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 치미는데"…매운 라면 먹을까

매운 라면 전성시대…"맵지 않은 라면 고르기 어려워져"
2012년 '불닭볶음면'이 신호탄…2017년 신라면 레시피 바꿔
"경기 안 좋을수록 매운 음식 더 잘 팔린다는 속설"
국민 55% "장기적 울분상태" 설문결과…"점점 자극적 음식 찾아"

 매운 라면 전성시대다.

 한국인의 유별난 매운맛 사랑으로 '국민 음식'인 라면이 점점 매워지고 있다. 공식적으로도 그렇고, 비공식적으로도 그렇다.

 일각에서는 경기가 안 좋고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매운맛을 찾는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지난 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내놓은 설문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장기적 울분 상태'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47.1%는 지난 1년 동안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4.9%는 울분의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였다.

 국민의 과반이 울화통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매운 라면을 먹으면 이 울화가 가라앉을까.

'로제도 들고 다니는 불닭 스틱'

 ◇ "매운 라면이 좋아"…"순한맛도 매워져"

 배우 정해인은 지난달 28일 '하퍼스 바자' 유튜브에 출연해 "진라면 매운맛, 신라면 레드, 열라면, 킹뚜겅 등 매운 라면은 다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 월드스타인 블랙핑크 로제는 해외 일정에 '불닭볶음면' 스틱 소스를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라면업계의 매운맛 경쟁은 2012년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을 내놓으며 시작됐다.

 매운맛에 진심인 소비자들은 라면 제품의 스코빌 지수(SHU) 순위표를 공유하며 점점 더 매운맛을 찾고 있다.

 스코빌 지수란 캡사이신(고추속 식물의 유효성분) 농도를 계량화해 맵기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농심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는 3천400SHU, 삼양 불닭볶음면은 4천404SHU, 팔도 틈새라면은 9천413SHU로 알려져 있다.

 과거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1천SHU로 알려졌으니 이게 사실이면 현재 신라면은 옛날보다 3배 이상 매워진 것이다.

 다만 농심 관계자는 8일 "현재 신라면이 3천400SHU인 것은 맞지만 옛날 신라면이 1천SHU라는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농심 관계자는 2017년에 신라면 레시피를 바꿨으나 스코빌 지수를 높이기 위함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원자재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옛날 레시피를 그대로 고수하면 '맛있게 매운맛'을 찾는 소비자 입맛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운맛은 고추의 맵기를 보여주는 스코빌 지수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마늘, 생강, 후추 등 다양한 재료가 조합돼 매운맛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라면이 과거에 비해 매워졌다고 말하는 '증언'(?)도 이어진다.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는 김모(29) 씨는 편의점 라면 판매대에서 맵지 않은 라면을 고르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적당히 맵다고 생각했던 진라면 순한맛도 매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예전에는 매우면 맵다고 상품에 확실히 표시를 해줬는데 워낙 매운 라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이젠 포장지만 보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엑스 이용자 'jin***'는 "예전엔 신라면 매워도 먹을 순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매워서 괴롭다"고 썼고, 'Aak***'는 "매운맛은 통각이라 점점 무뎌져서 그런가? 우리도 모르는 새 매운맛에 단련되고 있다"고 적었다.

'불닭 먹고 가세요~'

 ◇ "누구나 즐기는 매운맛"…"맵찔이는 괴로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음식을 찾아다니며 '맵부심'(맵기+자부심)을 과시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더 매운 라면 신제품은 속속 출시된다.

 오뚜기는 지난 7일 자사 제품 열라면보다 매운 '라면의 맵쏘디'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진라면 순한맛과 매운맛 제품을 리뉴얼해 분말 스프 맛을 보강하고 건더기도 10% 이상 늘렸다.

 오뚜기 관계자는 "진라면 매운맛의 경우 매운맛을 기대하는 소비자에 맞춰 스코빌 지수를 2천SHU에서 3천SHU로 높였다"고 밝혔다.

 또 삼양식품은 지난달 4일 열린 2025 대한민국라면박람회에서 '맵탱 쿨스파이시 비빔면'을 선보였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매운맛이 트렌드가 되면서 이제는 소수가 즐기는 특별한 맛이 아닌 누구나 즐기고 도전하는 맛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매운맛에 도전하는 '불닭 챌린지'가 놀이 문화가 됐고 이에 발맞춰 다양한 확장 제품을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순한맛은 신라면 정도'

 라면이 매워지면서 태생부터 '매운맛'을 표방했던 신라면의 위상이 '순한맛'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앞서 '순한맛은 신라면 정도, 보통맛은 불닭볶음면'이라고 적힌 한 식당의 맵기 안내판이 SNS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대학생 이모(26) 씨는 "한국인에게 맵기 기준은 음식에 매운맛을 내는 재료가 들어가고 말고가 아니라 참을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식당에서도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점점 매운맛에 둔감해졌는지 나만 입에서 불이 나 매운 음식을 참고 먹을 때가 많다"고 밝혔다.

