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요양병원 직행' 한국 vs '재활병원 먼저' 일본

일본, '급성기-회복기-만성기' 의료체계 법에 명시…'재활병동·개호보험'이 주축
한국, 요양·재활병원 구분 어려워…"'얼마나 오래'보다 '얼마나 회복'이 더 중요"

  일본 돗토리현 요나고시에 위치한 한 재활병원에 견학차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병원 입구에 놓인 휠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국 병원에서 흔히 보는 '같은 모양'의 휠체어가 아니었다. 크기와 형태, 구조가 제각각이었다.

 이유를 묻자 의료진은 이렇게 답했다. "환자마다 체형도 다르고, 재활이 필요한 부위도 다르지 않습니까." 휠체어조차 '환자 맞춤형'이었던 셈이다.

 병동 풍경도 달랐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대부분이 침상에서 식사하지 않았다. 별도의 식사 공간으로 이동해 매 끼니를 해결했다. 한국 병원에서 흔히 보는 '침대 등받이만 세운 채 식사'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병원 관계자는 "식사하러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재활의 일부"라고 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의료체계의 큰 숙제 중 하나는 '치료 이후'다. 대학병원 등의 급성기 병원에서 폐렴, 뇌졸중, 골절, 수술 치료를 무사히 마쳤지만,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고령 환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는 체계적인 재활치료 대신 요양병원으로 직행한다. 치료의 연속성보다 돌봄의 연속성이 먼저 선택되는 구조다.

 반면 일본은 급성기 치료 이후 환자를 재활 중심 병원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촘촘하게 작동한다. '개호보험'(장기요양보험)을 기반으로 한 회복기 재활병동이 활성화돼 있어서다.

 초고령사회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모델은 한국이 눈여겨볼 대목이 적지 않다.

 ◇ 일본 재활병원 활성화의 주역 '회복기 재활병동·개호보험'

 초고령사회를 먼저 맞은 일본은 급성기 치료 이후의 경로를 제도적으로 설계했다. 의료법에 '급성기-회복기-만성기' 의료 제공 체계를 명시하고, 급성기 병원 → 회복기 재활병동 → 자택 복귀 또는 개호시설로 이어지는 단계적 구조를 정착시켰다.

 핵심은 '회복기 재활병동(回復期リハビリテ?ション病棟)'이다.

 이 병동은 뇌졸중, 대퇴골 골절, 중증 폐렴, 수술 후 기능저하 환자 등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집중 재활치료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입원 대상 질환, 입원 가능 기간, 하루 재활치료 시간까지 세부 기준이 있다. 환자는 하루 수 시간의 집중 재활치료를 받는다.

 재활치료 수가 역시 '강도'에 연동된다. 치료 시간이 많고, 기능 회복 성과를 내면 병원 보상도 커지는 구조다. 단순 입원 유지보다 적극적 재활을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작동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강주현 연구원은 "일본 재활병원의 회복기 재활은 재택 복귀율 70% 이상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환자에게 시행된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산정 금액이 '0엔'이 되어버린다"면서 "그래서 반드시 환자를 재택복귀 시킬 수 있도록 집중 재활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고, 그만큼의 수가 지원책도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재활 시스템의 또 다른 축은 개호보험이다. 40세 이상 국민이 보험료를 내고, 노인성 질환이나 기능 저하가 생기면 돌봄·재활 서비스를 이용하는 제도다.

 개호보험에서는 방문 재활, 통원 재활, 단기 입소 재활, 시설 재활 등 다양한 서비스가 보장된다. 병원 퇴원 후에도 재활이 끊기지 않도록 지역 기반 서비스가 이어진다. 의료보험과 개호보험이 역할을 나눠 기능 회복과 생활 복귀를 함께 떠받치는 셈이다.

 이 구조 덕분에 일본에서는 급성기 치료 직후 환자를 곧바로 장기요양시설로 보내기보다, 일정 기간 재활을 통해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돌봄 단계로 넘어가는 '재활전치주의'(再活前置主義)가 정착됐다.

