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약과, K-푸드 열풍의 원조

 한국의 전통 간식인 약과 열풍이 거세다. 고려시대 시작된 약과가 현대에도 여전히 인기다.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트렌드다. MZ세대가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 간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식품 업계도 이들을 겨냥한 약과와 전통 간식을 잇달아 출시했다.

 필자에게 약과는 오랜 기다림의 미학을 담은 간식이다. 어릴 때 설날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어머니는 매우 바쁘셨다. 약과의 재료인 옥수수 조청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튿날 다시 불을 지피고 엿기름을 첨가하고 한나절 끓인다. 그리고 삼베 보자기에 재료를 걸러서 준비한다. 건더기는 건져서 텃밭에 버리고 남은 육수를 일곱 시간이 넘도록 농도가 조청이 될 때까지 주걱으로 저어 줘야 한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려면 나를 불러서 타지 않게 저으라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적당한 농도로 완성된 옥수수 조청을 통에 담아 보관한다.

 가마솥 바닥에 남은 누룽지를 긁으면 옥수수엿이다.

 그 달콤함이란 몸이 기억하는 맛이다.

 약선으로 보면 옥수수 고(膏·농축액)가 완성된 것이다. 또한 설날을 전후한 이때에는 정초한파(正初寒波)라 불리는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시기다. 예부터 이 시기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장의 기운을 북돋우고 한기를 막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장의 기운을 길러주고 한기를 막아주는 작용인 '양신방한'(養腎防寒)이라는 말이 있다. 고대부터 '황제내경'이나 '오십이병방'에도 양신방한을 위한 음식으로 농축액(補膏方)을 권장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옥수수 고(膏)의 효능을 살펴보면 허약한 것을 보하고 오장을 도와 담을 삭히며 기침을 멎게 한다고 했다.

 양생에서 옥수수는 맛이 달고 성질을 평하게 하며 위로 들어가 부종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소화불량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약과 준비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 되살려봤다.

 어머니는 광에 보관했던 약과 틀을 갖고 오셔서 참기름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서 준비했다.

 밀가루와 쌀가루를 8:2로 섞고 계핏가루,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을 섞어 체에 내린 후 조청을 섞어서 알맞게 반죽했다. 그리고서 약과 판에 참기름을 다시 한번 바르고 눌러서 약과를 찍어 냈다. 찍어낸 약과가 굳으면 기름 솥에 넣고 서서히 색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익힌다.

 익힌 약과를 체에 밭쳐 기름기가 다 빠지면 준비한 조청에 넣고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하루 정도 즙 청을 한다. 그리고 약과를 건져 표면에 조청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한나절 정도 기다렸다가 약과를 먹게 된다. 그때만 해도 그 시간이 1년은 되는 것 같았다.

 손자병법 병세(兵勢)의 장은 전쟁의 '형세'와 '기세'를 다룬다. 군대의 움직임과 전술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전통 간식인 약과에 빗대어 설명해 본다.

 먼저 손자는 병세의 핵심은 형(形)과 세(勢)의 조화라고 했다. 바로 약과가 기본 재료와 조화를 이룰 때의 모습과 같다. 약과를 만들 때 밀가루, 조청, 참기름 등과 같은 재료가 각각의 특징을 살려 어우러져야 한다는 얘기다.

 약과의 기본 틀과 재료 배합을 형(形)으로 보면 군대 조직과 진형에 해당한다.

 약과를 튀기고 조청이나 꿀에 담가 풍미를 더하는 과정을 세(勢)로 볼 수 있다. 이는 상황에 따라 기세를 변화시키는 전술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약과는 단순히 재료를 섞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재료가 서로 잘 어우러지도록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군사 전략도 다양한 병종과 상황에 따라 형과 세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또한 변화와 적응을 통한 유연성이 약과를 튀기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 반죽을 기름에 튀길 때는 열과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튀기는 중간에 약과가 너무 어두워지면 열을 낮추고, 색이 약하면 불을 올린다. 이는 전투에서 상황을 관찰하며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성을 상징한다.

 손자는 이어서 "병세에서는 상대의 기세를 꺾고 자신의 기세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약과를 맛있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조청에 넣는 즙 청이 핵심이다.

 조청은 단순히 달콤함을 더하는 것을 넘어 약과를 촉촉하게 하고 풍미를 더하는 핵심 단계다. 이것은 전장에서 적을 기만하거나 기세를 빼앗아 오는 전술과 같다. 적절한 순간에 기세를 몰아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병세에서의 승리 요인이다. 약과의 조청 코팅은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약과는 모든 재료와 과정을 통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손자가 병세에서 말하는 전쟁의 승리 역시 형과 세의 조화, 변화에의 적응, 기세의 활용을 통해 얻어진다고 했다.

 약과를 만드는 과정은 병세에서 말하는 유기적인 전략과 닮았다.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각 단계에서 신중함과 유연함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손자는 "뛰어난 장수는 기세를 만들고, 그 기세를 활용해 승리를 쟁취한다"고 강조했다. 약과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약과는 단순한 전통 간식이 아니라, 그 제작 과정에서 형과 세의 조화, 유연성과 기세의 활용이라는 병세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약과 한 조각 속에 담긴 이 깊은 건강 철학은 단순한 간식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려가 국교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그 영향으로 대부분의 당시 음식은 제조과정에서 육식 식자재와는 더욱 멀어졌다. 심지어 제사상에 어육을 올리는 것도 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육을 대신해서 과자를 올리게 됐고 그 때문에 과자 문화가 매우 잘 발달했다. 중국 원나라에도 고려문화, 이른바 고려양이 유행하면서 약과도 그중 하나로 인기 있는 과자였다고 한다. 원조 K-푸드인 셈이다.

 다만 흉년이 들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땐 한동안 왕궁 밖에서는 약과 만드는 것이 법으로 금지될 때도 있었다. 당시 밀가루와 꿀, 조청, 기름 등이 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어서 나라가 주관하는 잔치 때 가격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조선 성종 시절에는 이미 양반과 양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가정의 제삿날이나 잔칫날에는 상에 약과를 비롯한 유밀과가 빠짐없이 올라갔다. 매우 맛이 좋아 법으로 아무리 금지해도 사람들이 계속 찾았다고 한다.

 현재는 K-푸드가 드라마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전통적인 한국 간식도 관심을 받고 있다. 먹어보니 맛있고 건강에 도움까지 되는 '약간식'이니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선순환이 생기고 있다. 수많은 K-푸드 중에서 약과야말로 오랫동안 서민과 왕가 모두에서 두루 사랑받은 국민 간식이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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