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사평가 시대, 중년 직장인은 왜 힘든가

기업들 AI 평가 확산…업무수행 방식 차이가 점수 격차 이어져
지표 설계·학습 데이터 검증 없으면 세대별 편차 우려

 20년 가까이 국내 대기업에서 일해온 40대 후반 A씨는 올해 초 연말 고과 평가표에서 낯선 항목을 발견했다.

 'AI 기반 업무 분석 지표'라는 문구 아래 프로젝트 처리 속도, 회의 참석 패턴, 메신저 응답 시간 같은 세세한 항목들이 새로 들어온 것이다.

 최근 기업들이 인사관리(HR) 전반에 AI를 적용하면서 특히 40~50대 직원들이 체감하는 변화 폭이 커진 모습이다.

 물론 AI가 특정 연령대를 차별한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새 기준이 세대별 업무처리 방식 차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현장의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 기업서 번지는 AI 평가…객관성 강화와 불안 엇갈려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AI 기반 업무 분석 도구 도입을 검토하거나 이미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에서 성과 평가까지 AI를 활용한다는 응답이 90%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회의록 요약, 발언량 분석, 응답 속도 같은 디지털 흔적을 수집·정리하는 기술은 이미 HR 부서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은행권은 AI 기반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의 성과, 역량, 조직적합성 등을 평가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영업점 이동 배치 시스템에 AI를 활용해 인사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그룹은 AI 기반 HR 프로세스를 개발해 인사이동과 인재 추천에 AI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SK AX는 AI 채용 시스템을 통해 이력서 검토와 평가, 역량 검사, 맞춤형 질의 생성 등을 자동화해 인사평가 과정을 효율화했다.

 삼성SDS는 워크데이의 AI 인사관리 플랫폼을 도입해 인사평가와 인재 관리를 자동화하고 있다.

 해외 기업의 경우 아스트라제네카는 AI 기반 인재 분석 플랫폼을 통해 직원의 역량과 잠재력을 파악하고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과 업무를 매칭해 인사평가 및 인재 육성에 활용한다.

 아마존은 AI 기반 HR 시스템을 통해 채용부터 성과 관리, 커리어 개발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 및 최적화했다. AI 분석을 통해 이직률을 낮추고 우수 인재의 내부 이동과 승진을 지원하고 있다.

 IBM은 AI '왓슨' 기반의 '마이카(MyCA)'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의 과거·현재 데이터를 분석하고 적합한 직무를 제안하며 인사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한 HR 연구기관 관계자는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평가 기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요구가 커진다"며 "디지털 로그를 기반으로 하면 관리자 판단의 편차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AI 분석을 '참고 자료'라고 설명하지만 현장에서는 "관리자가 최종 평가 전에 AI 요약 보고서부터 본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돌고 있다.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 중년층 '점수 격차' 체감…보이지 않는 구조적 요인

 AI 시스템이 나이로 평가를 달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년층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이유는 지표가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와 관계가 있다.

 우선 AI 기반 평가 도구 상당수는 업무 처리 속도, 응답 시간, 디지털 협업 도구 사용 빈도처럼 빠른 정보 교환과 즉각적 대응을 높게 본다.

 업무 스타일이 디지털 도구 중심으로 짜여 있는 젊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유리한 구조다.

 반면 40~50대 직원들이 많이 맡는 업무는 회의 조율, 리스크 판단, 문서 검토처럼 정성적 요소가 큰 편이다.

 특히 팀장·중간관리자가 맡는 갈등 조정, 멘토링 같은 업무는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아 평가 지표에 반영되기 어렵다.

 일부 회의 분석 시스템은 발언 시간이나 질문 횟수를 점수화하는 방식도 쓴다.그러나 경험 많은 중간 관리자는 전체 흐름을 잡거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역할은 숫자로 남지 않아 실제 기여와 측정 결과가 엇갈릴 수 있다.

 국내에서 AI가 특정 연령대를 차별한다는 통계는 없다.

 해외에서도 과거 평가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기존 편향이 일부 반영된 사례가 있었을 뿐 의도적 연령차별로 결론 난 사례는 제한적이다.

 다만 정부와 연구기관은 AI 기반 인사 시스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평가받는 직원 입장에서는 "AI가 기준이 된 뒤 상사 면담을 통한 조정 과정이 줄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간단한 숫자가 '낙인'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르는 이유다.

 논란의 핵심은 결국 AI 자체가 아니라 지표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기준으로 계산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되느냐에 있다.

 ◇ AI는 평가 도구일 뿐…최종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AI 기반 평가 시스템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하는지 꾸준히 점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연령·직무에 따라 점수 편차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검증해야 한다.

 또 AI의 정량 지표와 관리자의 정성 평가가 서로 보완하도록 설계해 리더십·조정 능력 등 AI가 포착하지 못하는 요소를 다른 지표로 채워 넣을 필요가 있다.

 평가 기준을 직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개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글로벌 HR 컨설팅사들은 AI 평가 과정에서 '데이터 편향' 위험성을 지적하며 세대 간 업무 특성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면 노령 직원이나 특정 그룹이 불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HR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감사 제도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AI 고용·인사 시스템이 성별, 나이, 지역 등에서 차별적 결정을 내 리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한 HR 컨설턴트는 "AI 활용은 시대 흐름이지만 평가의 최종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며 "시스템이 새로운 갈등을 만들지, 평가를 정교하게 하는 도구가 될지는 설계와 운영의 투명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조직에서 AI 평가 항목 설정이 모든 연령대의 일하는 방식을 두루 반영하지 못하면 불만과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AI는 보조 도구로 두더라도 최종 판단과 소통은 반드시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전문가 견해를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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