 SNS에는 "맵찔이(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는 세상 살기 어렵다"(엑스 이용자 'JVC***'), "순한맛 아래 '더' 순한맛과 '매우' 순한맛 두 단계를 추가해야 한다"('Ent***') 등 매운맛에 괴로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2025 대한민국라면박람회, 불닭볶음면과 함께'

 ◇ "매운 음식은 불안 회피 도구 중 하나"

 사회가 어지럽고 불안할수록 매운 라면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윤모(30) 씨는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와도 뉴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요즘에는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먹을 때는 '내가 이걸 왜 샀지' 싶을 정도로 맵고 힘든데 땀 쫙 흘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단순히 매운맛에 끌리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해방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라면업계 관계자들도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매운 음식은 더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분비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여름에 무서운 영화를 보며 더위를 잊듯이 매운 음식을 먹고 온 신경을 집중시켜 스트레스와 고통을 잠깐 잊게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집단 불안감이 늘어나는데 매운 음식은 여러 회피 도구 중 하나"라면서 "살아가면서 성취 욕구를 느낄 게 없는 현실에서 매운 음식 경쟁은 성취 욕구를 자극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용휘 세종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매운맛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장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매운맛에 점점 중독되다 보면 우리가 맵다고 느끼지 못할지언정 계속해서 위를 자극하고 심해지면 위궤양에 걸리게 된다"면서 "캡사이신은 기름에 녹기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함께 먹게 돼 비만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식품업계는 매운맛을 적정선에서 유지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매운 음식 챌린지가 게임이 아니라 몸에 무리를 주는 행위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병원,한방

더보기
혈액·소변 등 검체검사 보상체계 개편…"공정성·투명성 제고"
병의원에서 이뤄지는 혈액·소변검사 등과 관련해 검사기관 간의 과도한 할인 경쟁 등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관련 의학회, 의료계 단체 등과 함께 검체검사수탁인증관리위원회 회의를 열고,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및 질 관리 개선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복지부는 "검체검사 위·수탁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질 관리 강화 및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해 보상체계의 근본적 개편이 불가피하다"며 검사료 분리지급과 위탁검사관리료 폐지 방안 등을 보고했다. 검체검사는 질환 진단 등을 위해 혈액, 소변, 조직 등 인체에서 채취한 검체를 분석하는 것으로, 동네의원 등은 검체를 채취해 외부 검사기관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복지부 고시인 '검체검사 위탁에 관한 기준'에 따라 위탁한 병의원엔 위탁검사관리료가, 수탁한 검사기관엔 검사료가 건강보험에서 지급되는 게 원칙인데, 현재는 관행적으로 위탁기관이 일괄 지급받은 후 검사기관에 정산해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검사기관이 병의원과 계약하려고 과도한 할인 경쟁을 벌이고 불공정 계약이 이뤄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검사 질 저하 우려로도

학회.학술.건강

더보기
뇌처럼 조절하는 '뉴로모픽' 칩으로 실시간 뇌 연결 해석한다
국내 연구팀이 뇌처럼 신호를 조절하는 뉴로모픽(사람의 뇌 구조를 닮은 소자) 시스템을 개발해 기존보다 2만 배 빠른 뇌 연결 분석에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반도체기술연구단 박종길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뇌가 신경세포 간 신호 발생 순서에 따라 연결 강도를 조절하는 원리를 공학적으로 구현해 신경세포 활동 저장 없이 실시간으로 신경망 연결 관계를 학습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뇌 신경망 연결 분석기술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의 핵심이다. 기존 기술은 신경세포 활동 데이터를 오랫동안 저장한 후 통계적 방법으로 신경세포 간 연결 관계를 계산해 왔지만, 신경망 규모가 커질수록 막대한 연산량이 필요해 뇌처럼 수많은 신호가 동시 발생하는 환경에서는 실시간 분석이 불가능했다. 연구팀은 뇌의 학습 원리인 '스파이크 시각 차이 기반 학습'(STDP)을 하드웨어로 구현해 메모리를 줄일 수 있는 새 학습 구조를 고안했다. 이를 통해 각 뉴런에 연결된 이전 뉴런들의 주소 정보를 저장하며 대규모 메모리를 잡아먹는 '역연결 테이블'을 제거해 뉴로모픽 하드웨어에서도 STDP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렇게

메디칼산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