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만찬음식으로 화합할 수 있을까?

 (정갑식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어떤 공동체든 구성원들의 결속과 단합은 아주 중요하다. 그 공동체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동일화함으로써 더욱 견고하게 공동체의 힘을 다져나간다. 따라서 공동체의 수장은 결속과 단합을 굳건히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며 최선을 경주한다.

 결속과 단합은 정치, 제도,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방법으로 모색할 수 있다. 이중 사회적·문화적 방법들 중 일반적인 것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큰 행사인 축제와 작은 행사인 잔치 혹은 파티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불러 소규모 잔치, 파티를 열며 유대를 확인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축제이고, 무엇을 위한 잔치인지' 알 수 있는 이벤트의 성격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음식(food and drink)이다. '어떤 음식이 축제와 잔치에서 제공되는가'라는 것은 그 자리를 한층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조연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력자로서 음식만 한 것도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특정한 음식은 그 축제나 잔치의 성격과 주제를 규명하는 함의적 내용까지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1년 4월 29일, 영국에서 온 국민이 열광하는 축제가 열렸다. 왕실의 적통을 이어갈 미래의 왕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성대히 치러진 것이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버킹엄궁에서 할머니인 여왕이 어떤 잔치 음식을 하객들에게 대접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왕실은 잔치 음식을 늘 비밀에 부치고, 하객들 또한 당일이 돼야 비로소 자신들이 대접받을 음식의 메뉴를 알 수 있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이때 여왕은 왕실 잔치에서 처음으로 이런 전통을 깨는 파격을 선보였다.

 통상적으로 왕실에서 큰 잔치를 할 때는 초청한 손님들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싯 다운 밀(sit down meal)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관례를 깨고 손으로 집어 먹는 카나페(canapes)를 접대한 것이다. 사실 카나페는 가벼운 파티에 어울리는 음식이지, 메인 음식이라고 하기엔 다소 가볍다.

 여왕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버킹엄궁에 초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하객들에게 22종류, 1만 개의 카나페를 대접하면서 특별한 지침을 내려보냈다. '잔치 음식에 제공할 음식을 만들 때 잉글랜드에 국한하지 말고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까지 4개국의 음식 재료를 골고루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영국(United Kingdom)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섬나라다. 그런데 윌리엄 왕자의 결혼 당시 이들 나라의 독립 문제로 온통 시끄러웠고, 특히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지며 불길처럼 뜨겁게 번져나갈 정도로 분열이 심각했다.

 영국을 다스리는 여왕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시급한 국정 과제인 분열을 방지하고 결속과 화합을 다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때 마침 열린 왕실의 잔치이니 호기를 놓칠 수는 없는 일. 더욱이 영국 왕실의 잔치는 세계인의 이목을 한눈에 집중시킬 수 있는 지구촌 이벤트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날 선보인 대부분의 메뉴도 여왕이 직접 엄선했다고 한다. 결국 여왕은 잔치에 초대된 하객들을 잘 대접했을 뿐 아니라 분열된 4개국까지 잘 추스르면서 결속과 화합을 대내외적으로 공고히 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올해 5월 10일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새로 선출돼 임기의 시작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행사이니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은 취임식에 어떤 사람들이 초대되고,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취임사에 어떤 내용을 담아 본인의 국정 철학을 국민에게 알릴 것인가에 집중됐을 것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필자의 관심은 새 대통령이 취임 만찬에서 초대 손님들과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에 쏠렸다. 지난 5년간 국론이 크게 분열됐고, 이른바 '편 가르기'에 대다수 국민이 힘들어했었기 때문이다. 버킹엄궁의 여왕이 보여준 잔치 음식의 정치적 지혜를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만찬장에서도 보고 싶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기대는 비껴가지 않았다. 언론에 따르면 완도 전복, 금산 인삼, 구례 보리순, 가평 잣, 통영 도미, 공주 밤, 괴산 은행, 정선 곤드레, 제주 고사리, 금포 금쌀, 태안 모시조개, 충청 애호박, 개성 약과, 제주 애플망고, 고흥 유자 등 전국 각지에서 산출된 음식 재료를 고루 사용한 음식을 선보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나온 음식 재료로 만든 음식도 메뉴에 이름을 올렸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방방곡곡의 국민이 땀 흘려 지은 농수산물로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 취임 만찬 음식을 구성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다.

 영국 여왕이 11년 전 잔치 음식으로 국민 화합이라는 정치적 과실을 어느 정도 얻었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신임 대통령 또한 곳곳의 음식 재료로 어우러진 잔치 음식을 나눴으니 정치적 과실 또한 모든 사람이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음식은 누구에게나 항상 즐거움을 주고, 식탁은 항상 사람을 불러 모으는 좋은 역할을 한다. 음식 교제만큼 좋은 정치적 이벤트가 어디 있으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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