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마지막 시간, 나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10월 둘째 토요일은 '호스피스의날'…"임종실은 존엄한 죽음 위한 최소한의 공간"

 추석 연휴 기간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90대 할머니 A씨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추석을 맞아 요양병원에 수년째 입원 중인 A씨를 찾은 자녀들이 어머니의 건강이 위독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급병원 응급실 치료를 원하자 요양병원 당직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써주며 전원이 이뤄졌다.

 새벽 시간대 응급실을 지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가족의 뜻을 여러 차례 확인한 뒤 환자를 수용했다.

 그러나 A씨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폐렴과 요로감염, 욕창까지 동반된 상태였다.

 중환자실 치료나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달라"면서도 "비싼 검사는 빼 달라"고 했다. 의료진이 제안한 '임종실' 입원도 거부했다.

 A씨를 진료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A 할머니는 자녀의 의사만으로 의학적으로 무익한 치료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경우 임종도 응급실에서 맞게 됩니다. 이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와 존엄한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0월 10일,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호스피스의 날'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정됐다.

 호스피스(Hospice)는 라틴어 호스피티움(hospitium)에서 유래한 말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 또는 '머물 수 있는 쉼터'를 뜻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사들이 순례자와 병자를 위해 만든 쉼터를 호스피스라 불렀고, 1967년 영국의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Dame Cicely Saunders)가 설립한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통해 현대적인 완화의료 개념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호스피스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마무리하자는 사회적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서는 A씨의 사례처럼 존엄한 죽음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임종실'을 꼽는다.

 병원에 입원해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가 주변 환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충분히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으로서 임종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암 등 중증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연간 8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전국 호스피스 병상이 약 1천600개에 불과한 점도 병원 내 임종실 설치에 힘을 실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임종실 설치는 공간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라며 "병원이 제공해야 할 기본 인권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임종실을 설치한 곳은 57%(27곳)에 그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임종실 부재로 인한 유가족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지난달 한 환자의 딸은 자신의 SNS에 "어머니가 병실에서 숨을 거두셨는데, 커튼 하나 사이로 옆 침대 환자 가족의 대화가 다 들렸다"며 "가족끼리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게 너무 죄스럽다"고 썼다.

 그는 "임종실이 있었다면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했을 텐데, 의료진도 바빠서 (임종실을) 안내받을 틈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반대로 "공간이 없어서 못 만든다", "형식적으로만 설치돼 있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무엇보다 병원 경영 입장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바로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면서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지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임종실이라는 명칭이 유교 국가의 특성상 자녀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종실의 가장 큰 의미가 존엄의 회복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임종실에서는 가족이 조용히 손을 잡고 대화할 수 있고, 종교의식이나 사진 촬영, 사별 전 상담도 가능하다.

 임종실에서 치료가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의료진은 통증 조절과 증상 완화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자료에 따르면 임종실을 이용한 가족의 82%가 "환자에게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임종기 환자가 응급실 병상을 차지하게 되면 의료 자원이 소진돼 정작 꼭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급성기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위해 의식도 없는 환자를 응급실에 반복 전원하기보다는 임종실을 적극 설치하고 활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종실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지 준비하는 성숙한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호스피스의 날은 그 약속을 되새기는 날이다. 인간의 삶이 존엄했다면, 죽음 또한 존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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