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점수로 사람 평가 안돼…인지는 시간과 경험으로 발달"

'인지의 자율성' 이론 개척자 정미령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인터뷰
'한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종이접기' 옥스퍼드 사전 등재 위해 앞장

 "교육은 진리 위에 기반을 두고, 인지의 자율성을 키워야 합니다. 서열화, 획일화된 한국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억압합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세계한인여성협회(총재 이효정) 주최 제10차 세계한인여성대회에서 교육 부문 세계화 공로 대상을 받은 정미령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1일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초등학교부터 사고의 훈련을 통해 인지를 발달시켜야 하는데, 현재 한국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며 "영국은 각 개인의 인지적 자율성을 살려주는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한국은 서열 문화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1966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정 교수는 1971년 영국에 유학해 런던대, 옥스퍼드대, 에든버러대에서 수학했다.

 1985년 '인지 능력의 다양성'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옥스퍼드대 심리학부 연구전담교수로 발탁됐다.

 정 교수는 '인지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학계에 처음 제기했다. 지능지수(IQ) 검사만으로는 인간의 지능을 평가할 수 없으며, 시간과 경험에 따라 인지 능력이 다르게 발달한다는 이론이다.

 "IQ 점수로 사람을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언제·어디서·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가가 능력을 만듭니다. 교육은 그 자율성을 키우도록 설계돼야 해요."

 한국과 영국의 교육 체계 차이에 관해 묻자 정 교수는 "영국은 학생 개인의 서로 다른 진도를 인정한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교실에 30명이 있으면 수학 진도가 모두 다릅니다. 어떤 학생은 5쪽에 있고 어떤 학생은 20쪽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이를 인정하고 그대로 둡니다. 하지만 한국은 모두 같은 진도를 나가죠."

 정 교수는 한국의 '획일화 문화'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10명이 있으면 10명이 모두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해주고, 음악을 잘하는 학생은 음악을 더 잘하게 해줘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문제로 정 교수는 '인성 교육의 약화'를 꼽았다. "경제 발전에 치우친 나머지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심이 무뎌지고, 거짓이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는 "한국 사회는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빠르게 적응한다. BTS와 한류가 성공한 것도 이런 창의성 덕분"이라며 "문제는 그 창의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교육과 정신이 부재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2012년 68세에 정년퇴임한 이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옥스퍼드대 종신 명예교수가 됐다. 옥스퍼드대의 도서관과 연구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며 학생들을 위한 튜토리얼(개인지도)을 계속하고 있다. 옥스퍼드의 튜토리얼 전통은 학생과 일대일로 깊게 파고드는 지적 훈련으로, 그의 교육철학과 맞닿아 있다.

 "배운 지식을 복사하는 건 시작일 뿐이죠. 논문엔 반드시 '자기주장'이 있어야 합니다. 배운 것을 소화하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것을 보태야 석·박사의 자격이 생깁니다. 박사의 핵심은 '인류에 대한 기여도'입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여정을 "기적과 선택, 그리고 책임의 연속"이라고 요약했다.

 1971년 유학길에 오른 그는 런던대 입학시험장에서 첫 번째 '기적'을 만났다.

 "논술형 문항이 13개였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잠깐 눈을 감고 기도한 뒤, 제가 아는 비교교육론을 온 힘을 다해 써냈죠."

 결과는 합격이었다. 이유는 "창의적이라 한번 키워보고 싶다"였다. 여기에 영국 외무성이 지원하는 브리티시 카운슬 장학금까지 이어졌다.

 학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포함된 전액 장학금이었다.

 두 번째 기적은 에든버러대에서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받을 때였다. 옥스퍼드대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가 심사관으로 배정됐고, 논문 통과 직후 옥스퍼드대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

 "당시 이화여대에서 교수직 제안을 받았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까지 보냈는데, 결국 한국행을 포기했습니다. 옥스퍼드가 생활이 보장돼서 좋았죠."

 정 교수의 '현장'은 연구실을 넘어 디아스포라 교육으로 이어졌다. 1972년 런던에서 주재원 자녀 9명을 모아 주말 한글학교를 열었다. 유럽 최초의 한글학교다. '런던 한글학교'는 현재 330명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출간된 '영국 한인사'에도 영국 최초 한글 교사로 기록됐다.

 정 교수는 옥스퍼드대에서 한국 학생회를 조직하는 데도 참여했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박진 전 국회의원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 정 교수는 "한국의 정신을 잊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취지로 학생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전통문화 알리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한지(韓紙) 공예와 종이접기로 아이들에게 한국 종이 문화를 소개하고, 지역 사회 행사에서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이야기한다.

 특히, 한지살리기재단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전통 한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 또 '종이접기'를 옥스퍼드 사전에 올리기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어린아이의 논리적 생각'(1996), 영국에 유학 온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쓴 '평범한 10대 수재로 키우기'(2005)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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