일본의 재활병원 내 환자 식당. 환자 식당은 병원 내 여러곳에 마련돼 있으며 원칙적으로 재활 운동 차원에서 침상 내 식사 대신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촬영 김길원]

 한국은 의료법상 아직 '급성기-회복기-만성기' 의료제공체계에 대한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은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의 역할을 잘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 의료기관의 기능은 분명히 다르다.

 재활병원은 질병이나 손상 이후 환자의 기능 회복을 목표로 한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심장·호흡 재활 등 집중 치료가 중심이며, 의료진도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축으로 다학제 팀이 구성된다. 목표는 '회복과 복귀'다.

 요양병원은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 장기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돌봄 중심 의료기관이다. 치료보다는 유지·관리 성격이 강하고, 재활치료 강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목적은 '안정적 보호와 관리'에 가깝다.

 문제는 국내 의료 현실에서 재활이 필요한 고령 환자 상당수가 재활병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먼저 이동한다는 점이다. 병상 접근성, 비용 구조, 보호자 선택, 수가 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물론 한국도 회복기 재활의 중요성을 인식해 '재활의료기관 지정제'를 도입했지만, 아직 규모와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지정 기관 수가 충분하지 않고, 지역 편차도 크다. 급성기 병원과 재활병원 간 연계 역시 체계적이지 못하다.

 수가 체계도 재활 강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집중 재활을 해도 병원 입장에서 인력과 시간 대비 보상이 크지 않으면 공급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요양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한국회복기재활연구소 우봉식 소장(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회복기 재활 제도가 도입된 후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으로는 아직 매우 낮은 단계에 머물러있다"고 진단했다.

 우 소장은 이어 "회복기 재활은 환자의 기능적 회복을 통해 사회복귀를 시키는 것인데, 현재까지 이러한 기능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중증환자비율, 기능개선도, 재활실적지수 등 다양한 성과지표들을 6개월 이상 충족한 경우에만 회복기 재활 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질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 일본의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재활병원이 가정생활 복귀를 위해 병원 내에 훈련용 가정집을 만들어둔 모습. [촬영 김길원]

 ◇ 초고령사회, '돌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회복'

 고령 환자에게 재활은 선택이 아니라 예후를 좌우하는 치료다. 적절한 시기에 집중 재활을 받으면 보행, 연하, 인지 기능이 개선되고, 재입원과 장기 요양 의존도도 낮출 수 있다. 반대로 초기 재활 기회를 놓치면 기능 저하는 고착된다.

 초고령사회에서 의료비를 줄이는 길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오래 돌보는 체계가 아니라, 가능한 한 스스로 생활하도록 돕는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우 소장은 "고령화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된 상황에서 국제 사회는 단순히 복지를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서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게 바로 회복기 재활병원"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일본의 회복기재활병동뿐만 아니라 이탈리아(Codice 56 & 75), 포르투갈(RNCCI, Rede Nacional de Cuidados Continuos Integrados), 독일(Reha-Klinik), 프랑스(Medical Care and Rehabilitation clinics) 등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환자가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관문이자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 통합 플랫폼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게 우 소장의 설명이다.

 의료계에서는 급성기에서 바로 회복기로 전원 되기 어려운 환자들이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 내 '단기 전환케어 병동'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2024년부터 이 병동을 도입했으며, 독일 역시 '입원 후 전환 케어' 제도를 통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회복기병원'이라는 새로운 종별 의료기관 도입을 통해 수술 후 회복과 재활이 모두 필요한 고령자 및 복합질환 환자에게 통합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재의 요양병원 중 기준을 충족하는 기관을 회복기병원으로 종별 전환해 이를 대학병원과 연계함으로써 공공 및 민간 부문 모두에서 회복기 치료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기된다.

 강 연구원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3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동시에 지닌 복합이환율은 54.9%에 달한다"면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관절염, 심뇌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고령자의 특성을 고려할 때, 회복기에는 단순한 재활을 넘어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의료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앞선 재활의료 경험으로 볼 때 급성기 치료의 성과가 재활 단계에서 완성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제 한국의 의료체계도 '얼마나 오래 살게 할 것인가'를 넘어 '얼마나 회복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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