해 충분히 흡수되지 못한다. 약을 먹을 때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을 쓰는 이유도 위를 거치면서 상당한 양이 분해되기 때문이 다. 복용 약의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종 운반 물질을 미국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위의 산성 환경에 파괴되지 않고 소장에서 잘 분해되는 '양성 이온 중합 복합체'(pZC)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물질은 흔한 경구용(經口用) 항생제부터 최신 단백질 치료제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약물 전달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올 거로 기대된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실렸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복용 약을 쓰기 어려우면 주사로 약
루푸스병(lupus)은 면역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우리 말로는 '전신 홍반성 낭창'이라고 한다. 루푸스에 걸리면 장기, 혈관계, 조직 등이 염증으로 손상돼 기능 부전으로 이어진다. 희소 질환이긴 하나,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다. 특히 가임기 여성에게 많이 생기는 경향을 보인다. 루푸스병 환자의 70∼80%는 다른 부위의 염증과 별개로 피부 발진이 나타난다. 이를 따로 '피부 홍반 루푸스'(CLE)라고 한다. 이 유형의 루푸스 환자는 자외선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환자의 30∼40%는 장시간 햇빛에 노출될 경우 증상이 악화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 미시간 의대 과학자들이 루푸스병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밝혀냈다. 루푸스병 환자는 발진이 생겼을 때와 똑같은 염증 신호가 정상 피부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환자에 따라선 정상 피부의 염증 신호가 발진 시보다 훨씬 더 강한 경우도 있었다. 미셸 칼렌버그 류머티스학 부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논문으로 실렸다.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
흔히 아테롬성 동맥경화라고 하는 죽상경화증(粥狀硬化症ㆍatherosclerosis)은 동맥 등 혈관 내피에 죽상경화반(atherosclerotic plaques)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이다. 죽상경화반은 지방, 콜레스테롤, 칼슘 등의 혈액 성분이 뒤섞여 덩어리를 형성한 걸 말한다. 이런 죽상경화반이 동맥 내벽에 축적되면 산소가 포함된 혈액이 장기나 조직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초기엔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나이가 들어 심해지면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심근경색, 말초동맥질환 등으로 진행된다. 보통 65세쯤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동맥경화가 있는 거로 간주한다. 선진국에서 동맥경화는 질병 사망 원인 1위로 꼽히는 위험한 병이다. 이런 죽상경화증의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뇌-혈관 신호 교환 메커니즘이 발견됐다. 동맥경화가 진행된 혈관의 전기 신호가 뇌로 전달되면 뇌가 스트레스 신호를 반송해 증세가 더 나빠진다는 게 요지다. 이 신호 회로를 끊으면 동맥경화의 진행이 억제된다는 것도 동물 실험에서 확인됐다. 독일 뮌헨대(LMUㆍ루트비히-막시밀리안 뮌헨대) 과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밤에 잠을 못 자는 불면증(insomnia)과 낮에 각성 유지가 어려운 기면증(narcolepsy)은 마주 보는 거울처럼 정반대의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불면증과 기면증의 뿌리는 같다. 히포크레틴(hypocretin)이라는 신경 펩타이드(neuropeptide)의 발현 수위에 따라 진행 방향이 달라질 뿐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뇌(시상하부)에 히포크레틴이 너무 많고, 기면증 환자는 너무 적다. 히포크레틴은 우울증,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의 정신 질환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히포크레틴은 진작에 수면 장애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캐나다에선 2018년 히포크레틴의 작용을 억제하는 불면증 치료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뇌 신경세포(뉴런)의 히포크레틴 수위가 어떻게 조절되는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이런 관련 지식의 부재는 히포크레틴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큰 걸림돌이 됐다. 마침내 특정 유형의 마이크로 RNA(miR)가 인간의 히포크레틴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아 수면의 질과 양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마이크로 RNA가 수면 조절에 관여한다는 게 입증된 건 처음이다. 마이크로 RNA는 20∼25개의 뉴클
수면이 뇌의 인지 기능과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뇌에 쌓인 노폐물은 잠자는 동안, 특히 숙면할 때 제거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수면 패턴이 달라진다. 잠이 잘 오지 않거나 잠자다 깨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수면의 질과 양이 모두 떨어진다. 특히 고령자에게 이런 수면 장애가 오면 인지 기능 저하 등 신경정신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진다. 수면의 양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특히 고령자는 수면 부족 못지않게 건강에 해롭다는 게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그럼 중년 이후 인지 기능 저하를 막고 정신 건강을 지키려면 하루 몇 시간의 수면이 적절할까. 영국과 중국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통해 '하루 7시간'의 수면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걸 밝혀냈다. 케임브리지대와 상하이 푸단대(復旦大學) 과학자들이 함께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노화'(Nature Aging)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38∼73세 성인 약 50만 명을 대상으로 수면 패턴, 정신 건강 상태, 삶의 질 등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약 4만 명은 인지 기능 검사와 함께 뇌 영상 및 유전자 데이터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