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교사들의 직업성 정신질환 발생 위험이 일반공무원보다 두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이는 지난해 2학기가 시작될 무렵 10일 남짓한 기간에 5명의 교사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된 후 교권 침해에 따른 직업성 정신질환 발생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중앙보훈병원 민진령 연구부장과 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민경복 교수 공동 연구팀은 최근 10년간 공무원연금공단의 공상(공무원 산업재해신청) 데이터(4만6천209명)를 분석한 결과, 교육공무원의 직업성 정신질환 발생 위험이 다른 공무원에 견줘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분석 결과 일반직(행정·기술) 공무원과 비교한 교육공무원의 직업성 정신질환 발생 위험도(hazard ratio)는 2.16배에 달했다.
정신질환별 세부 위험도는 우울증 2.07배, 급성스트레스 2.78배, 기타 정신질환 2.68배 등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정신질환 발생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교사들은 '생존 곡선' 분석에서도 다른 공무원에 견줘 크게 감소하는 특징을 보였다.
생존 곡선은 동일 그룹에서 연령에 따른 생존율 등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이번 연구에서는 시간 경과에 따른 정신질환 발생률을 볼 수 있다.
10년 동안 후향적으로 추적한 이 분석에서 교육공무원의 생존 곡선은 조사 초기 단계부터 일반직 공무원은 물론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보다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가 관찰됐다.
연구팀은 이런 생존 곡선으로 볼 때 교사들의 정신질환이 최근 몇 년간 증가한 게 아니라, 10년 또는 그 이상 잠재됐던 문제가 최근에 표면화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보훈의학연구소 민진령 연구부장은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교사들의 정신질환이 최근 몇 년간 증가한 것처럼 비치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잠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로환경과 결부한 예방의 중요성이 매우 큰 직업성 정신질환의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경찰과 소방, 일반직 공무원의 생존 곡선이 교육공무원의 밑에서 장기간 평행선을 형성하다가 마지막 시점에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은 인사상 불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이들 직업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실제로 소방관과 경찰관의 정신질환 위험은 일반 공무원보다 각각 20%, 83% 낮았다.
서울대 의대 민경복 교수는 "업무상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경찰공무원의 경우 직업성 정신질환을 호소하면 근무나 승진 등의 불이익을 받는 낙인효과(stigma effect)로 인해 과소 보고(under-report)될 가능성이 높다"며 "다른 공무원 그룹에서 직업성 정신질환이나 스트레스를 숨기는 현상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에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에 대한 가이드라인'(WHO guidelines on mental health at work)을 발표하면서 "정부, 기업 및 직업 세계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보호하며, 안전하고 포용적인 일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정신건강 영역에서 공중보건 문제의 규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 규모보다 크다"면서 정신건강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나중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비용과 노력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진령 연구부장은 "10년간의 후향적 추적 조사로 교권 침해에 따른 교사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와 정신건강의 위험이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한 연구 결과"라며 "전통적으로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높고 교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한국에서 교사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가 외국보다 훨씬 심한 게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