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로 영아유기 비극 사라질까…"양육포기 쉬워져" 우려

출생신고제·보호출산제, 19일 시행…'의료기관 출생 통보·익명출산 허용'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 후 도입…'2천명 그림자아동' 사태 개선책
"아동 알권리 침해" 비판도…'위기임산부 지원 강화' 등 과제

  이른바 '유령아동'을 없애기 위해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신고제와 익명 출산을 허용한 보호출산제가 19일 함께 도입된다.

 지난해 출생신고가 안된 아동의 살해·유기 사건을 계기로 신속하게 제도가 신설됐지만, 보호출산제를 놓고는 임신부의 원가정 양육 포기가 늘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근본적으로 위기에 처한 임신부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두텁게 지원하는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2천여명 그림자아동'에 신속 추진…'익명보장'하며 병원 출산 유도

 출생신고제는 개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담겼다.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면, 시·읍·면장 등 지자체가 출생신고를 확인하고 필요시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하게 된다.

 제도 도입의 시발점이 된 것은 지난해 5월 발생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다.

 30대 여성이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딸과 아들을 병원에서 출산한 뒤 집 또는 병원 근처 골목에서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집 안 냉장고에 보관한 사건이다.

 남편과 3명의 자녀를 둔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또 임신하자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은 지난해 감사원의 복지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2015∼2022년 병원에서의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그림자 아기'가 2천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A씨의 범행은 그중 한 사례다.

 이에 신생아의 부모가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뿐이고, 의료기관은 행정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는 출생 신고 체계의 문제점이 부각됐다.

 출생통보제의 도입으로 의료기관이 통보 의무를 갖게 되면서 병원 출생 아동 중 '유령 아동' 발생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행정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출생통보제에 난색을 보여왔지만, 유령 아동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면서 제도 도입에 속도가 났다.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된 보호출산제는 출생통보제 시행 시 의료기관 출산을 꺼리는 임신부가 늘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서 추진됐다.

 출생아의 대부분은 의료기관에서 출생하지만, 0.2%(2021년 통계청 인구동향 조사)는 병원 밖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작지 않다.

 임신부가 상담을 거쳐 '익명'(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태어난 아동은 출생을 등록해 보호하는 방식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임산부는 숙려기간을 가진 뒤 지자체에 아동을 인도하는데, 보호출산을 신청했더라도 아동이 입양특례법상 입양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철회할 수 있다.

 친모는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자녀의 요청에도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 부모 익명성 보장에 아이 알권리 침해 우려…'합법적 유기 통로' 비판도

 다만 보호출산제를 둘러싸고는 이 제도를 이용해 출산 후 아이 양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호출산제에서 산모는 평생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받는다"며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상태에서, 익명성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원가정 양육을 선택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유혹은 특히 태어난 혹은 태어날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 더 커질 수 있다.

 보호출산은 출산 전뿐 아니라 출산 후 1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장애아를 출산한 산모가 직접 양육을 포기하도록 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강은미 의원실이 지난 5월 개최한 관련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우려가 쏟아졌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미등록 신생아 상태로 유기됐던 자립준비청년 홍진수 씨는 "보호출산제가 장애아동, 미숙아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는 통로로 활용될 것"이라고 토로했고,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은 "장애아동은 가족과 함께 살 권리가 없는 것이냐"고 울먹였다.

 부모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아이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친모는 보호출산을 신청할 때 자신의 이름, 보호출산을 선택하기까지의 상황 등을 작성해 남긴다.

 이 서류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영구 보존되지만, 보호출산을통해 태어난 사람은 성인이 된 후 생모가 동의할 때만 인적사항을 포함한 서류를 열람할 수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보편적 출생 등록을 하고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면서 그래도 불가피하면 익명출산제 도입을 최후에 고려하라고 권고했지만,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숙고 없이 보호출산제를 서둘러 입법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호출산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청자에 대한 상담이 중요한데, 상담기관 중에서는 기존에 하던 업무 영역이랑 차이가 있는 곳들이 많다"며 "법 통과 9개월 만에 상담기관의 전문성이 얼마나 강화됐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위기 임산부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기본적인 출산용품 지원도 제대로 안되는데, 어떻게 엄마들(위기 임산부)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울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진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임신이 축복이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서 도와줄테니 미혼모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지원도 없다면 양육과 양육포기(보호출산) 중 양육포기로 선택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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