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열무와 함께 한 여름

 해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밥상에 열무김치가 오른다.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그 시원한 국물이 혀끝을 스치고, 아삭한 잎이 입안을 적시면 더위로 지친 몸이 서서히 풀린다.

 열무는 과거 콩밭이나 고추밭 사이에서 간작으로 재배하던 보조 채소였지만,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해 이제는 연중 재배되는 필수 채소다.

 뿌리보다 부드러운 잎을 주로 먹으며, 이 잎에는 비타민 A와 C, 풍부한 식이섬유가 가득해 혈액을 맑게 하고 체내 해독을 돕는 건강 식자재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열무는 저열량, 고섬유질 식품으로 다이어트, 소화 촉진, 피로 해소, 혈액 순환 개선에 탁월하며, 비타민 A는 시력을 보호하고 피부 건강을 유지해 준다.

 특히 비타민 C는 피부의 탄력을 지키고, 여름철 감기나 세균 감염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다.

 약선에서는 열무가 체내의 열을 내리고 독소를 풀어주며, 습기를 몰아내 부종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고 본다.

 특히 더위로 인한 갈증 해소, 소화불량, 가래 제거, 몸이 붓는 증상에 효과적이다.

 여름철 밥상의 숨은 보약, 열무. 단순한 김치를 넘어 우리 몸을 가볍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여름 채소다.

 무덥고 습한 계절, 열무 한 접시로 일상의 활력을 되찾길 추천해본다.

 이맘때면 나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부엌을 떠올린다.

 새벽의 열기를 머금은 텃밭, 거기서 자라난 풋열무, 그리고 우물가에서 김치를 담그던 어머니의 손.

 그 모든 풍경이 그리움처럼 여름과 함께 다시 찾아온다.

 어릴 적 우리 집은 텃밭을 두고 있었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손수 열무 씨앗을 밭고랑에 심으셨 다.

 그 위에 짚을 덮으며 하늘이 아니라 땅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빛은 언제나 차분했다.

 싹이 나고, 여린 잎이 올라오면 그걸 솎아 나물로 무치셨고, 자라난 열무는 김치가 돼 밥상에 올랐다.

 열무는 다른 채소처럼 시장에서 사는 게 아니라, 그 계절 내내 우리 집에서 자라는 '시간'이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어머니가 밭에서 열무를 뽑아 오라며 나를 부르셨다. 이미 땀이 흐르던 내 팔에는 잎과 흙이 닿았다. 어머니는 우물가로 가서 열무를 하나하나 손질하셨다.

 흙을 닦고, 줄기를 자르고, 굵은소금을 뿌려 절이셨다. 옆에서는 밀가루 풀을 쑤셨고, 마늘과 생강을 절구에 빻으며, 마른 고추를 물에 불려 찧었다.

 그 모습은 분주했지만, 단 한 번도 서두름은 없었다. 모든 동작에는 이유가 있었고, 쌓인 노하우는 하나의 규칙처럼 반복됐다.

 열무김치는 담가 놓고 며칠 지나면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퍼지는 향은 내게 여름의 개막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식욕이 없어 밥을 남기던 날도, 열무김치 하나만 있으면 그릇은 금세 비워졌다.

 때론 열무국수로, 때론 보리비빔밥으로, 열무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말했다. "열무는 여름의 보약이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오래도록 몰랐다. 그냥 더울 때 먹는 음식쯤으로만 여겼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그 말씀에 머문다. 열무가 여름의 보약이라는 말씀이야말로, 열무김치에 대한 정확한 정의다.

 더위로 인해 체온이 오르고,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붓고, 입맛이 사라질 때, 열무는 그 모든 것에 단 하나의 해답이 되었다. 식탁에서의 역할을 넘어, 계절의 병을 다스리는 하나의 처방이었다.

 특히 하지가 지나면 어머니는 열무김치를 더 자주 담그셨다.

 "이때부터는 음기가 자라. 양기가 절정을 이룬 다음이니까 몸이 조심해야 해."

 어머니는 심장이 과열되면 간이 상하고, 그래서 짜고 시고 쓴 음식이 필요하다며, 열무김치의 맛을 조절하셨다. 똑같은 열무지만 하지 이후의 열무김치는 조금 더 진하고, 묵직하고, 단호했다.

 그건 계절을 해석하는 한 방식이었다. 육류보다 채소를 먹으라는 말도 단지 소화 때문이 아니었다. 여름을 살아내는 방식, 고단한 계절을 이겨내는 생활의 병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손자병법 '행군의 장'에 나오는 전략이 꼭 전쟁터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손자는 말했다.

 "상황을 읽고, 지형을 파악하고, 병사의 상태를 살펴 유연하게 대처하라."

그 말은 부엌에도, 밥상에도 적용된다. 열무김치는 기상과 몸의 상태에 따라 조리 방식이 바뀌었다.

 열무나물은 기본 체력을 다지는 평시 진형이고, 열무국수는 더위에 지친 몸을 위한 기동식이다.   열무비빔밥은 다양한 영양을 조화시키는 혼성작전이며, 열무고기볶음은 체력이 바닥났을 때를 위한 보강 전술이다. 열무냉면은 과열된 심장을 식히는 우회 전략이다.

 이렇게 보면 밥상 하나도 전쟁터다. 잘못 대응하면 더위에 몸이 탈 나고, 잘 맞추면 건강이 살아난다.

 어머니는 김치를 오래 두지 말라 하셨다.

 "열흘 안에 다 먹어야 한다."

 음식의 유통기한만 말씀하신 게 아니고 여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었다. 작고 얕은 항아리를 쓰는 이유도, 그 속에 담기는 것이 적을수록 먹기 좋고, 더 빨리 익고, 덜 상하기 때문이다. 적정량, 적정시간. 그것은 김치를 넘어서 삶을 운영하는 기준이었다.

 지금 나는 도시의 내 주방에서 열무김치를 담근다. 어머니처럼 능숙하진 않지만, 열무를 다듬고, 소금을 뿌리고, 풀을 쑤는 동안 그 시절의 여름이 다시 따라온다.

 항아리 대신 플라스틱 통에 담긴 김치가 익어가면, 나는 다시 한번 이 여름을 살아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열무김치 한 접시. 그것은 내게 여름의 유일한 전술이며, 어머니의 유산이다.

 "열무김치는 여름의 보약이란다."

 어머니 말씀 한마디가 한 계절을 견디는 전략이자,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병법이 됐다.

 그리고 여전히, 그 말씀은 내 여름 식탁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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