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살률, 공중보건 국가비상사태"

작년 국내 자살자 수 13년만 최대 속 새해에도 끊이지 않아
"자살은 지극히 사회구조적인 문제…막을 수 있는 죽음"
"높은 자살률에도 관련 통계 부족…근거 기반 사회적 논의 없어"

  '수원서 일가족 4명 숨진 채 발견'(3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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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보은서 초등생 자녀 2명과 극단선택 시도한 친모 긴급체포'(2월17일)

 생활고, 간병고, 우울증 등 다양한 배경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자살이 전염병이 아님에도 전염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금 당장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 김새론 등 유명인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에 따른 '베르테르 효과'도 심각성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2일 "공중보건 측면에서 현재 한국의 자살률을 보면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다"며 "자살은 지극히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막을 수 있는 죽음이다"라고 짚었다.

 또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 자살 고위험군들엔 빨간불이 켜진 셈"이라며 "경기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이 높을 때일수록 자살 위험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 작년 하루 40명 스스로 목숨 끊어…OECD 자살률 1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2월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4천439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작년 한 해 하루 40명(39.5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28.3명으로,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등을 제치고 단연 1위다.

 2000년 이후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자살률이 개선됐다는데 한국은 요원하기만 하다.

 자살률과 동전의 양면 격인 삶의 만족도를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2021∼2023년 6.06점으로 OECD 평균(6.69점)보다 0.63점 낮았으며, 전체 38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백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조금씩 올랐다지만 우리나라는 매우 심각하게 오른 상황"이라며 "한국과 비교 대상이 되었던 일본은 작년에 오히려 자살률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일단 수치상으로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원인 알기 어려운 자살 통계…베르테르 효과도 변수

 전문가들은 자살률 증가의 구체적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통계가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자살의 원인을 알아야 당국의 기민한 대응이 가능한데 현재는 매우 제한적인 통계 내용만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의가 근거에 기반해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초 50대 남성 자살이 급격히 늘었는데 여타 경제적 요인 등이 결합했을 텐데도 '연예인 사망으로 인해 늘었겠구나'하고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전혀 없는 데이터가 아니고 똑같이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라며 "일본과 같이 지자체별 자살자 수와 자살 원인, 동기, 직업 등을 상세히 공개해야 자살 대응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가 전해준 일본 경찰청 자살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전체 자살자 수를 비롯해 성별, 연령별, 지역별, 직업별, 원인 및 동기별 등 한국보다 세부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배우 송재림, 김새론 등 유명 스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오 교수는 "베르테르 효과는 분명히 있다"며 "유명인이 자살한 뒤 2∼3개월 뒤에 자살률이 늘어나는 패턴이 나온다.

 2008년 배우 최진실 씨 사건을 통해서도 베르테르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2008년 10월 최씨 사망 이후 1천8명의 모방자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종익 강원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해당 연예인과 접점이 없더라도 '저렇게 유명한 사람도 죽는데 나 같은 게 살아서 뭐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살 고위험군"이라며 "유명인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가족·이웃공동체의 해체…양극화로 상실감 커져

 특히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가족·이웃 공동체의 해체,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상황은 자살 고위험군에 매우 위험한 심리환경이라는 분석이다.

 백 교수는 "지금보다 경제가 힘들었던 1960∼70년대에는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작동해 서로 지지하는 역할을 해줬다"며 "대개 자살이 문제가 되는 건 핵가족화, 산업화 이후의 사회"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실패하더라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보호막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사회 전체의 부는 분명히 늘었는데 양극화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현재 한국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족, 친구, 국가, 사회 누구한테든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IMF 때도 그랬듯 경기가 나쁠 때 자살 고위험군이 특히나 더 위험하다.

 지금 빨간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 인구 대비 지원 인력 턱없이 부족…컨트롤타워 필요

 전문가들은 자살 고위험군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만큼 한번 위험신호가 발견됐을 때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서울 각 구의 인구에 비해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직장을 잃었다거나 경제적 문제가 생겼다거나 심각한 질병이 생기는 등 고위험군 관리를 잘한다면 단기간에 자살률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살이 고용, 대인관계, 우울증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만큼 지자체와 범부처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 교수는 "자살 고위험군은 절망에 빠져있는 만큼 스스로 해결 창구를 찾기 어렵다"며 "지자체별로 도움을 줄 방법이 있는데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각자 겪고 있는 고용, 대인관계, 심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서에 연결될 수 있도록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그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돕는 과정에서 그들도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자살은 의료만 강화해서 막을 수 없고, 고용·교육·복지 등 총체적 사회 안전망과 연결돼있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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