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 경찰만 실탄 못 쏜다?

까다로운 발포 요건에 법적 책임까지…일선 경찰 '꺼려'
'총기 합법' 미국 외 주요국도 발포 요건 엄격히 규제
저위험 권총 등 비치명적 진압장비 확대 추세

 최근 경찰관을 흉기로 공격한 남성이 제압되는 과정에서 총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총기 사용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위험한 치안 현장에서 경찰관의 판단을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지만, 실제 경찰관들은 '권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총기 사용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 까다로운 발포 요건에 법적 책임까지…일선 '꺼려'

 현행법상 경찰관의 총기 사용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0조4항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경찰관은 범인의 체포, 도주 방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의 방어 및 보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제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한 한도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는 특정한 상황에서 총기 등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허가할 뿐, 대상자에게 상해를 입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법률상 '형법상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하거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특수한 상황에서만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세부 요건은 더욱 복잡하다.

 경찰청 규칙은 무기 사용 대상자의 행위를 ▲순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 ▲폭력적 공격 ▲치명적 공격 등 5단계로 나누고 '치명적 공격'에 해당할 때만 총기 사용을 허용한다.

 이 경우에도 공포탄 또는 실탄으로 경고사격을 해야 하고, 신체에 발포할 경우 가급적 하반신을 맞춰 상해 정도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찰청은 '현장 경찰관 물리력 행사에 관한 기준'에서 "실제 개별 경찰 물리력 사용 현장에서는 대상자의 저항 수준 외에도 범죄의 종류와 죄질, 피해 법익의 경중, 위해의 급박성, 범인과 경찰관의 수, 도주 여부, 현장 주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특히 총기는) 저항의 정도가 치명적 공격인 경우에도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명시한다.

 사실상 상대방에 의해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이 극도로 위협받고 다른 제압 방법이 전혀 없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일선 경찰들은 총기 사용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복잡해 실제 현장에서 완벽히 준수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발포 후엔 민형사상 소송을 당하거나 내부 징계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경찰관의 총기 사용은 극히 드물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2023년 8월까지 경찰관의 실탄 사용 사례는 16건에 그쳤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의 '경찰 물리력 행사기준에 따른 장구 사용 효과성 분석을 위한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8월부터 1년간 보고된 물리력 사용 사례는 총 4천382건이지만 수갑이 4천200건(95.8%)으로 대부분이었다.

 권총은 경고사격을 포함해 14건(0.3%)에 불과했다.

 ◇ '총기 합법' 미국 외에는 주요국도 발포 요건 엄격히 규제

 해외 주요국도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하다.

 총기 사용 횟수와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찰의 발포는 드물다.

 일본은 경찰직무법에서 '범인의 체포 또는 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저항을 억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해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중국도 '인민경찰법', '인민경찰 장구 및 무기 사용조례' 등에서 총기 사용의 법적 근거와 절차·한계를 규정하고 있지만, 추상적 요건에 그쳐 현장에서의 사용은 예외적이다.

 독일은 연방법을 기본으로 주별로 세부적인 총기 사용 목적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는데, 연평균 500만건 이상 발생하는 범죄 중 경찰의 총기 사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해마다 10명 안팎, 부상자도 20∼30명 수준으로 많지 않다.

 영국 경찰은 무장하지 않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별도 교육을 받은 특별경찰을 제외하고는 총기 휴대 자체가 제한돼 총기 휴대가 금지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한 때에만 개별적으로 총기가 지급된다.

 미국은 경찰의 총기 사용이 빈번하지만, 이는 일반인도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배경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천96명, 2021년 1천48명, 2020년 1천19명이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반면 매년 수십 명의 경찰관도 근무 중 총기와 같은 중범죄로 사망했다.   미국은 주마다 총기 사용 매뉴얼이 있지만, 1989년 연방대법원 판례에 따라 공권력 집행에서 현장 경찰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미국도 최근에는 경찰의 불법 폭력과 총기 발사 남용이 이어지자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을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이 이어지는 추세다.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 실질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만 자위권 차원에서 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 저위험 권총 등 비치명적 진압장비 확대 추세

 2023년 여름 서울 신림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묻지마 칼부림'이 횡행했다.

 당시 경찰청장은 총기 사용을 포함해 적극적인 치안 대응을 주문했지만, 현장의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일선에서 물리력 사용에 따른 법적 책임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경찰관의 무기사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당시 상황을 꼼꼼히 따져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데 정당방위를 좁게 인정하는 판례상 유죄 판결을 받은 경찰관이 많다.

 형사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지만, 민사 소송에서는 과도한 물리력 행사가 인정돼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한 사건도 있다.

 반면 우리와 유사한 총기 사용 지침을 가진 일본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 민사 사건에서도 경찰관의 정당행위를 인정해주는 경향이 크다.

 서울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감은 "총을 쏜 뒤 법적 책임과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겠느냐"며 "실제 소송에 들어가면 국가의 도움은 없다시피 하고 '나 홀로 소송'을 치러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법조계도 총기 사용 사건에 대해 현장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생명이 위태로운 급박한 상황에서의 공권력 행사를 결과만 놓고 사후적으로 평가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각국은 총기 사용으로 인한 인명피해와 시비를 방지하기 위해 비치명적 무기 범죄 진압장비를 활용·개발하고 있는 추세다.

 영국 경찰은 대상자를 약화할 수 있는 최루액 발사기, 전자 충격봉 등을 사용하고 있고 미국 경찰도 최루탄, 후추 스프레이, 스프레이 페인트 등 비살상용 화학무기 활용을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테이저건을 널리 쓰고 있고, 내년까지 살상력이 보통탄의 10분의 1 수준인 저위험 권총 2만9천정을 전국 지구대·파출소에 시범적으로 지급해 운용할 계획이다.

 장비 도입뿐만 아니라 일선 경찰관의 진압 훈련도 내실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웅혁 교수는 "1년에 두세번 고정된 과녁에 몇발 쏘는 식의 무의미한 교육을 멈추고 실제 상황을 연출해 어떤 물리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연습하는 훈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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